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에서 최고의 히트상품이 막걸리라고 한다. 생활 속에 늘 술과 가까이 지내는 한 사람의 술꾼으로서 술이 최고의 히트상품이 되었다고 특별히 기뻐할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서운해 할 일도 물론 아닌 것 같다. 연말 송년회 등으로 술자리가 빈번한 요즈음 폭탄주가 노도처럼 밀려와 폭풍처럼 번지고 있는데 사회전반으로 폭탄주가 이렇게 유행되는 것은 나름대로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폭탄주의 핵심은 술 취하는 속도를 당기는 것으로, 소주나 양주를 맥주와 섞어 마심으로 맥주 속에 함유된 탄산가스가 위(胃)에서 도수 높은 소주나 양주를 빨리 흡수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사용되는 술은 가장 흔한 소주, 맥주, 양주와 함께, 힘든 일을 할 때 또는 군대회식 등에서 사용되며 뒷전으로 물러앉았던 막걸리까지 근래 들어 전면에 부상하면서 이들 모두가 폭탄주의 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폭탄주에 사용되는 술은 소주와 맥주를 섞는 것, 양주(위스키)와 맥주, 막걸리에 소주와 사이다, 양주와 포도주 등 매우 다양하다. 보통의 경우 순한 술을 맥주잔(큰 잔)에, 그리고 독한 술을 소주잔(작은 잔)에 따라서 서로 섞지만 때론 반대로 독한 술을 큰 잔에 순한 술을 작은 잔에 따라 도수를 극대화하기도 한다.
폭탄주의 역사는 막걸리에 붉은색의 소주(진도의 홍주 등 지금도 붉은색의 소주가 있지만 무색의 소주를 선호 하다 보니 지금은 거의 없음) 한잔을 부어 잠시 후 붉은색의 소주가 잔 위로 솟아오르면 그때 마시는 방법으로 '혼돈주' 또는 '자홍주'라 하여 이미 조선시대부터 시작되었고, 1960~1970년대 막걸리에 사이다를 타서 마시는 방법의 '막사이사이주(필리핀의 償이름)' 가 유행이었는데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주 즐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즈음 개념의 폭탄주는 1980년대 무렵 시간에 늘 쫒기는 군 고위간부나 법조계(검, 판사)에서 시작되어 언론계와 기업체임원들 등으로 확산되다가 요즈음엔 너도 나도, 그리고 소도 개도 이렇게 술을 말아먹는 시대가 되어 끝없이 확산되고 있다.
폭탄주는 섞어지는 술의 재료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불리게 되는데 과거의 수소폭탄주, 드라큘라주, 원자폭탄주 등의 이름이 근래에는 소주와 맥주를 섞으면 '소폭', 맥주와 양주를 섞으면 '양폭' 등으로 간소화되어 불리고 있다. 때로는 소주, 맥주, 막걸리, 양주를 큰 그릇에 모두 섞어 돌려가며 마시는 '난지도주'가 신공법으로 나돌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에서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가장 선호하는 폭탄주는 양주를 타서 마시는 양폭이 약 30%이며 소폭이 약 60%, 기타방법이 10% 정도로 소폭이 대부분이다. 이는 김영삼 정부시절에 모 고위관리가 외화를 절약하기 위해 양주보다 소주를 권장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가만 보면 폭탄주는 고스톱이 번성하는 과정과 많이 닮아 있다. 고스톱이 싹쓸이 고스톱, 전두환 고스톱, 노태우 고스톱, 최규하 고스톱처럼 한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했다면 폭탄주도 마찬가지다.
타이타닉영화가 나온 후로는 '타이타닉주'라 하여 맥주를 부운 맥주잔위에 빈소주잔을 넣고 소주를 따라 침몰시켜 마시는 방법이 있고, '회오리주'라 하여 맥주잔에 소주잔을 넣고 잔 위를 휴지로 감싸서 힘차게 돌리면 가운데 회오리가 생기며 섞는 방법, '충성주'라 하여 맥주잔위에 젓가락을 걸쳐 그 위에 소주잔을 아슬아슬하게 놓고 술상의 바닥을 자신의 이마로 소리 나게 박아 소주잔이 맥주잔에 떨어지게 하는 방법, 월드컵 때는 소주잔을 걸친 젓가락을 발로차서 떨어뜨리는 방법, 올림픽 때는 '성화주'라 하여 성화를 전달하듯 빈맥주병을 거꾸로 하여 그 평평한 부분에 폭탄주를 올려 전달하면(잔에 손을 대지 않는 전제하에) 상에 세워 놓을 수도 없어 단숨에 마실 수밖에 없는 등 그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폭탄주가 이렇게 확산되는 데는 폭탄주가 비빔밥이라는 세계적인 음식문화를 만들어낸 우리민족의 정서에 잘 맞기 때문인 것도 같다. 사실 폭탄주의 3대 기본이념은 '단합과 신속과 평등'이다. 통상 술자리엔 주빈(윗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좌석 중앙에 앉은 주빈이 그날의 폭탄형태를(소폭, 양폭) 정하여(물론 민주적인 사람은 동의 절차를 구하지만) 공장(제조공장)을 자처하며 자신의 앞에 사람 숫자에 맞추어 맥주잔을 놓은 뒤 자신이 직접제조를 하여 분배한다. 계속 공장을 역임하거나 상황에 따라 돌아가면서 똑같은 행위가 계속된다.
개인의 주량이 고려되지 않아 주량이 모자란 사람은 대취할 수밖에 없고, 위생적이지 않으며, 술에 몰두해 대화는 하지 않고 술만 먹게 되는 등 단점도 있지만 폭탄주에는 장점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첫째 경제적 효과로 술이 빨리 취하기 때문에 술자리가 빨리 끝남으로 시간과 술값과 안주 값이 절약된다. 둘째, 단결과 우정을 돈독히 하게 되는데 폭탄주를 다 같이 들고(소주는 각자 또는 가까이 있는 한 두 사람씩 따로 마시지만 폭탄주는 언제나 모두 함께 동시에 마심) 구호와 함께 마시고 마신 후 박수를 함께 치면서 어색하지 않고 단합된 분위기를 만든다. 셋째, 민주적인데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모두에게 공평하다. 윗사람인 경우 많은 사람들로부터 집중적으로 술이 권해지는데 이를 방지하고, 업무상 접대를 해야 하는 등의 약자에게도 방어수단을 제공한다. 넷째, 건강에 좋은데 독한 양주나 소주를 그대로 마셔 식도나 위에 부담을 주지 않고 맥주를 타서 마시게 됨으로 부드러움을 갖는다. 다섯째, 재미를 부여한다. 술을 제조하는 방법과 건배구호가 다양하다보니 그 과정을 즐기며 하나의 놀이가 된다.
이러한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폭탄주 역시 술임에 분명하다. 연말을 보내며 함께 해야 할 집단들과의 총총한 일정으로 매일저녁 그리고 점심식사 과정에서 마시게 되는 술은 언제나 넘치게 마련이다. 조선후기의 실학자였던 이덕무는 사소절(士小節) 성행(性行)조에서 '훌륭한 사람은 술에 취하면 착한 마음을 드러내지만 조급한 사람은 술에 취하면 사나운 기운을 나타낸다." 고 했다.
'과유불급'이라던가, '술은 잘 마시면 약이지만 잘못 마시면 독이 된다.' 고 하던데 내일 또 마시려면 오늘은 점심때 마신 걸로 이만 마감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