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릉연소금시동(五陵年少金市東), 은안백마도춘풍(銀鞍白馬度春風).
낙화답진귀하처(落花踏盡歸何處), 소입호희주사중(笑入胡姬酒肆中).”
다시 말하면 ”오릉의 젊은이들 금시(金市 : 번화한 상가) 동쪽에서, 은(銀) 안장을 한 백마를 타고 봄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네, 떨어진 꽃잎을 짓밟으며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가? 웃으며 호희(胡姬)의 술집에 드네” 라는 뜻이다.
호희(胡姬)는 옛날 노래와 춤을 업으로 삼던 서방이나 북방에서 온 여성들을 일컫는다.
또 이태백의 시 송배십팔도남귀숭산(送裴十八圖南歸嵩山)은 다음과 같다.
”하처가위별(何處可爲別), 장안청기문(長安靑綺門), 호희초소수(胡姬招素手), 연객취금준(延客醉金樽).”
다시 말하면 ”색다른 곳이 어디뇨? 장안의 청기문이라. 그곳의 호희들은 희고 매끈한 손을 흔들어 손님을 초대한 후 사치스럽게 차린 음식과 맛 좋은 술로써 손님들을 취하게 만들어 준다네.” 란 뜻이다.
이태백의 두번 째 부류의 여인들은 농가(農家)의 여성들이었다. 이태백이 농촌 여성들을 접견할 때 농촌 여성들은 베를 짜고 있거나 어떤 여성들은 뽕밭에서 뽕을 따고 있었다. 또 어떤 여성들은 연(蓮)을 따고 있었다.
이태백은 농촌 여성들에 대하여 가지 각색의 시를 읊었다. 예를 들면 베를 짜고 있는 시골 여성들을 노래한 유태산(遊太山)과 뽕을 따고 있는 여성들을 노래한 맥상상(陌上桑)과 연(蓮)을 따고 있는 여성들을 노래한 채연곡(採蓮曲)과 월여사(越女詞) 등이 있다.
이태백의 세번 째 부류의 여성들은 신분이 비교적 복잡한 여성들이었다. 예를 들면 관환(官宦)의 가정 여인들과 같이 교육을 많이 받아 지식이 풍부하고 예의를 아는 여성들이었다. 이러한 여성들에 대하여 읊은 시들은 상봉행(相逢行)과 맥상증미인(陌上贈美人) 중에 실려 있다.
이태백의 시(詩) 맥상증미인은 다음과 같다.
”준마준행답락화(駿馬駿行踏落花), 수편직불오운차(垂鞭直拂五雲車),
미인일소건주박(美人一笑褰珠箔), 요지홍루시첩가(遙指紅樓是妾家).”
다시 말하면 ”양마(良馬)들이 우쭐대며 땅에 떨어진 꽃잎들을 모두 짓밟아 버리는구나! 채찍을 위에서 아래로 늘어 뜨리며 때리니 오운차는 곧장 스쳐 지나가고 미인들이 구슬을 꿰어 만든 발을 걷어 올리며 웃음을 짓는구나. 멀리 가리키는 기생집은 작은 마누라의 집이라!” 는 뜻이다.
이태백은 다방면으로 풍부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훌륭한 많은 시를 쓸수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
첫댓글 아; 역시 남자의 바람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군요 ㅎ
어쩜;; 설령 그것이 애인이 아니라, 그저 한 여성 친구라 해도
만나는 여성마다 시를 지어주는 게 도대체 뭡니까!(제가 왜 발끈하죠?^^:;)
아무튼, 이백은 능구렁이였다는 사실이겠죠 흠흠ㅋ
이백은 바람둥이이자 로맨티스트 였던 것 같습니다.^^ 뭐랄까.. 이백은 호탕한 풍운아. 자유로운 방랑인.의 이미지가 떠올라요^^ 좋은 자료 잘 읽었습니다.^^*
이백에게 여자가 많았다면........이백은 그 시대의 미남이었을까요?ㅎㅎ
숙영이, 미남 찾니?ㅎㅎㅎㅎㅎㅎ
"이태백은 여자 친구들과 다채다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으며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일찍이 양귀비(楊貴妃)가 이태백에게 진귀한 벼루를 선물로 주었던 고상하고 멋이있는 사건은 양귀비 역시 이태백의 여자 친구였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태백과 정식으로 결혼한 여성을 제외하고도 많은 여성 친구들이 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여자 안좋아 하는 사람없다고 했는데, 그말이 사실이었네요. 그리고 양귀비하고 친구였다는 것도 흥미롭네요.^^
댓글들이 다 여성들이라 역시 다들 발끈하시네요.ㅋㅋ다양한 계층의 여자들과 두루 어울리려면 그만큼 다재다능해야 가능한 일일텐데 이백은 시인으로서 뿐 아니라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나보네요.ㅋㅋ
저도 남자지만 ;; 어떤 사람의 말에 의하면 변태와 게이아니면 다 여자라는 말도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