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지하교회에 보내는 요한계시록)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1절).
2013년10월 13일.
글.편저자 : 통일선교회 임명락
▶1.요한 계시록
신약 성경 맨 마지막에 나오는 책!
옛 날에 는 묵시록(默示 錄)이라고 불렀으나
오늘날에 는 계시록(啓示錄)이라고 부른다.
요한 계시록은 세상 종말에 일어날 여러가지
일들을 상징적으로 설명한 책인데 구약에는
다니엘서가 그 대표적 예가 된 다.
본래 묵시란 ảmoká入vyrs란 말에서 온 것인데 "숨은 것을 드려내 보인다"는 뜻이다.
즉 요한 계지록은 가장 중대한 하늘나라의 비 밀을 드러내 보인 책이다.
그러나 환상과 상징으로 채워졌기 때문' 에 난해 (難解)한 책으로도 해석하기 어려운책이다.
문법 (文法)까지도 특수해서 보통 헬라어 문법과는 다른 셈어계(語系)의 영향을 받은 문법이다. 1. 기록자 계 1 : 1에 보면 기록자의 이름을
"종 요한"이라고 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사도 요한을 본서의 기록자로 보아왔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이의 (異議)를 제기해 왔다.
이제 먼저 그 이의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로 위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언어적 차이점이 있다. 이것 은 3세기 때 이미 디오니시우스(Dionysius)에 의하여 지적된 것이 다.
이에 대해 웨스트코트는 계시록이 초기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적어도 20년 늦게 기록된 복음서나 서신보다 문법적으로 미숙하다 주장했다.
▶2. 요한계시록
1) 두번째 설명은 비서를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려나 밧모섬에 추방된 요한이 비서가 있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 는다.
이런 점에서 쟌(Zahn)의
세번째 설명이 보다 자연스럽게 보 여진다.
즉,계시록의 언어는 구약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문 법이나, 용어에 셈어제 (語系)의 색채를 가진다는 것이다.
두번째 문제점은 계시록에 비(非)요한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이나 요한 서신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데 반해 계시록에는 주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 다.
또 기독론도 복음서나 서신에는 계시자와 새롭게 하는· 자로서 묘사된데 반해 계시록에는 정복자 메시야로서 부각되고 있다는 것 이다.
그뿐 아니라 종말론까지도 복음서와 서신에는
현재적인 면
2) 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 반해 계시록에는 미래적인 면
3) 을 다루고 있 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차이를 구태여 부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 다. 그러나 이 차이는 주제에 의한 강조점의 차이지 서로 모순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계시록은 신약성경 가운데 하나 밖에 없는 묵시문학에 속한 책이기 때 문에 강조점의 차이는 당연한 것이다.
아무튼 위의 문제점(?) 때문에 크게 네 가지의 다른 가설이 나오 고 있다. 즉
(i) 장로 요한,
(ii) 선지자 요한,
(iii) 요한 마가,
(iv) 익명 등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장로 요한설(說)은 요한복음을 논 할 때 언급된. 바 있지만 "파피아스의 두 요한"에 대한 언급에 기초 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 가설은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 살지 않았 다는 가정 하에서만 성립될 수 있으므로 가설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1)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1887), p. 85. 2) C.H. Dodd는 이것을 「성취된 종말론」(Realized Eschatology)이라고 불렀다. 3) A. Schweitzer는 이것을 「철저적 종말론」(Consistent Eschatology)이 라고 불렀다.
▶3.요한계시록
다음 선지자 요한설(說)은 촬스(R.H. Charles)가 만들어 낸 가공 인물로서 지지를 받지 못한다. 세번째의 요한 마가설은 역사 적인 면에서 요한 마가가 바울과 합께 아시아에 간 적이 없으므로 성립이 되지 않는다.
끝으로 익명설(說)은 계시록의 문제에 대한 해결보다는 더 많은 문제점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전통적 견해에 대한 외중 과 내증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려면 먼저 외중부터 살펴보기 로 하자. 외중으로서는 저스턴, 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 아의 클레 멘트, 오리겐, 터 툴리 안, 히포리투스 등이 있다. 무라토리의 정경에 도 나타난다.
