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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산악회는 1월에 시산제를 지내지만
사정으로 인해서 이번산행에 하기로 했기에
산행지는 가까운 예산의 가야산으로 하기로했다.
고속도로로 한시간 정도의 거리 밖에 되지 않기에
출발시간도 한시간 늦추어 농협 앞에서 8시15분이었다.
야외 활동하기가 좋을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옅은 연무가 끼어 있는 아침공기는 얼굴이 시러울 정도로 차가운 날씨였다.
좀 얇은 옷을 입을 생각도 했었지만
아내의 말대로 두꺼운 잠바를 입은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번 임원회에서 "평소에 잘 참석하던 사람도 시산제 참여는 꺼리더라"는 말을
산악대장 이ㄱㅈ씨가 웃음을 섞으며 했었지만,
"우리는 그런 산악회가 아니야"라고 말하듯 농협 앞에서
애초에 신청했던 대로 빠짐 없이 모두 탑승을 했고,
출발지인 인풍,태성,사현에서 탄 사람들로 광정을 출발했을 때는 좌석을 거의 채웠다.
거기서 장원, 석송,모란에서 인원을 탑승을 더하니 자리를 잡지 못하는 회원이 몇사람 생겼다.
내 옆에는 부동산의 박ㅈㅅ씨가 앉았고, 건너편에는 한ㅇㅅ여사가 김ㅇㅁ여사가 앉았는데
김여사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듯, 산아래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사라졌다.
차멀미가 난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출발지에서 몇미터를 오르다가 도로 내려간다고 했다.
산행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몹시 지루할 것 같아서
그 동안 스마트폰으로 영화나 보라고, 까페의 주소를 알려 주었지만
지루함과 추위를 혼자 견디는 것이 고역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의 남덕유산 산행 때처럼,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아늑한 등산을 하리라 생각했지만, 출발했을 때 옅게 끼었던 연무는
더욱 짙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고, 햇빛은 가끔 씩 구름 사이에서 얼굴을 내밀뿐이었다.
남연군묘까지는 와 본일이 있었지만 가야산에 오르기는 처음이었다.
입구에서 300미터 정도까지는 작은 바위라고도 말할 수 없는,
산비탈밭에서 농부가 골라 내놓은 돌처럼 둥글하고 표정없는 작은 돌들이 멋대로 놓인 길을,
산기슭에 있는 감나무의 까치밥으로 남겨 놓은 홍시를 따먹으로 가는 길 같았다.
바다가 멀지 않아서 해발이 낮은 평야지대의 산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 길을 경성식당의 김ㄱㅅ여사와
김여사의 남편과 아들이 제주도에 다녀 왔다는 이야기를 하며 올랐다.
나는 아버지와 아들이 사이가 좋은 경우가 별로 없는데,
그렇게 둘이서 여행을 같이 할 정도로 대화가 통해서 좋겠다는 말을 하면서
부자간의 대화가 별로 없는 현대의 현실을 생각하였다.
아버지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점점 자신의 못난 점만 닮아 가는 아들을 보면서
못마땅해 하는 아버지의 심리가 밑바닥에 깔려 있지만,
부자간의 대화할 시간이 없어져 가는 각박함 때문일 것이다.
김여사는 식당을 경영하는 바쁜 중에도 틈틈히 책을 읽는 것 같았다.
김여사가 읽었다는 책은 이름은 잊었는데,
"비록 게으르지만 꿈을 갖고 사는 것은 아무런 꿈도 갖지 않고 부지런히 사는 것보다 낫다"는
말에 공감을 느꼈다고 했다. 꿈을 가지고 살면 천천히라도 그곳에 접근해 가지만,
부지런해도 꿈이 없이 사는 사람은 이리저리 분주하지만
결국은 의미 없는 삶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만나며 살지만
거의가 평범함과 고식적읜 모습만을 볼 뿐이었는데
김여사를 보면서는 어떤 순수함을 느꼈던 것은 김여사가
어떤 꿈을 바라보며 살기 때문이었던 것이었나 보았다.
김여사는 산은 오르는 것도 건강했다.
어느새 앞서가고 산에 오르는 것이 힘겨워 보이는 사람들과 같이 가는 동안 산은 점점 험해졌다.
가볍게 생각했지만 등산로로 이름을 얻은 산들이 뒷동산 같은 수는 없는 것 같았다.
