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아들한테서 2박, 서울에서 1박, 파주에서 1박, 총 4박은 하리라 계획했다. 여행을 떠나기 2,3일 전에 노트북, 갈아입을 옷, 복용하는 약 등 준비를 했고, 인터넷으로 서울과 파주에서 묶을 모텔을 검색해 놓았다.
집에서 아침 8시 반에 나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3시간에 걸려 대전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 마중 나온 아들과 함께 아들의 오피스텔에 도착하니 정오였다.
대전 시내 중심에 소재한 오피스텔, 아들이 거주하는 12층에 들어서자 속이 답답하며 머리가 핑 돌았다. 그리고 견디기 힘들 정도의 피로가 몰려왔다. 늘 땅과 가까이 살아서일까? 몸도 마음도 높은 곳에서는 적응이 안 된다.
저녁 식사 때가 되자 아들이 “횟집으로 갈까요?. 고깃집으로 갈까요?” 하며 물었지만 내 대답은 집에서 “밥해먹자.”였다.
밤에 피곤하면 잠이라도 일찍 들어야 할 터인데, 11시가 되도록 잠이 안 와서 수면제가 든 약(공황장애 약으로 평소에는 잘 복용하지 않음)을 복용하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이튿날 서울을 거쳐 파주까지 가려고 했지만 자고나도 피로가 시원하게 풀리지 않아 파주 여행은 포기하고,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며 대전 시내를 두어 시간 돌아다니다 이것 역시 피곤해 오피스텔로 돌아갔다.
나는 오래 전부터 만성피로증상이 있다. 그리고 새벽녘이면 유령처럼 찾아오던 공황장애로 오랫동안 고생을 해서 그 트라우마가 아직도 남아있다.
이 두 가지 때문에 어디 가서 자고 오는 혼자여행은 자신이 없다. 그런데도 가끔 가다 혼자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일어나는 것이다.
파주는 내가 70년도 중반(74~77년)에 군복무를 했던 곳으로 군복무 때의 추억(?) 때문에 오래 전부터 한 번 가고 싶었다.
제대한 지가 40년이 더 지났고, 힘들고 당황했던 군 생활들이 트라우마로 남아 가끔 꿈속에서 나타나곤 했던 그 곳이 뭐가 그리워 가고 싶은지?
이제 파주는 과거 속으로 잊어버리자.
사람들과 함께 가는 임진각과 DMZ 생태관광이면 몰라도 혼자서 파주 여행 간다는 계획은 접는다.
대전에서 1박을 더 하고 이튿날 아침 8시에 아들과 함께 오피스텔을 나와 아들은 회사로 나는 거창으로 돌아왔다.
나이가 들면서 오랫동안 계획하고 소망한 것들이 헛된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그런 헛된 꿈을 몇 까지 꾸었다.
아래는 2008년 10월에 쓴 나의 졸저에 나오는 구절이다.
혼자 살며 농사지어 자식을 셋이나 대학 공부시키고, 또 가끔가다 부모님 시중도 들어야 하는 처지이고 보면, 삶의 무게가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지고 있는 이 짐 모두 벗어버리고 히말라야의 설산에 가서 구도하며 살아볼까? 아니면 도시로 나가 원룸을 하나 얻어 빈들거리며 살아볼까?
-중략-
히말라야에 가서 나는 우선 1년 동안만 일상의 무거운 짐 다 벗어놓고, 한 곳에 가만히 앉아 만년설을 쳐다보고 싶다.
올 신학기 초에 큰애가 자취하는 대학가의 원룸에 가보았는데, 원룸을 처음 본 순간, 원룸이야 말로 나 같은 사람이 살기에 딱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탁기, 냉장고, 벽장, 침대 등 생활 용품이 갖추어져 있었고, 청소할 것도 적고 살기에 편리해 보였다.
위 글을 썼던 2008년과 11년이 지난 지금은 내 삶의 여건이 크게 바뀌었다. 건강이 좀 안 좋지만 그 무거운 삶의 짐을 몇 년 전에 거의 다 벗어버렸다. 노동과 사람,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전원농장에서 편히 살고 있다.
이제는 히말라야에 간다면 피켓여행으로 가서, 설산이 보이는 호텔에 며칠 동안 머물다 오고 싶다.
좁고 답답한 원룸에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2008년에 내가 꿈꾸었던 히말라야와 원룸은 신기루와 같다. 사막을 걷는 사람이 목이 말라 죽을 듯할 때 보이는 찬란한 오아시스의 신기루.
신기루는 히말라야와 원룸만이 아니다. 나이를 먹으니 찬란하게 보였던 신기루가 세월 따라 가까이 가보니 황량한 모래사막인 경우를 속속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