이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다 사도 요한의 기록으로 보 았다. 이들의 외증은 너무도 강하기 때문에 여기에 어떤 착오가 있 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음은 내 중인데 물론 계시록에 본서가 사도 요한의 기록이란 구 절이 있는 것은 아니나 "종 요한"이 사도 요한임을 시사하는 내용 이 많이 있다. 첫째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가 요한이란 이름 만으로 그 신분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사도 요한 밖에 없다.
특별히 계 2~3장에 기록된 편지는 사도 요한이 가진 사도적 권위가 아니고는 쓸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둘째로, 계시록과 다른 요한 의 기록 사이에 신학적인 유사점은 물론이고 어휘적인 유사점까지 있다. 예를 들면 로고스(A6yos) 개념은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요한만의 것이다.
그것이 요한복음서 서론(1 : 1~18)과 요일 1:1, 계 19 : 13에 나온다. 또 빛과 어 두움, 진리와 거짓, 하나님 의 권능과 이 땅의 능력 등에 대한 대조가 계시록과 요한의 다른 기록 사이에 꼭 같이 나타난다. 이렇게 볼 때에 사도 요한이 제시 록을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4.요한계시록 기록한 연대와 장소
계 11 : 1~2에 보면 성전이 아직 있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래서 본문이
겔 40장의 영적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성 전이 무너지기 이전, 그러니까 네로의 통치 때 기록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4) 그러 나 계 . 13 : 15을 보면 당시에 황제 숭배같은 것 이 왕성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역사적으로 볼 때 그것은 도미시안 황제 때의 일로 보임으로 초기 기록설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계 2:4에 보면 에베소 교회가 첫 사랑을 잊어버 렸다고 했는데 네로 황제 때엔 그런 일이 있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두번째 설은 게 17 : 10에 나타난 7 왕의 언급이 베스파시 안 또는 디도 때 기록된 것을 압시하는 것이 아닌가 보는 견해이다.
5) 그러나 여기도 황제 숭배에 대한 강요가 없었던 때 였기 때 문에 문제가 남 아 있다. 세번째 설은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견해이다.
6) 즉 도미시 안 황제 때(A.D. 81-96)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초대 교회 의 이레니우스의 견해와 부합될 뿐 아니라 황제 숭배를 강요했고, 역사가인 풀리니 (Pliny)에 의하면 A.D. 92년에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이 심했다고 한다.
이 견해는 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 아의 클레 멘트, 유세비우스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있 다면 제 13 : 18의 666이 네로 (Kaisar Neron)로 볼 수 있는 해석 때 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미시 안 황제 때의 기록설은 사도 요 한의 여러 역사적 형편으로 보아 무리가 없는 견해이다.
따라서 본 서는 "밧모섬"(제 1 : 9)에서 A.D. 95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4) 웨스트코트, 라잇후트, 홀트, 살손 등의 견해, 5) 아이크호론, 불리크 등의 견해.
6) 알포드, 스위트, 멀리간, 오르, 모팟, 쟌 등 대부분의 견해.
▶5.요한계시록 목적과 특징
계시록의 목적은 계시록 초두(1 : 1~3)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왜 그러면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 려고 했을까? 그것은 당시에 시련과 핍박을 받고 있는 일곱 교회 의 성도들에게 속히 될 일을 보임으로써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 다. 두번째는 미래에 되어질 일을 중심으로 역 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줌으로써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 쳐 주기 위해서였다. 계시록의 특징"은 첫째로 본서는 종말에 관한 책이다.
물론 신 쿠약 여기 저기에 미래에 관한 기록이 없는 것은 아니나 계시록처 럽 철저하게 미래의 사건을 다룬 책은 없다. 둘째로 계시록에는 많 은 상징, 환상, 숫자들이 기록되어 있어서 본서를 해석하는데 많은 이견(異見)을 낳게 한다.
세째로 구약의 인용이 많은 것이 특징 이다. 스위트(Swete)는 게시록의 404절 가운데 278절이 구약 성 경과 관련된 구절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위에서 기록자에 관해 언 급할 떼 말했지만 계시록의 문법은 토리 (C.C. Torrey)가 예를 든 것 만 해도 많은 불규칙 변화를 하고 있다.
그러 나 이것은 문법이 서 툴러서 그런 것으로는 보아지지 않으며 계시록 주제의 특수성 때 문인 것으로 안다.
