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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원문보기 글쓴이: 영심이
지난 주 토요일에 사영모 수련회를 마쳤습니다.
탈진한 몸으로 집에 와서 쉬고 있는데 매형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누나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누나는 몇 달 전에 병원으로부터 몸의 상태가 회복 불능으로 소생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나는 생식을 시작하고 여러 자연적인 치유를 시도하면서 많이 회복되어서 조금 안심을 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다음날 나는 아내와 함께 간신히 기다시피 누나의 집으로 갔습니다. 아직 몸이 풀리지 않았고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누나의 상태는 갑자기 악화되어 이미 소생이 어려울 정도라 우리는 119를 불렀고 연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3일 후인 수요일 오전 그녀는 우리의 품을 떠나갔습니다.
3일 장을 어제 마치고 돌아온 지금 그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시달렸는지라 아직 몸이 힘들기는 하지만 이제 조금 맑은 정신으로 누나에 대하여 그녀의 삶에 대하여 추억을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나에게는 누나가 셋이 있습니다.
9살 위의 첫째 누나.. 그녀는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4살 위의 둘째 누나.. 그녀는 공항 근처에 살면서 사모로서 매형 목사님의 사역을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살 위의 막내 누나.. 그녀가 이번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이 막내 누나와 친했습니다.
어릴 때부터도 성품이나 스타일도 비슷하고 대화가 참 잘 통하는 편이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성질이 못된 편인데 누나는 너무나 착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성품이 워낙 착해서 천사라는 이야기를 항상 들으며 살았습니다.
무엇인가 좋은 물건이 있어서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가 "얘.. 그것 참 예쁘다.."하면 "너 가져.." 하는 것이 그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녀는 소유욕이 없었고 항상 남에게 모든 것을 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반면에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어머니에게도 학용품이 필요해도 감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녀에게 카드나 편지가 올 때 흔히 가장 많이 들어가는 말은 "얘..어쩌면 나도 너처럼 천사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니?"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그리 편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처럼 선한 성품을 가진 이들은 삶이 더 힘들고 어려운지도 모르지요.
그녀는 자기의 이익을 잘 챙길 줄 몰랐고 그러한 그녀를 사랑하기보다는 이용하고 괴롭히고 누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목사님도 그렇고 누님도 그렇고.. 그 집은 영빨이 센 집인가 봐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한 마디로 지옥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지옥과 같은 삶에서 몸부림칠 때 주님께서 그것을 이길 은총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누나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최근에 그녀의 인생 중에서 처음으로 조금 편안해졌을 때 그녀는 그만 삶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그녀의 굴곡이 많은 삶에 대하여 세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녀의 삶은 보통의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의 고통스러운 삶이었다는 것을 말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여러 가지 은사들을 경험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의 방향은 여러 혼란스럽고 복잡한 상황 속에 있었고 그녀의 삶이 전적으로 주님께 바쳐진 것은 약 5년 전의 체험에서부터 였습니다.
그녀는 로마와 한국을 몇 년에 한 번씩 왕래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때는 내가 목회를 하고 있었을 때였기 때문에 그녀는 서울에 있을 때는 내가 인도하던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녀는 어느 날 매형을 우리 교회에 데리고 왔고 우리에게 소개시켰고 그 후 로마에 다시 가서 결혼했습니다.
몇 년 후 그녀는 서울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97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해 여름에 우리 교회에서 하기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거기에서 강렬한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녀는 강렬한 성령님의 임재 속에서 쓰러져서 몸부림을 치면서 통곡 속에 있었고 주님께서는 그녀를 만져주셨습니다.
그 때는 모두들 성령님의 역사에 붙들려서 아수라장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다들 강렬한 성령님의 강렬한 바람에 몇 미터씩 나가떨어지기도 했고 여기 저기 쓰러져서 비명을 지르고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은 누나뿐이 아니었는지라 나는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 때까지 누나는 영성과 주님에 대하여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었습니다. 오히려 나의 열정에 대하여 우려를 표하기도 하는 그러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누나는 변화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돌아간 후에 누나는 좀 더 구체적인 경험을 갖게 되었습니다.
