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sty Blue is not There.
잿빛 흐린 명암 속에 언뜻 비쳐지는 푸른 감성의 락 밴드 더스티 블루
-우중 노천 인터뷰. 그러니까, rainy street interview.
-with street writer. 방 호 정
(사진출처 www.cyworld.com/courlyflower)
며칠 째 추적추적. 서럽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2009년 5월 21일 밤 10시 경. 부스스한 머리에 비니를 눌러쓰고 추리닝 차림 그대로 방을 나서, 신촌 놀이터에서 서성이고 있는 락 밴드 더스티 블루와 접촉하다. 멤버 중 막내. 시크함의 결정체인 드러머 손승호 군은 보이질 않았다. 뭘, 인터뷰씩이나…. 라고 중얼거리며 귀가했음이 분명했다. 잔류 멤버들. 보컬 김이안. 기타 남금산. 베이스 민경준은 홍대서 막 합주를 마치고 건너 온 터라 저마다 커다란 악기 케이스를 메고 있었고,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근데 우리 뭐 먹지? 인사를 생략한 채, 메뉴를 고민하다 결국 고기 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노천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불판 위에 갈매기살과 목살이 지글거리며 익어갔고, 온갖 잡담들이 그 위로 작렬했다. 그 중 어떤 것은 아이들이 들어선 안 되는, 지면에 옮길 수 없는 껄쭉하고 질펀한 것들이었다. 몇 차례 술잔이 돌고, 나는 나름 무게 잡고 말했다. 진지하게 해. 진지하게. 인터뷰니까. 수첩을 꺼내 들고 질문을 던지려니. 그다지 궁금한 게 없었다. 대충 끝내고 술이나 빨자. 김이안이 말했다. 미리 준비해둔 질문 따윈 있지도 않았다. 성의 없는 인터뷰어와 성의 없는 밴드. 어쩌면 험난한 길이 될 지도 모른다. 맨 정신으론 힘들겠다. 일단 소주 한 잔 빨고 가자.
★ 더스티 블루가 뉘규?
사실 더스티 블루는. 내가 좀 안다, 고 할 수 있는 밴드다. 지난 몇 년간 같은 지하 공간에서 먹고 싸고 자고 술 먹고 떠들고 놀고, 싸우다 또 놀던 식구들이었으니. 예의와 범절이 난무하는 반듯한 인터뷰가 되긴 애초에 글렀다. 현재 홍대 씬의 트랜드와는 다른 느낌의 밴드라고. 음악평론가 박은석씨는 말했다. 어느 소녀 블로거는 이렇게 말했다. 근래 국내 인디 씬의 모던 락 밴드들의 음악이 끌어 안아주고 싶은 모성을 자극하는 반면, 더스티 블루는 안기고 싶은 느낌이라고. 하긴, 가끔 사내인 나 또한 그들의 라이브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안겨버리고 싶은데 소녀들은 오죽할까. 더스티 블루의 음악은 선이 굵고 스트레이트한 락 앤 롤을 구사한다. 허나 동시에 슬픔보단 체념에 가까운 관조적인 감성이 혼재해있다. 몇 년 전. 본지에다 썼던 음반 리뷰에서 나는 그들을 ‘잿빛 흐린 명암 속에 언뜻 비쳐지는 푸른 감성의 락 밴드.’ 라고 규정했다. 여러 매체에서 그들을 소개할 때 자주 인용되는 걸 보니, 꽤나 적절한 표현이었나 보다. 한마디로 그런 더스티 블루한 음악을 하는 밴드다. 밴드 명은 기형도의 시.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종이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어떠한 빛깔이 덧 입혀지든 내면의 본질은 변하지 않길 바라는 염원을, 또는 각오를 담고 있다.
★ 쪼끔만 노력하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락 밴드 ‘더스티 블루’의 이야기들.
● 2003년 11월 결성. 현재 햇수로 7년 차 락 밴드. 더스티 블루는 홍대 앞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밴드가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동안, 단 한 번의 멤버 변동 없이 오랜 세월, 인디 씬에서 주목 받고 있는 7년차 루키. 기대주로 버티고 있다. 아직도 몇몇 교양 없는 분들은 한 끗 차이로 모던 락 밴드 미스티 블루와 혼동하기도 한다. 어쩌다 보니 지난번에 이어 이 번 신보 발매 시기도 비슷하다.
