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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100122 강해 욥의 탄식과 탄원 수요 220803 수요
제10장, 욥의 탄식과 탄원
10장은 지금 현재 고난을 당하고 있는 자신과 전능하신 하나님 사이에 존재하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한 욥의 내면적인 고뇌가 하나님께 대한 탄원 형식으로 기록되어 었다.
1-7절은 자신이 겪고 있는 극심한 고난의 부당함에 대한 욥의 애닯은 탄식이고,
8-17절은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고통에 찬 탄원이고,
18-22절은 고난의 해결책으로써 죽음에 대한 강렬한 동경과 함께 생전에도 자신에게 평안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용이다.
1-7절, 자신이 겪고 있는 극심한 고난의 부당함에 대한 욥의 애닯은 탄식
이 1-7절 말씀은 욥이 하나님께 항변하는 이유를 기록한 1, 2절과 항변의 내용을 기록한 3 –7절로 나누어진다.
(3절,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심, 4절, 정확치 못하심, 5-7절, 자신의 죄 없음)
이러한 욥의 항변은 자신의 고난당함을 자신의 이성으로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욥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에는 유한한 인간의 이성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깊고 오묘한 일이 많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1.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곤비하니- ‘곤비하다’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카트’( 잉꺼 )는 ‘진력이 나다’, 혼란케 되다’(창 11 : 6. 7) 라는 뜻으로, 본절에서는 마음이 불행한 상태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내 불평을 토로하고.
문자적으로는 ‘나 자신에게 수심을 자유롭게 말하게 하고’ 라는 뜻이다.
욥은 지금 자신의 상태가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구속된 것을 전제하고 이제 그의 격한 감정을 자유롭게 자기가 말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2.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현재의 고통을 말씀드릴수 있도록 내 말에 정죄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과 왜 하나님께서 이처럼 자기에게 고난을 주시는지 알게 해 달라는 말씀
이제 3-7절은 욥이 하나님께 이의를 제기하는 내용.
3.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하나님이 부당하시다는 욥의 주장
①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②멸시하시고, ③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도리어 악인이 꾀하는 일은 좋게 보시는 것이 선한 일입니까?
4. 주께도 육신의 눈이 있나이까 주께서 사람처럼 보시나이까
-하나님은 외형적 모습만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인간과는 분명히 다르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간과 같이 선한 사람의 마음을 보시지 않고 함부로 다루시느냐는 항의이다.
따라서 본절에는 하나님은 인간의 중심을 보신다는 사상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지만 반면에 하나님의 판단의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5. 주의 날이 어찌 사람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해와 같기로
6.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들추어내시나이까
-어찌하여 하나님은 짧은 인생처럼 인간의 죄가 스스로 드러나기까지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과정을 통하여 죄를 속히 고백하게 하려 하시는가라는 뜻이다
7.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6절 말씀처럼, 주님께서 내 허물과 죄를 들추어 내시려고 하지만, 주님께서는 내가 죄가 없는 줄도 아시고, 아무도 나를 주의 손에서 빼낼자도 없나이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절대 주권을 인정한 고백으로 자신이 부당하게 고난당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변증한다.
1-7절의 교훈
고난중에도 순종함으로 기다리자
1-7절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이 어떤 사건 속에 내재한 하나님의 진의(眞意)를 스스로 깨달으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비록 이를 명확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그 뜻을 드러내시기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8-17절,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고통에 찬 탄원
앞 부분인 1-7절이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부당함을 하나님께 따지듯 묻고 있는 내용이라면 본문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생명을 주신 자신이 당하는 고통이 너무나 큼을 하나님께 탄원하는 내용이다.
특히 여기서 욥은 하나님을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창조주로 언급함으로써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며 사랑을 주시는 분으로 전제한다.
그리고 무죄한 자신에게 엄한 이러한 고난이 너무도 답답하여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고난을 주시냐고 심하게 항의하면서도 권능의 주권자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기대하는 역설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즉 욥은 자신을 고난의 상황 속에 있게 하신 하나님께 대해 의문과 불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께 최후의 소망을 두고 그것을 결코 버리지 않는 신앙의 모습을 보여 준다.