누나는 흥분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체험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몹시 기뻤고 여러 가지 이야기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그녀에게 주님께서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아주 선했고 섬세하며 깊은 예리함을 가지고 있어서
주님께서 그녀에게 귀한 은총을 베푸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나는 다소 우려를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인도하던 집회에서 사람들이 강력한 은혜를 경험하고 조금 지나면 쉽게 높은 마음에 빠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처음의 감격을 곧 잃어버리고 다른 교회나 사역을 비판하며 나의 사역에 대하여도 비판하고 공격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당해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나의 경우에도 그러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예언과 음성은 여러 단계로 발전해갑니다. 그것은 온전하지 않으며 그 사람의 지나온 인생과 성품, 그리고 성숙도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해갑니다.
거기에는 100% 주님의 음성만이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과 어둠의 영으로부터 나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처음에 이러한 현상을 경험하는 이들의 분별력이 그리 깊고 세련되지 않아서 온전한 분별이 거의 쉽지 않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누나는 곧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예언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예언과 음성의 초기 현상이었으나 누나는 그것을 잘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그러한 모습들이 점점 심해지고 부작용들이 생기기 시작하자 나는 한번 그녀를 조금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나 사이에는 하나의 벽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영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체험 이후에 그녀는 더 이상 나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이후부터 그녀를 더 이상 도울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러한 경험이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이들을 많이 접해보았었고 그것이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경험과 분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른바 주님과 <직통>하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들은 모든 일에서 주님의 음성을 좇습니다.
그것은 아주 신령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아주 세밀하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는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초기의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점차 그의 임재와 음성을 거두어 가시고 그 전에는 환하게 보였던 여러 상태들을 제한하십니다.
주님은 초기에 어느 정도 선명한 인도하심을 허락하시지만 계속적으로 그렇게 인도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삶이 기계적이 되어버리며 오히려 영이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그러한 확실성보다 불확실성 속에서 주님을 의뢰하고 순종하며 따를 때 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지나면 그러한 음성과 인도하심을 제한하시며 그의 영혼 자체가 성숙하고 분별과 동기에 있어서 자라게 하시며 어둠 속에서도 주를 따르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가 되면 주님의 음성을 계속적으로 듣지 못하게 된 이들은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게 되고 그 공허감을 속이는 영들이 대신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많은 신유 능력자들, 많은 예언자들, 많은 영적인 사역자들이 넘어지고 쓰러지게 되는 이유입니다.
즉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지만 너무도 순진하여 어둠의 영들의 궤계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녀의 부탁에 따라 그녀의 책을 출판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녀의 원고를 충분히 보지 않고 첫 부분만 읽은 다음에 대충 좋다고 느껴져서 많은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습니다.
대부분 출판을 거절했으나 꾸준히 원고를 보낸 결과 나의 책을 출판한 적이 있는 예찬사에서 출판을 허락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책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비로소 책을 꼼꼼히 살펴본 나는 많이 놀랐습니다.
그 안에 여러 감동적인 은혜의 내용들이 있었고 또한 동시에 혼란스러운 영들의 움직임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잘 나가지는 못하지만 집회 요청을 많이 받는 편입니다.
나는 그녀에게 간증의 기회를 주기도 하고 집회에 그녀를 데리고 가서 간증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러한 행위들, 그녀를 집회에 소개하고 그녀의 책을 출판하도록 도와주었던.. 그러한 일들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녀의 죽음에 내가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느끼며 이에 대한 심각한 후회와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체험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녀에게 주님은 많은 음성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또한 주님의 음성이 아닌 그녀 자신의 생각도 적지 않았고 또한 악한 영들의 속임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특별하게 문제가 있거나 그러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영적인 체험에는 많은 위험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가 어떤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때 그것은 완성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무서운 전쟁이 시작됩니다.
어둠의 영들은 그러한 이들을 결코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고 모든 이들의 문제입니다.
그 전쟁이 너무나 위험하고 쉽지 않은 함정이 있는 길이 기에 거기에는 많은 조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위하여 동역자가 필요하고 조언을 해주는 멘토가 필요합니다.
그보다 조금 더 앞서서 그러한 길을 걸어갔던 이들의 조언이 필요하고 같이 그러한 길을 서로 나누며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문제는 그녀가 혼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책을 보거나 간증을 들은 이들은 그녀가 온전한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기도를 받고 도움을 받기를 원했지 그녀가 연약한 존재이며 기도와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외롭게 영적인 길을 혼자 걸어간다는 것.. 그것만큼 슬프고 무서운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녀의 주변에는 그녀가 도와줄 사람들뿐이었지 그녀가 힘들 때 기대고 도와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는 그녀를 돕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도울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끼리의 만남이 있을 때 내가 여러 가지 잡담과 우스운 이야기를 할 때는 그녀는 아주 재미있어 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영적인 이야기를 하면 우리 사이는 표현하기 어려운 냉기가 흘렀습니다.