45도 이상의 경사가 진 비탈에 옆의 돌을 그대로 쌓아 계단이 된 듯한 길이
구불구불 한이 없을 것처럼 계속되었고.
누군가의 입에서 "이 고생을 시어머니가 시키면 모두 도망 갈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했다.
거기서 나무들 틈으로 보이는 옥양봉은 뿌연 연무속에서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듯했다.
이번에도 맨 뒤에는 가지 않으려고 생각했지만
뒤에 오던 김ㅊㅅ씨 부부가 슬며시 처져 버리자
그 부부와 함께 오르던 김ㄷㅇ씨와 김ㅎㅅ여사와 함께 맨 후미가 되고 말았다.
김여사는 월산이 친정이라고 했고, 김동연씨는 당숙이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김여사의 이름을 부르는 김동연씨는 수십년 동안 해오던 표고농사를
2년째 종자를 심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을 쓰지 않고, 부인과 둘이서 열심히 가꾸었던 표고는
1년에 2-3천만원의 수입을 가져다 주어서 자녀들을 모두 교육시키고, 결혼시켜 주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큰 돈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기에 좀 쉬면서 살아야 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살아 온 건실한 농부.
특별한 이유 없이 친근감을 느끼던 이유는
날로 취약해가는 농촌이 그래도 버티고있는 이유를 대변해 주는 모습었기 때문이었나 보았다.
산악회까페의 까페지기인 전ㅁㅎ양은 전문가용인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사진을 찍기에,
앞서서 출발해도 결국엔 처지가 되었고, 전양을 호위하듯이 같이 가는 박과장,전양의 어머니인
이ㅅㅈ여사, 점점 더 힘들어 하는 김ㅎㅅ여사와 함께 나는 맨 후미가 되고 말았다.
가파른 비탈의 험한 바위길이지만 그래도 발디딜 곳을 전전긍긍하지는 않는 길을 오르는 동안
처음으로 기암괴석이라고 생각될 거대한 바위가 있었고,
그곳을 도는 동안 선두의 김ㅇㅈ부회장의 위치확인 워키토키가 왔다.
옥양봉에서 관음봉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내 위치를 설명해줄 말이 생각나지 않아"큰 바위아래에 있다"고 대답하고 나니
그 요령부득의 말에 스스로 웃음이 났다.
그곳의 바로 위에 그리 길지는 앉지만 가파른 계단이 나타났고,
그 계단보다 조금위의 바위 옆에서 박과장이 "여기가 정상"이라고 소리치며 격려해 주었다.
산등성이에 올라서자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녹지 않은 눈이 보였고,
그 눈위로 살을 에이듯한 바람이 달려 들었다.
웬만하면 옷속에 스몃던 땀이 마르는 시원함을 느꼈을것이나
시원함을 생략한 추위가 먼저 느껴져 열어 놓았던 잠바의 자크를 올렸다.
박과장이 옥양봉이라고 알려주는 정상엔 간단한 설명을 쓴 게시판이 있었고,
앉아서 쉴만한 낮은 바위들에 전양,이ㅅㅈ여사,신동주씨부부,박과장이
나와 김ㅎㅅ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 몇장을 찍고는 관음봉으로 향했다.
관음봉에 오른 뒤 하산한다고 했다.
키는 크지 않았으나 정원에도 어울릴 듯한 소나무들이 드믄드믄 한 사이로
우리 동네 뒷산 같은 평평한 길이 있었다.
햇빛이 따스히 내리고 있으면 발을 뻗고 앉아서 정담을 나누고 싶은 길이었으나
산을 치올라 오는 바람은 얼음보다도 차가 왔고,
길은 겨울 동안 오간 등산객들에게 밟히어 녹았다 얼었다 하던 눈이 빙판을 이루고 있었다.
올라 오는 동안 큰 숨소리를 내며 허덕이던 김ㅎㅅ여사가
신ㄷㅈ씨의 부인 임ㅇㅅ여사와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갔다.
임여사가 김여사에게 "내려 가는것은 잘하네"하는 농을 건넬만큼 평탄한 길을
300미터쯤 지나자 깎이 지른 듯한 바위에 나무 계단이 놓여있었다.
산아래의 경치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은 곳이었으나
금방이라도 폭설이 쏟아 질듯한 하늘은 찌프려 있었고,
산아래 경치는 짖은 연무에 가려 있어서 사진상으로도 희미한 모습일 뿐이었다.
