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를 하기로 했다. 한 발 앞서 수리를 끝내고 환골탈태한 친구집을 보고나서야 결정을 했다.
뜯고 부수고, 다시 만들어 붙이고 .... 한동안 번잡을 떨어야 하는 일도 만만찮고, 와중에 이웃에게도 폐를 끼칠것 같아 망설이던 참이었다.
그러나 새뜻한 분위기가 줄 기쁨만 생각하며 미적대던 마음을 접기로 했다.
삶의 대부분은 타인에게 보여주기위한 것이라지만, 집을 수리하는 것은 중년의 풀기 사그러져가는 마음에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자는 의미가 더 컸다.
묵은것들을 걷어내고 터수에 맞게 단장하여 조금은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일상을 응원할 필요가 있을것 같았다.
십 수 년 간 그대로인 살림살이다. 낡고 헐겁고 때 탄 세간들이 수두룩하다. 시간의 입김이 시나브로 말끔하던 때깔을 지워버린 까닭이다. 쓰지않는 잡다한 물건들을 없애라는 친구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이참에 그러리라 작심을 한다.
허섭스레기 부엌살림과 가재도구들이 줄줄이 끌려나와 좁은 거실을 점령한다. 둘러보니 갖가지 사연이 묻은 물건들이다. 아금바리 살림꾼들은 정리부터 단호하다는데, 낡았지만 그것들이 가진 흐릿해진 추억마저도 내처지는 것이 아쉬워 들었다 놨다, 나는 또 내 안의 나와 옥신각신 중이다. 잠시 휴전을 선언하듯 널부러진 물건들을 피해 방으로 들어온다.
방이라고 다를까. 옷장 속에도 걸어둔 옷들이 빼곡할 게다. 이태가 지나도 입지 않는 옷은 정리를 해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기어코 비움의 갈등에 발목 잡히지 않으리라 재차 다짐을 해 보지만, 글쎄다.
옷장을 여니 연분홍 덮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옷에 먼지가 앉을세라 씌워놓은 커다란 공단보자기인데, 처음으로 자수를 배울 때 만든 서툰 습작품이다. 자랑스럽게 내어놓기도 민망하고, 매정하게 없애 버리는 것도 내키지 않아 생각해 낸 용도가 옷 덮개였다. 손을 뻗어 덮개를 걷어내려는 순간, 잠시 어지럼증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놀랍게도 눈 앞에서 나비 한 마리가 포르르 날이오르는 것이 아닌가. 눈을 껌뻑인 후 주변을 둘러보지만 어디에도 나비의 기척같은 것은 없다. 그제야 덮개가 생각난다. 거기에는 형태와 색깔이 다양한, 수 십 마리의 나비가 수놓아져 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내 손 끝에서 태어난, 천 위의 생명체들이다.
결혼 초, 부업을 준비하는 언니를 따라 나선 적이 있었다. 옷 수선과 홈패션 등을 수강하는 학원이었다.
언니가 실습을 할 동안 나는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옆 교실은 한복 자수를 배우는 반이었는데. 재봉틀에 앉은 여자가 자수에 열중히고 있었다. 그녀는 오른쪽 다리를 벌려 자수의 폭을 조절하며 두 손으로 연신 천을 움직였다.
잠시 후 붉고 탐스러운 장미 한 송이를 뚝딱 피워냈다. 그런 그녀가 너무나 대단해 보였다.
"한 번 해 보실래요?" 호기심에 찬 눈길로 한참을 기웃거리는 나를 향해 그녀가 말을 건넸다. 그리고는 선심을 쓰듯, 주뼛거리는 내게 재봉틀을 양보해 주었다. 실습용 천이니 망쳐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 날 나는 언니 손에 이끌려 교실을 나올 때까지 재봉틀 앞을 떠나지 못했다.