아내는 내가 영적인 이야기, 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너무나 썰렁해지기 때문에 다시는 그녀 앞에서 신앙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는 어떠한 영이 그녀에게 자신의 영의 수준이 나보다 훨씬 높다고, 동생의 수준은 형편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실제로 나는 영이 깊지도 높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은 나의 관심 밖에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사이에 어떠한 벽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깔깔거리고 웃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영성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래도 그다지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도 조금 더 자라게 되면 영들을 좀 더 분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몇 번의 간증을 시켜본 후에 혼돈을 일으키는 영들의 움직임이 좀 있는 것을 보고 더 이상 간증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좋기는 했지만 공개적인 사역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직통을 하며 주님과 교통하는 것을 간절하게 소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야곱에게 몇 십년을 침묵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령한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매사에 주의 음성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러한 이들의 특성은 영혼이 어둡고 눌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다른 이들의 신앙이 유치하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의 영성이 깊은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령한 삶이란 어떤 신비한 체험이나 황홀경이나 신비하고 깊은 지식이 아닌 자연스럽고 단순하고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이의 간증을 듣고 또한 책을 읽고 '아, 이분은 정말 대단한 분이구나.. 이 분에게 기도를 받고 도움을 받아야지..' 한다면 그것은 별로 바람직한 열매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아..주님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구나.. 너무나 가까우신 분이구나.. 은혜는 특별한 이가 받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도 임하며 주님은 내 곁에 아주 가까이 계신 분이구나..' 그렇게 깨닫는 다면 그것은 바람직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영적인 사역자를 계속적으로 의뢰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리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역자를 통하여 스스로 주님을 쉽게 경험할 수 있다면, 스스로 설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운 영혼입니다.
그녀는 소유욕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모든 것을 남에게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주변에 있는 집에 갈 때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아쉬운 것은 그녀는 영적인 전쟁에 대하여 잘 분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스스로 떠 안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책을 낸 후에 새벽이고 밤이고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전화가 왔습니다.
어떤 이가 영적인 책을 낸다면 그에게는 더 이상 개인적인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모든 심각한 문제에 빠져 있는 이들이 수도 없이 쉴 새 없이 도움과 기도를 요청하기 때문입니다.
영의 흐름이 없는 여러 평범한 상담이나 도움은 크게 상대를 돕지 못하며 악한 영들에게 충격을 주지 못합니다.
또한 악한 영들로부터 충격을 받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영의 흐름에 대하여 경험하고 알고 있는 이들은 상대의 영혼을 풀어주며 악한 영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줍니다.
그러나 또한 반대로 악한 영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까지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녀는 깊고 섬세한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거칠고 강력한 영들에게 눌려 고통하는 이들을 모두 감당하는 것은 그녀의 영혼에게는 무리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사역에는 전이현상이 있습니다. 즉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고통의 기운과 영들이 그녀에게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사역의 결과로 상대방은 어느 정도 치유를 경험하겠지만 그녀의 생명은 그만큼 소진되는 것입니다.
그녀는 귀신에게 고통하는 이들, 여러 질병으로 시달리는 이들, 눌려있는 이들, 도움을 요청하는 모든 이들을 무리하면서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 수명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게다가 내가 느끼기에는 그것은 그녀의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섬세하고 깊은 중보의 영을 가지고 있었으며 많은 이들을 상대하기보다는 조용히 주님과 교제하며 기도하는 쪽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현실적인 어떤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도움과 상담을 요청합니다.
많은 이들이 기도를 받고 예언을 받기 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표피적인 문제의 해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삶의 중심적인 것을 바꾸는 것입니다. 표피적인 문제들은 그들의 삶에 있어서 방향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삶의 자세를 바꾸고 주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바
꾸고 하는 것보다는 좀 더 강한 기도를 아주 오래 받고 몸과 마음이 즉시로 시원해지는 것을 원합니다.
물론 그들은 잠시 기분이 좋아지지만 다시 그러한 느낌을 얻기 위하여 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저번보다 좀 더 세게 기도해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한 경우에 그들의 중심이 바뀌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짐은 사역자들에게 옮겨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도 사역은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그다지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피적인 문제의 해결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아직 그러한 메시지를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은 좀 더 고통을 통과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많은 이들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인격적으로 요구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강제하듯이 요구를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기도를 해주거나 도와주지 않으면 심하게 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가 그녀에게 그렇게 요구를 했을 때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가지 말라고 했지만 그녀는 차마 거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다녀온 뒤부터 그녀는 앓기 시작했고 결국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책이 나오기 전에 그녀는 병원에 한번 가본적도 없었습니다.
