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산 한 바퀴 돌고 나니까 정신이 좀드네요. 오리엔트는 시계인줄 아셨다구요. 천천히 보세요.
오리엔트(Orient). 해가 뜨는 곳이라는 뜻으로, 지중해의 동쪽 여러 나라를 이르는 말. 넓게는 동북아프리카도 포함하며, 보통은 아시아를 말하나 때로는 그 가운데에서도 극동 지방을 가리키기도 한다.
서양사에서, 문명의 발상지인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를 이르는 말. 인도 인더스 강 유역에서 서쪽으로 지중해 연안까지 펼쳐져 있는 지역. 오리엔트는 고대에 찬란한 문명이 발생했던 곳으로, 한때 발전하지 못하고 후진지역으로 전락하기도 했으나, 동서양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는데다가 계속적으로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중동지역과 대략적으로 범위가 일치하여, 오늘날 세계 정세에 많은 영향을 끼치며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다.
9. 오리엔트와 그리스 세계의 투쟁.
페르시아 전쟁 발발(기원전 492-479년)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400년경/ 철기문화 시작.
기원전 550년, 지금의 이란 고원에서 페르시아가 일어났다. 페르시아의 최전성기는 세 번째 통치자 다리우스 1세 때이다. 다리우스 1세는 사분오열되었던 오리엔트 세계를 통일하고 인더스 강에서 이집트, 마케도니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지중해를 눈앞에 둔 페르시아가 해상권을 둘러싸고 그리스와 일대 격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페르시아 전쟁이다. 이 전쟁은 사실상 오리엔트 세계와 그리스 세계 중 어느 쪽이 향후 지중해일대의 주도권을 쥐느냐 하는 중대한 결전이었다.
싸움의 빌미는 이오니아 지방의 그리스 식민도시들이 일으킨 반란이었다. 페르시아의 압제에 반발하고 나선 이들 도시를 아테네가 원조하자, 다리우스 1세가 이를 구실삼아 그리스 원정을 단행. 기원전 492년, 다리우스 1세는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부터 해륙양면으로 그리스 본토를 공격했다. 때마침 불어온 폭풍으로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서 되돌아가고 말았다.
2년 뒤, 이번에는 에게 해를 건너 직접 아테네로 쳐들어갔다. 페르시아군은 아테네 북동쪽 26마일 지점인 마라톤 평원에 상륙했다. 겁에 질린 아테네 인들은 항복하자는 쪽과 싸우자는 쪽으로 의견이 갈라진 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때 유명한 정치가이자 웅변가 테미스토클레스가나섰다. '우리의 아테네를 자유의 도시로 지키든지, 항복해서 시민들 모두 노예가 되든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 여러분은 노예가 되길 원하는가?'
그의 웅변에 용기백배한 시민들은 총동원하여 전선에 나섰다. 그렇지만 중과부적 이윽고 사령관 밀티아데스는 적을 골짜기로 유인, 양쪽에서 협공하는 전술을 썼다. 결국, 페르시아 군은 6,400명의 전사자를 내고 후퇴하고 말았다. 아테네 군의 피해는 전사 192명뿐이었다.
그날, 전투 결과를 걱정하며 광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 앞에 기진맥진 한 모습의 전령 한 사람이 나타나. '이겼다!'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아테네인들에게 승리의 소식을 알리고자 26마일을 쉬지 않고 달려온 탓이었다. 이 전령을 기리는 뜻에서 생긴 것이 바로 마라톤 경주이다. 42.195km라는 마라톤경주 거리는 이 병사가 달려온 거리를 기념한 것이다.
기원전 480년, 다리우스는 사망했고, 그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3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왔다. 그리스 군은 육지에서 테르모필레, 해상에서는 살라미스 섬을 결전지로 정하고 적을 맞이했다. 테르모필레 방어의 총지휘관은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였다. 그가 이끄는 7천 병사들은 페르시아 대군을 맞아 끝까지 싸우다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스파르타 군의 분투로 시간을 벌어 전열을 가다듬은 아테네 군은 살라미스의 좁은 수로로 페르시아 함대를 유인, 대패시켰다. 게다가 때마침 불어온 폭풍우로 페르시아 함대는 4분의 3이 가라앉고 말았다. 살라미스 해전은 전국을 결정지은 중요한 전투였다. 결국 전쟁은 이듬해 폴리스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전쟁 후 아테네는 황금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테네는 페르시아의 재침에 대비, 델로스 동맹을 조직했다. 이 동맹에는 무려 200개에 달하는 폴리스들이 참가했는데, 아테네는 이들이 내는 연금으로 대 함대를 만들고 맹주가 되어 절대적인 지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동맹의 성격은 점차 변질되어갔다. 연금은 아테네에 바치는 공물처럼 되었고, 각 폴리스들이 아테네의 지배 아래 들면서 아테네 제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무렵 아테네를 통치한 사람이 페리클레스이다. 페리클레스는 동맹 시들이 내는 공물을 기반으로 해서 아테네를 번영시켰다. 그리스 고전문화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문화유산들은 대부분 이때의 것이다. 한편, 아테네의 독주에 반발한 스파르타는 따로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조직했다. 사실 페르시아 대군을 맞아 왕 이하 전원이 목숨을 바친 스파르타로서는 아테네의 독주가 괘씸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싸우기 시작했다. 폴리스들은 제각기 아테네 혹은 스파르타 편이 되어 전쟁에 휘말렸다. 기원전 405년, 스파르타의 명장 리산드로스가 이끄는 해군이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에서 아테네 해군을 격파하고, 이듬해 아테네를 함락시켰다. 27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첫댓글 영화 300의 배경이 바로 이 시대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