전양이 "이 계단은 남덕유산의 계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했으나
그래도 사다리처럼 꽤나 가파른 계단을 내려 오자 멀지 않은 관음봉이 보였고,
길은 더욱 빙판으로 변해갔다.
그 때까지는 일시적인 빙판길이고 좀지나면 괜찮으리라 생각했으나
봉우리라고 하기에는 좀 밋밋한 관음봉을 오르는 비탈길에서
한손으로 가이드와이어를 잡고 남편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자꾸만 미끌어지는 임ㅇㅅ여사의 모습이 보였다.
맞은편에서 내려 오던 다른 일행의 건장해 보이는 사람이 안타까운 듯 바라보며
"아이젠이 있으면 장책하세요. 이곳 부터 모두 빙판길이라 아이젠 없이 어렵습니다"하고 말했다.
임여사가 주저 앉으며 아이젠을 장착했고, 김ㅎㅅ여사도 따라서 아이젠을 장착했다.
나도 무심코 배낭에서 넣어 가지고 왔기에 아이젠을 꺼냈다.
김여사는 간단한 아이젠이어서 아주 간단히 장착하고 올라 갔으나,
나는 카메라와 워키토키를 내려 놓고, 아이젠을 장착하고,
다시 카메라와 워키토키를 메는 작업이 시간이 걸려서 잠깐 혼자서 처지게 되었다.
한손에는 두개의 지팡이로 짚고,한손에는 와이어를 잡으며 오르자
신ㄷㅈ씨 부부의 뒤에서 힘겹게 따라가는 김여사가 보였고,
다가가자 내가 보이지 않아서 무서웠다고 했다.
다른 일행들이 오가기는 했지만 혼자서 떨어진다는 것은
위축감이 먼저 느껴지는 것임을
지난 계룡산 산행에서 깊이 느꼈기에 그 마음이 공감이 됬다.
눈 앞에 관음봉이 보이는 곳에 하행을 하는 길이 있었고,
거기서 산악대장 이ㄱㅈ씨가 관음봉을 들리지 말고 내려 갈 것을 안내하고 있었다.
빙판이 장난이 아니란 이대장의 말대로 와이어가 쳐져 있는 길은 빙판이 되어서
비탈로 비탈로 끝이 없이 뻗쳐 있었다.
지금 까지 살아 오면서 빙판길을 겪을 때마다 어김없이 미끌어졌던 기억만 있었던 터라
발을 디디는 것이 겁이 나서 줄에 매달리며 내려 갔으나 생각보다 미끄럽지 않았고,
나보다는 김여사의 위태로운 걸음이 염려되어 지켜보는 시간이 많았다.
김여사는 외줄의 아이젠이어서 보기에도 안정스럽지 않아 보였고,
결국엔 아이젠의 날이 닫지 않는 곳으로 얼음을 디디고 미끌어 지기도했다.
아찔한 사고를 예상했으나 다행히 2미터 정도를 미끌어 지고는 균형을 유지했다.
다친곳은 없다고 했다.
우리의 200정도 앞에 전양과 신ㄷㅈ씨 부부가 조심조심 내려 가고 있었다.
"아이젠을 가져 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할뻔했어"하는 말을 여러번 하면게했다.
무척 위험한 길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생에 처음 느껴보는 경험에 스릴이 느껴지며 재미도 있었다.
그 길을 먼저 내려간 일행 중에 아이젠을 장착하지 않은 사람들은 여러번 미끌어 졌고,
전시의원 심ㅈㅈ씨는 키가 크고 건강한 분이었는데도 15미터 정도를 미끌어 졌다고했다.
심씨는 "지났으니까 웃으며 말하지 자꾸 미끌어지는 멀고도 먼 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줄 알았다"
고 했다. 이 글을 읽어 주는 사람에게 충언해 주고 싶은 말은 무겁지 않은 아이젠을 사서
4월까지는 배낭에 넣고 다니라는 것이다.
비탈이라 빙판이 아니라도 와이어를 잡아야 될 길이었으나 한번도 미끄러짐을 느끼지 않았다.
거의 길을 내려오고, 경사가 덜한 곳에 왔을 때, 일부러 빙판을 디뎌 보았으나
전혀 미끄럽지 않았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계룡산에서는 맞지 않는 아이젠으로 극기훈련을 했다면 이번에는
아이젠 덕으로 빙판을 예사처럼 내려온 날이 었다.