감기 한번 걸려본 적이 없고 피곤도 잘 느끼지 않는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자기의 한계를 넘는 사역을 하면서 그녀는 짧은 기간에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나는 지금도 회한으로 가슴을 칩니다.
그녀의 책을 내지 않았더라면, 그녀를 사람들에게 소개하지 않았더라면..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강권해서 그녀를 도왔더라면.. 그러한 마음이 내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랬더라면 그녀의 생명이 이렇듯이 빨리 지지는 않았을 텐데.. 그저 아쉽고 후회스럽고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녀와 나의 차이점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녀는 떠났고 나는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녀는 외롭게 홀로 그 길을 걸어갔고
나에게는 많은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오직 그 차이일 것입니다.
나는 여러 영적인 경험을 하면서 문자 그대로 죽음에 근접한 많은 순간들을 겪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원수들의 강렬한 공격을 겪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생생한 실제였으며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옆에는 기도해주고 도와주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누나는 오직 혼자서 짐을 담당했습니다.
나 역시 그러한 도움이 없었다면 아직까지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그저 충만하게 해달라고 사로잡히게 해달라고 주를 구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치러야 하는 대가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하며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시험이 오고 어려움이 오면 불평하고 시험에 넘어집니다.
분명한 사실은 오직 주님을 구하기 원한다면 자신의 생명도 귀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편하게 살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그가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빨리 소멸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아내가 나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누나가 그 은혜를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빨리 가지 않았을 텐데.. "
나도 그럴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영성의 세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고 놀라운 세계이지만 그러나 치러야 할 대가는 결코 적지 않은 위험하고도 조심스러운 세계입니다.
주님의 어떠한 경험을 하면 할수록 겸손하고 겸손하고 또 겸손하여야 하며 모든 순간에 오직 주님을 간절히 붙잡아야 하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또한 주님께서 자신의 생명과 희생을 요구하실 때는 주저 없이 드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나는 몇 십년 동안 사람들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많은 고통들을 겪었습니다. 좋은 일도 있었고 적지 않은 경우에 실패도 있었으며 그 대가를 적지 않게 치렀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한계와 연약함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몸을 사리고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아직까지 그럭저럭 버티고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누나는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남을 위해서 아무 것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피곤하고 지치고 자신의 영이 어려운 중에도 그녀는 아무 것도 거절하지 못했고 남을 돕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은 그러한 영적인 압력을 잘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정말 도와줄 사람, 그녀를 위해서 기도해줄 사람이 필요했었습니다.
간혹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대체 중보기도가 왜 필요한가?
영성인이라면 자신의 영혼은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꼭 다른 이들이 기도해야 하는가?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어떠한 영성인이라고 해도 그가 구덩이에 빠져있을 때는 스스로 올라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구덩이 바깥에 있는 아주 작은 사람이 밧줄 하나를 던져도 그는 살아 나올 수 있습니다.
내가 많이 지쳐서 헤매고 있을 때 딸인 예원이가 나의 머리에 안수하고 기도를 해줍니다.
초등학생인 어린 아이일 뿐이지만 나는 그녀로부터 신선한 기름부음이 임하고 회복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예원아. 네가 기도해주니까 아빠가 머리가 너무 아팠는데 시원해지고 있어.."
그러면 예원이는 너무 기뻐합니다.
"그래? 와.. 신나라. 아빠..그럼 많이많이 기도해줄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이와 같이 우리가 서로 동역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한몸 입니다.
그러므로 혼자서 싸우는 이는 결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하루에 기도를 10시간 씩 한다고 해도 그를 위하여 중보하는 이가 없다면 그는 온전하게 설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사역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더 사역자를 위한 악령들의 공격이 거세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영적인 사역자를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스스로 충만하니까 알아서 하지 않습니까?"
어떤 전투가 있습니다.
적군은 우리 편의 장수를 가장 많이 둘러싸고 공격합니다.
그것은 장수만 쓰러뜨리면 전투에서 이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편의 장수를 보호해야 합니다.
수 많은 적군들이 우리 편의 장수를 공격하고 있는데
"자기가 충만하니까 알아서 하겠지.." 하고 있다가 장수를 잃으면 군사들은 혼비백산 오합지졸이 되어 전투에서 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역자들이 넘어집니다.
