해설 엿보기
복사꽃 분분한 건널목에서(작가마을)
정주영
경남 함안에서 출생. 부산시 서구 부구청장으로 퇴직. 2015년부터 『그림나무시』, 《현대수필》, 《문학세계》 등에 詩와 수필을 발표하면서 창작활동. 시집으 『남루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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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시는 일상의 모습에 대한 집요한 응시와 탐색을 통해 인간의 삶이 지향해야 할 참된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드러낸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력 안에 놓인 경험적 사유를 통해 구체화되는데, 다분히 윤리적이고 성찰적인 태도를 지닌다는 점에서 자기 반영으로서의 서정시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윤리적 인식은 인생의 말년에 가까이 이른 존재로서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는 상상력에 토대를 두고 있어서 조금은 계몽적인 모습을 노출하고 있기도 하다. 어떠한 삶이 진정으로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시대적 논란은 항상 있기 마련이지만,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는 세대론적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인간이 지켜야 할 근본적인 태도는 변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서의 서정시의 가치와 지향에 맞닿아 있는 측면이 많다. 따라서 시인은 이러한 서정시의 본질에 기대어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인간 존재의 근본적 문제들을 자신의 일상적 경험 안에서 형상화하고 있어 주목된다.
공사판에 불 하나 쬐는 일도 쉽던가
춥다고 느낄수록 누구나 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깡통 난로 가까이 파고들고
그럴수록 자리다툼 은근하지 않던가
운 좋게 앞자리 잡았다고
넋 놓고 있었다간 데이기 딱 좋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면
한기가 뼛속을 파고들지 않던가
살면서 거리 두기에 실패한 일
공사장 깡통 난로뿐이던가
너와 나
상사와 부하 그리고
꿈과 현실 ……
그래 그래
꿈은 별처럼 아스라이
현실은 깡통 난로처럼 있지 않던가
-「거리 두기」전문
경쟁이 미덕이 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전제한다면 경쟁은 자본주의 시대의 변화와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의 내부를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결국 그것은 개인의 안정과 실익을 얻고자 하는 과도한 욕망을 투영한 경우가 허다하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깡통 난로 가까이 파고”드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그것이 서로의 온기를 채우는 따뜻함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리다툼”의 결과로 치닫는다는 데서 경쟁의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너와 나” 모두를 따뜻하게 만드는 적당한 “거리 두기”가 이루어져 개인의 이기심이 아닌 공동체의 목표에 부합하는 방향성을 가지면 될 텐데, 이러한 평범한 정답을 분명 알고 있으면서도 “살면서 거리 두기에 실패한 일”이 다반사라는 데 인간의 모순과 한계가 있다. 인생의 길은 마치 “평균대 위에서 걷기”(「평균대 위 걷기」)와 같은 것이어서 타인과의 경쟁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일은 균형 감각과 안정적 질서를 외면할 수는 없다.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너의 자리를 뺏어야 하는 경쟁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마도 시인 역시 이러한 삶의 한가운데를 지나왔을 것이고, 이제는 이러한 경쟁의 시간을 객관적으로 뒤돌아보면서 적당한 거리두기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시인의 일상이 과거에는 삶의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면, 지금은 삶의 진면목을 여유롭게 응시하는 관조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상일(동의대 교수, 문학평론가), 시집해설 「뒤를 돌아보는 서정의 시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