거의 빙판을 벗어났을 무렵에는 조심 스럽게 빙판을 디디는 김여사를 지켜보며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왔다.
시산제의 젯상을 차려 놨다는 소식을 워키토키로 들었으나
어디로 가야하는 지 모를 정도로 일행에게 뒤떨어져서 어떻게 찾아 가야 되나를 걱정했으나
남연군묘의 옆에서 전양이 기다리고 있다가 앞장을 섰다.
산에 오르면 인간적이 동지애가 생긴다고 하더니 그말이 그대로 실감이 날만큼
산우의 우정을 느끼었던 산행이었다.
시산제의 젯상은 대원군이 남연군을 궁중 상여로 모시고 와서
그 상여를 동네에 기증했음을 기념해서 지어진 정자 옆에 차려져 있었다.
너무 늦어서 내가 절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상은 차려진 그대로 있었다.
이ㄱㅈ씨와 김ㅅㅌ씨와 같이 절을 하면서 무사무탈의 산행을 염원했다.
한ㅇㅅ여사가 왜 그렇게 늦었느냐고,예의 소꼽친구다운 걱정을 했다.
한여사도 아이젠을 가지고 가지 않았는데,
김ㅈㅂ여사의 아이젠을 한쪽씩 장착하고, 내려 오다가 가볍게 미끌어지기도 했다고 했다.
거기서 젯상과 함께 주문해서 가져온 찰밥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겆절이 배추김치와 마른김이 반찬의 전부였으나 부족감이 없는 식사였다.
처음 마음 먹기는 시산제의 장면을 처음부터 동영상으로 잡을 계획이었으나
단 한장면의 사진도 담지 못해서 아쉬웠다.
가만히 눈을 들어서 정ㅁㅅ여사를 찾아 보다가 눈길이 마추치니 잔잔히 웃어 주었다.
가장 사진을 남기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으나 오늘은 정말로 단한장의 사진도 담아 주지 못했다.
산행을 갔다오면 이제 버릇처럼 쓰는 일기를 썼고,
조악한 글이지만 읽어 주고 댓글을 주는 사람이기에 가장 힘을 주는 정여사인데,
공연스레 미안함이 느껴진다.
식사후에 덕산의 온천에 들려서 땀을 씻고, 돌아와서
인풍의 남상갑씨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계획이 되 있었다.
온천의 목욕은 공주의 온천 물보다 훨씬 따끈하다는 것을 느꼈을 뿐.
음복주로 마셨던 막걸리 한잔의 기운으로 어지러워서 오래 물속에 있을 수 없었다.
까탈스러운 성격이어서 남의 등을 닦아 주지도 않고, 내 등을 맡기지 않는 내가,
부회장 김ㅇㅈ씨에게 등을 맡기고, 서투르지만 김회장의 등을 문지러 준 것은
그간 깊이 깊이 든 정때문이었을 것 같다,
목욕탕에 나와서 버스에 오른 뒤는 너무 피곤해서 눈을 감고 있었는데,
짧은 거리라 남ㅅㄱ씨의 식당앞에 있었다.
멀지 않기에 가능했던 산행,시산제,목욕,저녁식사의 하루였다.
한국의 산 참 예쁘죠, 어릴적 부모님과 등산했을때가 기억 납니다.
이번에 한국가면, 등산 한번 가야겠어요 !! ^^
자연과 더불어 건강한 생활을 이어가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올해도 하시는 일이 뜻대로 원만하시길 빕니다. -()()()-
멋집니다. ^^
아주 좋앗습니다
등산 가고 싶네ㅠ
잘 봤습니다.
멋진 산행이었겠네요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잘 봤습니다
가야산이 남연군 묘의 주산이 맞는가요?
대원군이 남연군 묘를 쓰기위해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절을 불지르고 주지를 내 쫓았다고 들었는데,
그 절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가보고싶네요
잘보고갑니다^^
잘 봤습니다. 건강하세요
좋은글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잘 봤습니다
글을 참 잘 쓰시는 군요^^정성이 대단합니다.
잘보고갑니다
잘보구감니다 감사해요
잘보고갑니다
삶의 여유가 느껴집니다. 건강 유지 잘 하셔서 인생 더 아름답게. 즐기시길. 바라겠습니다
경치가 참 좋네요^^*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글 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좋은글과 좋은풍경을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웬지 뿌듯한 하루였을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