사역의 힘을 잃고 의기소침해 있습니다.
그것은 사역자를 향한 마귀의 화살을 방어해주는 이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사역자를 위하여 많은 것들을 요구하지만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역자들이 무기력한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녀의 표면적인 사인은 암병 이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에는 영적인 원인이 가장 큰 것이었겠지만 또한 잘못된 식생활도 적지 않은 원인을 제공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이 밤늦게 퇴근하기 때문에 늦은 식사를 하곤 했고 또 워낙 커피를 좋아해서 하루에 대여섯 잔씩 마시곤 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자살행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언젠가 기도원에서 그녀와 같이 금식을 한 주일동안 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음식은 먹지 않으면서도 커피만은 마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그처럼 빈 속에도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그것이 위장에 치명적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녀는 가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주님께서 누구를 위하여 기도하라든가. 하는 음성에는 순종을 하는 데 <커피 좀 마시지 말아라..> 하는 음성에는 순종을 잘 안 하고 넘어가게 돼.." 라고 말입니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누나를 잃고 나의 가슴은 아직도 터질 듯이 아픕니다.
그것이 주로 나의 불찰과 관련이 된 것이라 더욱 후회와 죄책감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나는 또한 감사합니다.
그녀는 주님을 경험하게 된 이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많은 이들을 돕고 세워주기 위해서 애썼습니다.
그녀는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안식하며 그 기쁨과 상급을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아주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었으나 신앙에 대하여는 그리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최선을 다해 누나를 사랑했으며 일에 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누나의 병간호를 하면서 조금치도 불평하지 않고 기쁨으로 섬겼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누나가 살 수만 있다면 평생동안 병의 수발을 해도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자기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을지 모르겠다고..
그는 누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섬기는 것, 사랑하는 것, 용서하는 삶에 대하여 배우고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삶은 누나가 그토록 사랑했던 주님과 신앙에 대하여 추구하고 알아보아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말은 누나가 생전에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그러한 변화는 누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나는 병원에서 빈소에서 누나에게 도움과 사랑을 받았다고 말하며 우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누나의 삶의 열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나의 사랑하는 누나는 떠났습니다.
그녀의 재능과 열정을 제대로 꽃 피우지도 못한 채 너무나 아쉽게 그녀는 떠났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아쉽게도 그녀는 그 꿈들을, 아름다움들을 충분히 펼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주님께서 그녀의 희생과 죽음을 받으셨다고 믿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이 사도 바울에게 큰 충격이 되고 그의 중보로 인하여 바울의 삶과 사역에 놀라운 변화가 있었듯이 나는 누나의 희생도 주님께서 헛되지 않게 하나의 거름으로 사용하실 것을 믿습니다.
아직도 그녀의 떠남이 믿어지지 않지만 나는 이제 누나에 대한 아픔의 마음을 이제 접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언젠가 만나게 될 영원한 처소에서의 만남을 기다려야 합니다.
마지막 아직 누나에게 의식이 있을 때 나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누나. 사랑해.."
그리고 또 말했습니다.
"누나..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정말 너무나 많은 미안함을 나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외로운 길을 혼자 걷다가 떠났지만 나에게는 많은 동역자들이 있음이 감사합니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 압니다.
그들은 그들이 돕지 않으면 나 혼자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부족한 존재로 느끼고 아는 것이 내게는 아주 행복한 일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에게 여행이 남아있습니다.
주님에의 길, 영성에의 길.. 그 길은 쉽지 않습니다.
내가 영성의 길에 대한 여러 공격과 위험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야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와 영성과 사랑의 길을 위하여 걸어가야 합니다.
조금 빨리 가든 아니면 좀 더 주를 위하여 오래 살든
우리의 삶과 죽음은 오직 주님을 위한 것입니다.
누나가 다 가지 못했던 길을 나는 이제 열심히 가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주를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걸어갑시다.
마지막 그 날이 올 때
주님을 대면하는 그 날이
우리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욱 더 기도하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주의 길을 걸어가십시다.
너무 사랑하는 나의 누이여..
부디 주님의 품안에서 편히 쉬소서..
영원한 곳에서 다시 만나
정말 행복하고 아름다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서 누나에게 했었던 모든 잘못들을..
다 용서해주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부디
안녕히..
사랑하는..
미안한
동생 드림...
사랑하는 누나를 떠나보내고 (정원목사)
추신:이글은 최근에 글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