▶6. 요한계시록 해석 방법
계시록은 그 난해성 때 문에 여러가지 해석 방법이 제시되어 왔다.
이제 그 몇 가지 중요한 해석 방법을 상고해 보면 다음과 같다.
(i) 과거적 해석 방법 : 이것은 에발트(Ewald), 드 베테 (De Wette), 류크(Lücke) 등의 해석 방법 으로서 계시록을 사도 요한 당시의 사 건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 다. 문제점은 본서의 의도, 즉 미래에. 대한 예언(계 1 : 19)임을 인 정치 않는데 있다.
(ii) 미래적 해석 방법 : 이것은 폰 · 호프만(Von Hofmann), 헹스텐버 ユ(Hengstenberg), 에브랄드(Ebrard) 등의 해석 방법이다. 이것은세 대주의자들과 역사적 전천년설자들의 방법인데 여기서 문제점은 상 징과 문자에 대한 구별이 불분명하고 역사에 대한 곡해가 많다. 하 나님의 일관된 섭리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비 판되어 왔다.
(iii) 상징적 해석 방법 : 무(無)시간적인 면에서 은유적으로만 보는 견해이다. 알렉산드리 아 학파에서 주로 사용한 해석 방법으로서 영 해 (靈解)란 이름 밑에 한국 교회의 강단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방법 이다. 이 방법의 문제점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지 않고 해석자 마음대로 성경을 요리하는 위험한 방법이다.
(iv) 끝으로 개혁 가들이 즐겨 사용했던 교회 역사적 해석 방법이 있다. 이것은 빙겔, 엘리오트, 헨드릭슨 등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 방법은 계시록을 예수님의 초림에서 재림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신천신지(新天新地)에 대한 서술로 보고 있다. 필자는 이 방법을 좀더 구체화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할 것을 제시한다. 즉계 1:19 에 의해 계시록을 해석한다. "그러므로 네 본 것(과거제시)과 이제 있는 일(현재계시)과 장차 될 일(미래계시)을 기록하라."
다시 달 하면 계시록 1 장은 과거계시로, 계2~3장은 현재계시로, 계 4~22 장은 미래계시로 보는 것이다.
▶7.요한계시록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분석.
과거계시(1장) : 12~16에 인자의 환상을 8 가지로 묘사한 것 이 그 중심이 된다.
ⓑ 현재계시(2~3장) :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는 세대주의자들 이 말하는 것처럼 7세대를 상징한 것이 아니고 교회의 일반적 형편 을 묘사한 것이다.
C 미래계시(4~22장) : 4~5장은 미래계시의 서론 부분이고 6장 부터 본(本) 계시가 시작된다. 그러 나 7장, 10장, 11 : 1~13, 12~ 14장은 본 계시와 직접 관련이 없는 보충계시 (中間啓示라고도 함) 이다.
끝의 20~21장은 결론 부분으로서 마지막에 있을 7가지에 대해서 말해준다.
이제 미래계시의 중심이 되는 본(本) 계시인 재 앙의 종류와 내용을 점진적인 해석 방법에 의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요한 계시록의 내용 구조적인 면에서 본 계시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제 계시 록의 내용을 살펴보면,
Ⓐ머리말(1 :1~8)
(i) 계시자 (1 :1)
(ii) 기록자(1 :2)
(iii) 축복(1 :3)
(iv) 인사(1 :4~8)
Ⓑ과거계시 (1 :9~20)
(i) 요한의 환경 (9~10)
(ii) 요한이 받은 명령 (11,19)
(iii) 인자의 환상(1 :12~18,20)
©현재계시 (2 : 1~3 : 22)
(i) 에베소 교회 (2 : 1~7)
(ii) 서머나 교회 (2 : 8~11)
(iii) 버가모 교회 (2 : 12~17)
(iv) 두아디라 교희 (2 : 18~29)
(v) 사메 교회 (3 : 1~6)
(vi) 빌라멜비아 교회(3:7~13)
(vii) 라오디게아 교회 (3: 14~22)
Ⓓ미래계시(4: 1~22 : 5)
(i) 하늘의 보좌(4 : 1~11)
(ii) 인봉한 책(5: 1~14)
(iii) 7인의 재앙(6: 1~8:1)
ⓐ첫째 인(6:1~2)
ⓑ 둘째 인(6:3~4)
ⓒ 세째 인 (6:5~6)
d 네 째 인(6:7~8)
ⓔ다섯께 언(6:9~11)
ⓕ 여섯째 인(6: 12~17)
ⓖ 중간 계시(7 : 1~17)
ⓗ 일곱째 인(8:1)
(iv) 일곱 나팔 제앙(8:2~11:19)
ⓐ 첫째 나팔(8:2~7)
ⓑ둘째 나팔(8:8~9)
c 세째 나팔(8: 10~11)
ⓓ네째 나팔(9: 12~13)
ⓔ다섯째 나팔(9 : 1~12)
① 여섯째 나팔(9: 13~21)
ⓖ 중간 계시(10:1~11:14)
ⓗ일곱째 나팔(11 : 15~19)
①중간 계시(11:1~14:20)
(v) 일곱 대첩 재앙(15:1~16:21)
ⓐ 성전과 천사들(15:1~8)