●부산 출신의 보컬 김이안과 기타 남금산은 외견상으론 하나도 닮지 않았지만 친 형제다. 김이안이 “뭐? 사랑? 웃기지 말라 그래. 어차피 함께 즐긴 것 아니었어? 뭐라고 욕을 해도 좋아. 어차피 어둠이 나를 용서할 테니까. 크하하하하” 같은 대사를 칠 것처럼 생겼다면, 남금산은 “뭐 마시고 싶어? 오렌지 쥬스? 꼭 너처럼 상큼한 걸 좋아하는 쿤하. 이런 장난꾸러기….” 같은 대사를 치게 생겼다. 오해마시라. 단지 외견상으로, 그렇단 말이다. 실제로 그러진 않는다. 하지만 역시 핏줄인지라 그들은 천상 락커의 거친 소울을 공유하고 있다. 외견상 오덕군자 (예로부터 지,덕,체,예. 그리고 피규어. 이렇게 다섯 가지 덕을 두루 겸비한 선비를 말한다. 아니라능!! 그렇지 않다능!! 같은 오덕 어법을 구사한다.) 느낌을 풍기는 드럼 손승호는 말했듯 시크함의 결정체이며, 목사님의 아들로 현재 신학대학원생. 믿음 충만한 드러밍을 자랑한다. 어쩐지 보사노바틱한 외모의 베이스 민경준은 파라과이에서 온 청년으로 낙천적. 가구적 (가끔 아주 오랫동안 미동이 없을 때가 있으나, 확인해보면 매 번 살아있다.) 성격의 소유자. 그다지 절묘하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별 탈 없이 7년을 함께 하고 있는 그들.
Q-지금껏 멤버들 간의 심각한 위기는 없었나?
A- 결성하고 나서 지금까지 매 순간이 위기의 연속이었지. 그러다보니 위기상황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 당연하게, 조금은 편안하게 위기에 맞서게 되었다고나 할까.
● 2005년 6월. 그들은 대망의 1집. ‘unknown artist' 발매한다. 홈 레코딩으로 자체 제작한 이 음반은 부채와 의식주를 한 큐에 해결해주진 못했지만, 클럽 공연 외에, 별다른 홍보 하나 없이 손익분기점을 가볍게 넘기고. 발매 당시. 어쩌자고, 겁도 없이 각종 유명 음악 포털 사이트 데일리차트에서 동방신기를 비롯한 아이돌들을 엉덩이로 깔았으며. 1집 타이틀곡 ‘이젠 그녀를 놓아주세요’는 벅스 뮤직 종합차트에 밴드로선 유일하게 20위로 진입해 두 달이 넘도록 상위권에서 버텼으며. 어머 씨발, 왜이러니? 2005년 12월. 유명 음악 포털사이트 향뮤직과 음악창고에서 각각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되었다. 향 뮤직에선 ‘노이즈 가든과 유 앤 미 블루가 만나면 이런 음악일까?’ 라고 평을 했으며. 특히 음악창고의 근성 있는 리뷰어 김병군 씨는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지하 부스에서 만들어 낸 첫 앨범에 대해 “벌써부터 세계적인 사운드를 완성해냈다. 대한민국의 밴드라고 평가 절하되어선 안 된다. 같잖은 라디오 헤드(!!! .저, 저기요.)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등등의 극찬을 쏟아내는 바람에. 전혀 의도치 않게 국내 라디오 헤드 팬들에게 미움을 사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들 역시 라디오 헤드의 팬이다.
암튼, 그러고도 모자라. 2006년 10월엔 한국 문화 컨텐츠 진흥원 '인디 지원 육성 사업‘에 선정되어 든든한 정부 지원 아래 2집 앨범 녹음에 들어갔고, 2008년 8월엔 부산 국제 rock 페스티발 참가하여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연이은 선정과 수상에 지쳐 막간을 이용해 2008년 11월 디지털 싱글 '오늘까지만'을 발매했으나, 식상하게도, 2008년 12월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12월의 헬로 루키(!!!!!)로 선정. 방송 출연을 했다. 지들이 무슨 건스 앤 로지스도 아니면서 곧 나온다고 수차례 뻥을 치다 결국. 장장 4년 만에 2009년 6월에 두 번째 정규앨범 'Dusty Blue - Lost room' 발매를 앞두고 있다.
★ LOST ROOM.
Q- 이전의 앨범과 발매될 신보의 차이가 있다면?
A-일단 모든 면에서 한 단계 더 발전했어. 그간 멤버들 각자의 역량도 늘었고, 팀으로써의 시너지도 더 강해졌어. 전작이 좀 투박한 부분이 있었다면, 훨씬 안정적이고 정제된 느낌이야. 첫 앨범은 아무래도 처음이니까 욕심도 있었고, 하고 싶은 거 다해보자는 식으로 멋모르고 여러 장르를 실험했다면, 이번 앨범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레 일관된 노선이 정해진 것 같아. 전체적으로 엑티브해진 느낌? 게다가 처음으로 스튜디오에서 레코딩 했으니까 사운드의 질적 차이도 클 거야.
Q-lost room 이란 타이틀의 의미는?
