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십여 년 무등을 보며, 무등의 품 안에서 뼈가 굵었다.
그리고 이런 교가를 부르며 자라왔다.
"노령의 큰 산줄기 머리에 이고..."
광주 사람이라면 열에 아홉, 무등산이 노령산맥이라 생각하고 있다.
노령이라는 이름의 회지, 모임도 적지 않다.
얼마 전엔가 새로 창간되는 지방 일간지가 제호로 <노령>을 고려한 적도 있다.
그런데 <한국지지>를 보면 무등산이 소백산맥에 끼어 있다.
일반적인 지형 감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처사지만 하는 수 없다.
교가 노랫말을 쓰시는 분이 <한국지지>까지 보아야 하나.
그저 지리부도 보고 판단하면 되는 것 아닐까(그러길래 교육용도서는 신중하게 쓰여져야 한다).
게다가 <한국지지>의 주장은 또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그나저나 무등산은 과연 노령산맥인가, 소백산맥인가.
답이 궁금하니 지도를 보자.
<한국지지>, 논문, 대학교재 및 2권의 중등교재에 실린 산맥도에서 소백, 노령산맥 부분을 따왔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지도 위에 무등산의 위치를 추가로 표시했다
한국지지 :
한국지지 본문은 무등산을 소백산맥이라고 썼다.
그러나 그림을 보면 무등산이 필시 노령산맥으로 보인다.
논문 :
노령산맥이 아예 사라졌다.
둘로 쪼개진 소백산맥의 윗줄기에 흡수된 것이다.
아랫줄기는 덕유산맥이라고, 새로 생겼다.
대학교재 :
무등산이 소백산백으로 보인다.
그런데 웬 일인가.
노령산맥이 차령산맥에서 분지하고 있다.
처음 듣는 소리여서 깜짝 놀랐다.
교과서 1 :
무등산이 노령산맥이다.
소백산맥이 여수반도를 향하고 있다.
교과서 2 :
무등산이 소백산맥이다.
소백산맥이 해남반도를 향하고 있다.
그래서, 무등산은 과연 노령산맥인가? 소백산맥인가?
아이들은 말한다.
"답이 안나오네..."
원칙적 주행이 유사한 산맥도끼리도 차이가 난다.
노령산맥의 분기점만 도아도 속리산에서 덕유산까지 다양하다.
그 차이는 산길 200리가 넘는다.
공통적 특징은 노령산맥의 운명이 소백산맥의 팔자에 따른다는 것이다.
소백산맥이 어떤 주향을 취하느냐에 따라
노령산맥은 남에서 북으로, 한 줄에서 두 줄로, 때론 이사를 가서 다른 산맥에 붙기도 한다.
심할 때는 산맥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혼란의 근원은 '고토ㅡ야쓰쇼에이'의 그림에서 찾을 수 있다.
부채살 모양으로 펼쳐진 소백련맥 구조선을 실업실찬지리가 하나의 선으로 단순화하기는 했으되,
합당한 근거를 확보해두지 않았다.
해서, 이후로도 연맥 중의 아무거나 소백산맥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둔 셈이다.
말이 연맥이지 전라남북도 및 경상남도 일부를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이다.
그 안의 산이란 산은 모두 소백산맥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발견>(뿌리깊은 나무, 1990)을 보자.
우리나라의 인문지리를 체계적으로 다룬 거의 유일한 책이다.
<한국의 발견>은 어떤 시(市)나 군(郡)을 논할 때 으레 산 이야기를 한다.
국토의 7할이 산이므로 당연한 일이다.
산맥은 물론 '바늘 가는 데 따라가는 실'이 된다.
예를 들어 전라남도 영암군 편을 보자.
추풍령에서 뻗어내려오던 소백산맥이 석교산, 국사봉, 금성산, 월출산, 주지봉, 도갑산 같은
높고 낮은 산들을 마치 구슬을 꿰듯이 일으켜 세워놓아...
소백산맥이 석교산, 국사봉, 금성산, 월출산, 주지봉, 도갑산을 포함한다고 명확히 밝혀놓은 지리책이 있었을까?
당연히 없다.
그렇다면 위 글은 어디에 근거해서 쓴 것일까.
추정컨대 속리산 부근에서 월출산에 이르는 직선을 쓰윽 훑어보고, 그 사이에 걸리는 산을 냅다 적은 것이다.
물론 월출산이 소백산맥이라는 근거 또한 없다.
누군들 이런 일을 못하랴만, 문제는 이걸 두고 맞다 틀리다 시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쇄되어 찍혀버린 책의 힘은 생각보다 막강한 것이어서,
한번 거론된 산들은 모조리 소백산맥으로 등록을 마친 꼴이 된다.
다음 사람은 "<한국의 발견>에서 인용했다"고 주장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남도의 산이란 산은 어떤 기회로든지 '소백'이라는 이름을 한 번씩 달게 될 터다.
그 결과 "소백산맥!" 하고 부르면 남도의 모든 산들이 "나요, 나요"하고 나서게되는 것이다.
노령산맥 또한 같은 방법으로 식구를 불렸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산이 소백산맥도 되고 노령산맥도 되는 일이 벌어진다.
<한국의 발견> 전라도 편만 보아도 백암산, 설산, 팔공산 등이
책의 어느 절에서는 소백, 다른 절에서는 노령산맥으로 적혀있다.
어디 소백이나 노령산맥뿐인가.
태백산맥도 출발은 연맥이었다.
차령산맥, 광주산맥 또한 출몰을 거듭하기는 마찬가지다.
다 찾아보지 못해서 그렇지 <한국의 발견> 열한권을 모두 뒤지면
하나의 산이 두 개 이상의 산맥에 속하는 모순이 수십 개는 족히 될 것이다.
대체 인문지리서가 산맥을 서술하는 이유는 뭘까.
산과 산줄기가, 거기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산맥 자체를 이랬다 저랬다 바꿔버린다면 거기서 얻는 지식은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
어쨌거나 우리는 궁금하다.
무등산은 대체 소백산맥인가, 노령산맥인가.
그것을 가르쳐줄 의무가 있는 분들께 묻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요, 우리 학교 교가를 고칠까요?
아니면 <한국지지>를 고치겠습니까?
정답은 없다.
내가 아는 한 어느 쪽도 고쳐야할 의무가 없다.
가능하다면 "무등산은 무슨무슨 산맥에 속한다"는 말 자체를 않는 것이 정답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산맥체계 자체가 그런 것을 정의하기에는 부적합한 원리에 바탕을 두고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쓰긴 써야겠다면, 아주 명확한 답이 있다.
"무등산은 호남정맥이다."
지리인식에 있어 산줄기 분류는, 산수의 구구단에 해당하는 기본 도구다.
산경표는 구구단은 '2*2=4, 2*3=6, 2*4=8'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산맥의 구구단은 '2*2=6, 2*3=6, 2*4=6'이다.
그런 구구단을 이용한 곱셈의 답이 맞는 것 없고, 틀리는 것도 없는 현상은 당연한 일이다.
산맥체계를 보고 있노라면 그림자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손은 손인데 촛불의 거리나 방향에 따라 그림자 모양이 늑대도 되었다 토끼도 되었다 하는 그림자 놀이.
땅은 제 모양 그대로인데 저자에 따라 산맥그림이 달라지는 그림자 놀이...
산맥은 산으로만 연결되는 선이 아니다.
시작이 없고 끝도 없다.
주행에 일관성도 없다.
소속하는 산을 구별할 수 없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다.
그리하여 내려지는 결론, 산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