이튿날 바로 학원에 등록을 했다. 부업이 되면서 재미도 있다니 금맥을 발견한 것처럼 신이 났다. 내가 알지 못하던 내 재능을 찾아내기라도 한 듯,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한 달이 지날 무렵, 학원생 중 제일 먼저 규모가 큰 한복 자수집에 취업이 되었다. 비록 수습생이라는 딱지가 붙기는 했지만.
한복 자수는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섬세하고 까다로운 작업이다. 자칫 바늘이 실을 먹는다던지 자수가 두꺼워지거나 조금의 흠이라도 생기면 비싼 천을 송두리째 못쓰게 되니 초짜에게는 맡길 수가 없다. 하여, 나도 도안을 보고 자수실의 색깔을 맞춘다던지 수 놓을 때 덧대었던 뒷면의 부직포를 떠어내는 일부터 시작했다. 재봉틀을 하나씩 차지하고 능란하게 수를 놓는 선배들을 넘겨다보며 내게도 그런 날이 오리라는 꿈에 부풀었다.
화사한 한복 천에 내 손으로 자수를 놓던 날의 가슴 떨림은 아직도 생생하다. 갖가지 문양의 자수중에서도 내가 단연 두각을 나타낸 건 나비紋이었다. 한 사람이 모든 문양을 잘 하기는 쉽지 않아,장미와 모란에 자신 있는 사람, 이파리에 자신 있는 사람, 떡살무늬에 자신 있는 사람 등 다들 자신만의 특기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수놓은 나비문양의 날렵하고 매끄러운 선이 일품이라고 인정을 받자 나비자수는 모두 나에게 맡겨졌다. 선배들은 자기 몫의 자수를 마친 후 '어이! 나비 부인'하며 천을 건네주곤 했다.
적합한 색실을 고르고 자수의 방향을 가늠하는 일은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화려한 자수의 물빛 고운 한복은 뜻 깊고 행복한 어울림의 옷이다. 이 나비는 어느 여인의 아리따운 자태를 감싸 날아오를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일도 즐거웠다. 대체로 바탕의 꽃 수가 놓인 후 마지막으로 나비문紋이 들어간다. 화사한 바림으로 어우러진 꽃수에 생동감을 더하는 나비문, 그 화룡점정의 마무리를 끝내면 스스로 도취되어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세상에 존재하기나 한 건지 싶은 각양각색의 나비는 여러 모습으로 태어나 내가 달아 준 날개를 달고 날아올랐다. 내 속에 움츠리고 있던 수 많은 나비를 훨훨 날려보낸 것 같은 뿌듯함에, 뭉쳐오는 등과 어깨도 견딜만했다. 쉬는 시간도 아까웠다.
얼마나 몰두했던지 재봉틀 바늘에 손가락이 찔려도 재봉틀 기름 한 방울 쓱 바르고는 또 일에 매달렸다. 신기하게도 바늘에 찔린 상처는 재봉틀 기름을 바르면 덧나지고 곪지도 않고 잘 아물었다. 자수야말로 나에게 마침맞은 일이라는 생각이 굳어져갔다. 우연이 불러온 필연에 감사하며, 수 놓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야무진 꿈에 부풀어 보낸 시간이었다.
그러나 유명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비극적인 결말처럼, 어설픈 나비부인의 꿈도 허무하게 주저앉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편하고 활동성이 좋은 기성복이 한복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인건비의 상승으로 값싼 기계 자수마저 등장을 하자 한복 자수는 사양직종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결국 나의 부업 도전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고,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 꿈의 자리는 한동안 나를 헛헛함으로 배회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천으로 내려앉지 못한 나비들이 내 안에 똬리를 틀었는지, 지금도 나비만 보면 알 수 없는 반향이 일어난다. 때로는 한복집 유리문에 코를 박고 마네킹이 입고있는 한복 자수를 홀린 듯 바라보기도 한다.