A-1집과 감정 선상에서 이어지는데, 1집 unknown artist가 작은 방에 갇혀 상처와 아픔에 대한 내면적 고찰에 집중했다면, 이번 새 앨범 ‘Lost Room’에서는 이제 그 방의 불을 끄고 세상으로 나간다는 의미야. 1집내고는 체념의 정서라는 얘길 많이 들었는데. 이번 앨범은 사운드부터 감성까지 긍정적인 기운이 도는 것 같아. 이것도 자연스런 수순이지. 체념에서 바닥 한 번 치고, 겁날 게 없잖아. 그럼 또 힘내서 가야지. 그리고 이게 또 미드 제목이야. 어쩌면 다음 앨범 타이틀은 프리즌 프레이크나 24시, 하우스? 뭐 정도가 되지 않을까?
Q-어쩌다 4년 만에 앨범이 나온 거야?
A- 우여곡절이 많았지. 회사 문제도 있었고. 녹음 끝난 지는 꽤 되었는데. 회사가 없어졌어. 작년 여름에 부산 국제 락 페스티발 무대 오르기 전날 새벽에. 사장님이 여러 사정으로 회사를 유지하지 못할 것 같다고 털어놓으시더라고. 그게 무대 오르기 딱 7시간 전이었어. 갑자기 공중으로 붕 뜬 거지.
Q-그럼 앨범 발매 후 활동계획은?
A- 일단, 올 여름에 일본 후지 락 페스티발이랑. 섬머 소닉 페스티발. 그리고 영국에서 열리는 글리스톤베리 페스티발 같은 세계적인 무대에 꼭 한 번 서 보고 싶어. 불러만 주면. 펜타포트 랑 이번에 새로 생긴 지산 락 페스티발도. 좀 불러줬으면 좋겠어. 아마 여름부턴 3집 녹음 들어갈 거야.
Q- 그게 뭔 소리야? 2집 발매를 앞두고 인터뷰하다가 3집 녹음 들어갈 거라니…
A- 예상보다 발매가 꽤 늦어졌잖아. 그럼 그 동안 그냥 놀아? 계속 공연하면서 틈틈이 곡 작업 했지. 오늘도 합주실에서 새 곡 맞춰보고 오는 길이야. 5곡 나왔으니 벌써 반 정도는 나왔어. 3집은 아마도 다시 다양한 장르에 대한 실험이 될 것 같아. 하지만 첫 번째 앨범이랑은 또 다른 방식이겠지.
난데없이 3집 얘기가 나오자 얘 네들은 새로운 곡들에 대해, 좀 전 합주에서 서로의 플레이에 대해 지들끼리 이러쿵저러쿵 한참 동안 따지며 의논하기 시작한다. 좀 전 까지 인터뷰 하던 상황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7년차 2집 밴드의 베이시스트 민경준은 개인 레슨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얼마 전 클럽 공연 때 같은 무대에 선 연주자에게 자극을 받은 듯 했다. 내가 더스티블루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게 있는데, 뭐든 조낸 열심히 안하면 안 될 것 같애. 근데 쟤네들은 조낸 열심히 하잖아. …쟤네들은 잘 될 거야. 아마….
새 곡들에 대한 논의는 어느덧 무대 액션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졌다. 락앤 롤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인 뽀대와 가오. 아니지, 그게 무슨 개다리 춤이야. 개다리 춤은 이거고. 김이안 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직접 몸을 흔들며 시범을 보인다. 그 뒤로 행인들은 지나간다. 난처하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아마 일행으로 보이겠지.
그 때 너 무대 액션 좋더라. EBS 공감 녹화 할 때 러너스 하이 솔로 중에 무릎 꿇었잖아. 참 겸손해 보이고 좋더라. 내가 무대매너를 칭찬 하자. 기타리스트 남금산은 정색하며 말했다.
“아, 그 거 다시는 안 할 거야. 엄마가 TV에서 보셨는데. 그거 하지 말래. 꼴사납다고. 엄마가 하지 말라는 건, 절대로 하면 안 돼.”
얘기 도중에 남금산의 핸드폰이 울렸다. 남금산의 핸드폰 벨소리는 더스티블루 2집 수록곡 ‘길 위에서’ 였다.
이런 슬픔들은 멈추지 않아. 이런 아픔들은 잠들지 않아. 이런 길 위 내게 지운 짐 다시 나를 살아가게 해 … - 길 위에서.中
어느덧 자정이 훌쩍 넘어서 또 다른 잡답과 농담들이 이어지고 다들 얼큰하게 취해갔다. 글쎄, 더스티블루 얘 네들은 내가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종잡을 수 없었다. 그들의 음악을 언어로 규정하려 들면 어느새 그들은 다른 곳을 향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일상이 되어버린 위기 상황을 짊어진 채로. 언제 어느 자리에서 다시 만나면, 더스티 블루는 지금과는 또 다른 밴드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악에 귀를 기울였던 이들이라면, 단 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여전히 푸를 테니까. 고민 끝에. 인터뷰 제목을 정했다. 더스티 블루는 거기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