8.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9.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10.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1. 피부와 살을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엮으시고
12.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욥의 모든 것이 주님에게서 왔는데, ...이제 멸하려 하신다고 불평한다
13. 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욥의 고난을 주님께서 이미 계획하고 계셨다는 것을 말한다
14. 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욥의 이 말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그 어떠한 죄악도 결코 방치해 두지 않고 심판하신다는 말로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비의 속성을 간과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15.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내 눈이 보기 때문이니이다
-비록 죄가 없다하더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 앞에 자신의 의로움을 함부로 내세을 수 없는 욥 자신의 미약한 상태를 나타낸 것이다
16.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젊은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놀라움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욥이 당하는 극심한 고난과 재앙의 상태를 묘사한 말이다.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젊은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또 욥이 교만하면 갈갈이 찢어놓는 무서운 사자와 같이 행동하는 하나님에 의해 극심한 고난을 겪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 주의 놀라움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형태의 고통을 주시기 때문에 결국은 그 고통으로 인하여 자신의 오만함을 회개하지 않을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욥은 자신의 무죄함을 확신하고 있지만 자신에게 미치는 고통으로 인해 자기자신을 죄인으로 취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욥 자신도 그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고통이 죄의 결과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17.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바꾸어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으니이다 아멘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바꾸어 나를 치시며
- `증거하는 자'는 고통이 의인화된 것이다(16:8). 고통을 `증거하는 자'로 표현한 것은 욥이 마치 법정에서 심문을 당하는 것처럼 생각했음을 의미한다. 갈수록 악화되어가는 질병과 그 외의 고통스러운 상황들이 마치 죄를 추궁하는 증인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으니이다
- 앞 문장의 내용을 반복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욥이 받고 있는 고난의 상태가 악화되고 있음과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군대'에 해당하는 `차바'(*)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군대', `교전'(交戰)등을 뜻하며, 상징적으로 `역경', `곤경'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8-17절의 교훈
고난이 올 때 초심으로 돌아가 창조주요 섭리자되신 하나님을 기다리자
욥의 이중적인 모습을 통해 우리는 비록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라 할지라도 그 마음에 온전하고 굳은 믿음이 충분하지 못하면 의심과 원망이 생겨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하며, 그러한 의심과 원망이 일어날 때마다 그 마음을 누르고 믿음 위에 굳게 셔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기 위해 향상 힘써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18-22절은 고난의 해결책으로써 죽음에 대한 강렬한 동경과 함께 생전에도 자신에게 평안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1-17절에서 거듭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부당성을 호소하며 하나님께 탄원하던 욥은 이제 본 단락에서는 고난에 대한 해결책으로 죽음을 제시하며 이를 동경하고 있음을 밝힌다.
이전에도 죽음을 사모하며(3 : 1-26) 고통의 해결책으로 죽음을 제시한 바 있는 욥은(7 : 21) 본 단락에서 또다시 죽음을 말함으로써 그의 고통의 극심함을 보여줌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불신앙적인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
즉 생명의 주관자는 오로지 하나님이므로 인간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에게 부여된 생명을 축복으로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앞장서야 함에도 욥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이루려 하기 보다는 단지 이 고난의 상황을 회피하려는 나약함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러한 삶에 대한 회의는 음이 당하는 고난이 얼마나 처절하고 극심한 것이었는지를 느끼게 해주는데, 결국 욥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삶이 지극히 힘겨워 이러한 나약함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 욥이 여기에서 바라고 있는 것은 생전에 평안함을 얻고 구원받는 것으로서(20, 21절) 욥은 순간 순간 나약함을 보이기도 하지만 끝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19. 있어도 없던 것 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겨졌으리이다
-다시 태어남, 출생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여전히 고난을 받아들일수 없다는 태도.
20.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
-자기 존재에 대한 혐오감을 계속 설파하고 있는 문맥임에도,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위로를 바라는 기대감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뒷절(21,22)에서 언급하는 암울한 음부의 밤을 염두에 둔 것인 듯하다.
다시 말해서 욥은 하나님께서 고통 주시는 일을 멈추시고 음부에 떨어지기 전에 잠시나마 기력을 회복하여 숨 쉬게 해달라는 것이다
->순간도 평안할수 없는 고통의 연속속에서 잠시라도 평안을 간구
21.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22.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 아멘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
*음부
구약 시대의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죽은 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여겨진 장소는 ‘스올’(sheol)이다. 이것은 헬라어로는 <하데스>라고 한다. 개역 성경에는 스올이 ‘음부’(창 37:35), ‘무덤’(시 28:1), ‘멸망의 웅덩이’(욥 26:6)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면 음부는 정확히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이에 관해서는 성경 상의 언급이 없으므로 알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은유적, 시적 성경 귀절들이 음부를 땅 밑의 어떤 장소로 묘사하고 있다(욥 7:9, 시 55:15).
욥은 머지 않은 때에 그의 죽음이 있을 것을 생각했는데, 여기서 그는 인간이 죽은 뒤에 가는 사후 세계를 ① 영원한 유배지, ② 매력이 전혀 없는 곳, ③ 혼란과 무질서의 장소, ④ 죽음의 장소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욥은 여기서 '어둠', '그늘', '흑암'등의 단어 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사후 세계가 어둠만이 존재하는 세계로 매우 두려운 곳이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구원해 주시기를구하고 있다.
18-22절의 교훈
부활의 소망을 가진 우리가 참 복되다는 것을 알자
죽음보다 못한 고통중에도 욥이 간구잠시만이라도 평안을 누릴수 있기를 간구한다
이것은 너무 고통이 힘들고 견딜수가 없다는 것이고 더구나 자기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게될 것인데, 그전에 조금의 위안이라도 받으면 쉬고 싶다는 것이다.
이러한 욥의 간구를 보면서 우리 신약시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부활의 소망을 가진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고 여유이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부활의 소망이 있다면 욥과 같은 고난이 온다 해도 큰 힘과 위로가 되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든다.
부활의 소망만이 우리의 강력한 힘이고 모든 것을 이기는 능력인 것을 믿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