ⓑ첫째 대접(16 :1~2>
c 둘째 대접(16:3)
ⓓ 세째 대접(16:4~7)
ⓔ비째 대접(16:8~9)
①다섯째 대접(16 : 10~11)
ⓖ 여섯째 대접(16:12)
ⓗ 중간 계시 (16 : 13~16)
①일곱째 대접(16 :17~21)
① 중간계시(17: 1~19 : 10)
(vi) 마지막에 있을 일곱 가지 (20 : 1~22:5)
ⓐ 그리 스도의 재립 (19 : 11~16)
ⓑ아마겟돈 전쟁 (19 : 17~21)
ⓒ 사탄을 결박합(20 : 1~3)
ⓓ천년왕국(20: 4~6)
ⓔ마지막 사탄의 반역 (20 : 7~10)
ⓕ흰 보좌 심판(20 : 11~15)
⑤ 신천신지 (21 : 1~22 : 5)
Ⓔ 맺는말(22 : 6~21)
▶8.요한 계시록의"승리자 그리스도" ,
요한 계시록은 17 : 14 가운데 그 중요
메시지가 있다.
"저희가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 심을 입고 빼내십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이 구절은 예 수님을 세계의 통치자, 즉 교회와 역 사의 주님이심을 선포한 말씀 이다. 이것은 19 : 16에도 나타나 있다.
(i) 교회의 주님이 되신 그리스도
계 5 : 5~6에 "물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 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 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은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고 합으로서 예수님을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로 묘사했다. 이것은 4~5장에 기록된
네 개의 . 찬 송(4: 10~11, 5:9~10, 5:11~12, 5:13) 속에서도 여러가지 표 현으로 나타나 있다.
진정 예 수님은 교회의 주님이시다.
그는 검과 철장으로 다스리는 승리자이시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말씀하신 대로 그는 먼저 애통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가지고 오시기를 원한 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따라서 은혜 가운데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ii) 역사의 주님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비단 교회의 주님만 되시지 않는다.
그는 역사의 주님 도 되신다. 일곱인을 뗄때마다 나타나는 여러 현상들은 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현상적으로 볼 때엔 역사 는 하나님과 앆마,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선과 악의 전쟁터이지 만 궁극적으로 승리는 이미 그리 스도의 것이며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 이것은 계시록의 내용 요약만 보아 도 금방 알 수 . 있다.
22장의 계시록의 내용은 크게 . 두 가지로 구분 된다.
첫째 부분인 1~11장은 지상에서의 투쟁 즉 현상적인 면에서 오는 여러가지 사건들을 예언했고
두번째 부분인 12~22장은 이 지 상투쟁의 배후가 되는 영적 배경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사도 요 한은이 지상에서의 투쟁은 결국 그 배후에서 일어 나고 있는 영적 배경인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라고 가르 쳐 주고 있다.
그래서 17~19장에서는 큰 음녀와 짐승들이 멸망받 을 것을 예언했고,
20~22장에서는 이 악의 세력 뒤에 자리잡고 있 는 사탄의 심판과 그 후의 새 하늘과 새 땅, 곧 새 예루살렘이 이 루어질 것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잠시 당하는 환난과 핍박을 성도들은 신앙과 인내로써 감수할 때에 승리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은 승리 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현세에서의 어려움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제 22 : 20)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금방 끝이 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 : 20)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다시 오실 승리자 예수님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