농담濃淡이 화사한 아름다운 꽃에는 대개 나비가 편편 날고 있다. 꽃에서 머물던 나비는 이윽고 자유로이 날아오를거란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곤한다. 실종된 꿈마저 향기롭던 젊은 날, 세월을 더듬어 만져지는 내 안의 나비문紋이 반가와서일 게다.
덮개를 걷어 차곡차곡 개킨다. 자칫 정리 대상 1호가 될 뻔 했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내 손이 닿을 때마다 못나고 삐뚤어진 나비들이 하나둘 기지개를 켠다. 언뜻 나비들의 잉잉대는 날갯짓이 느껴지는 것같기도 하다.
푸른 강물처럼 거침없었던 내 꿈의 이력을 말없이 증언하며, 삶의 부대낌으로 후줄근해진 어깨를 다독여주는, 그들을 어찌 매정하게 내치랴. 이건 이래서 살리고 저건 저래서 살리고 .....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버리는 것보다 끌어안을 게 훨씬 더 많을자도 모르겠다. 그런들 어쩌랴. 잊고 있던 내 안의 나비문紋을 건질 수 있었던 행운도 낡고 오래된 것들에 매정하지 못한 우유부단한 내 성정 덕분이지 않은가.
지난 꿈의 흔적을 갈무리하는것도 살아 온 날의 점검이고 응원이란 생각이 든다. 그것들은 단장된 집에서 다시 날아오를 내 꿈을 수 놓고 설계하는 밑그림이 될터이니.
첫댓글 초고를 이리 훌륭하게 완성시켰으니 과연
나라의. 정상들에게 인정받을 만하네
글은 이리되어야 하는구나 실감한다
초고를 올린 우를 용서를 구하며 ㆍㆍㆍ
거듭 수상을 축하한다
여러차례 교정도 했지만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운이 좋았던 것이지.
공모전은 심사위원의 눈에 들어야하는거니 심사위원의 입맛에 맞아 떨어져야 당선 가능한것이니 ᆢ
운빨의 덕이랄 수 밖에ㅎ
오자 3군데 발견ㅡ나를 행해ㅡ향해ㅡ나비저수ㅡ나비자수ㅡ또한군데 허섭스레기.?
메일보낼때수정하기
여러번 교정해서 틀린건 없을거야ㅡ맞춤법 틀리면 예심에서 거의 탈락돼ㅡ간혹 틀린건 내가 복사후 옮겨 붙인게 아니고 여기다 직접 치는 과정서 생긴거고 허섭스레기는 맞는거야ㅡ 이번에 허접 쓰레기도 복수표준말로 인정받았음.
검색해봐ᆢ
영옥아
좋은글 읽게 해 주어서 감사해~
나도 한때 여성회관에 한복 배우러 갔는데 인기 좋아서 일찍 마감되고 생소한 미싱자수 등록 했는데 소질없어 중도하차~ 학교 다닐때 손으로 하는거는 한번도 마무리 해본적이 없는데 그때나 이때나 어쩔수 없나보다
태순이라는 친구 만나서 아직 인연 이어가고 있는데 영옥이 글 읽으니 잊고 있었던 먼 추억이 생각이 나서~혜미가 읽어보고 작가가 쓴 글이라고
.
그러고보면 참 열심히 살았다 그쟈ᆢ
난 어떤 때는 이런 생각한단다. 나비부인말고 복부인이 됐으면 돈이라도 왕창 벌었을건데 희한한 걸 한다고 열정을 낭비했구나 싶어ㅎㅎ
나도 학교때 수예시간에 인형이랑 액자 끝 못맺어서 고촌 희옥이가 해줬던 생각나네.
어릴 적 고향친구란 참 많은 추억을 공유하니 특별하구나 ᆢ 읽어줘서 고마워~~^
복부인이 되었으모 니는 아메도 우리곁에 없을지도 모르지
레벨 업 되어 미국을 갔을지도?
고마 이래 사는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