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사시사
옆에 큰 느티나무 하나 서있던 내 하숙집 옆에 옥동초등학교가 있었다. 학교 축대 밑이 바다여서 밀물이 밀려오면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철봉에 옷을 걸어둔채, 차던 공 던져둔채 운동장에서 풍덩풍덩 개구리처럼 바다에 뛰어든다. 희희덕거리며 들락날락 하며 놀다가, 종 치면 교실로 들어간다. 모래밭 조개를 손으로 잡고, 따이빙하고 물장구치는 넓은 풀장 가진 학교 여기서 처음 보았다. 운동장에서 낚싯대 던져 전어 망둥어 잡는 그런 학교가 세상 어디에 있는가. 나이들면 여기 대청에서 바다에 낚시 던지며 살고 싶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씨름과 철봉 기술을 가르켜 주었다. 씨름기술은 좌우 중심을 흔들어 쏠리는 쪽 발목을 거는 호미걸이, 철봉은 가슴과 배를 앞으로 내밀며 나갔다가 돌아오는 반동으로 다리 쭈욱 뻗으며 몸을 위로 차올리는 '케라가리' 기술을 가르켰다. 아이들은 그런 기술을 처음 본다. 신기해서 나만 보면 우르르 몰려오곤 했다.
그 아이들 집에 대개 덴마가 있고, 아이들은 대개 노를 저울 줄 알았다. 섬아이들은 물고기처럼 헤엄 잘 치고, 자기 키 세배나 되는 뗀마 능숙하게 젖는다. 바다로 나가면, 욕지도는 해변 바위가 대부분 까만 홍합으로 덮혀있다. 홍합 말린 걸 육지에선 ‘합자’라 부른다. 제사 탕국에 들어가는 그 귀한 합자 천국이다. 섬 한쪽을 돌아가면, 유난히 물 맑은 곳 있다. 물속에 미역과 톳나물이 숲을 이루어 너울거리는 것이 훤히 보인다. 거기는 지상의 산과 계곡보다 더 아름답고 신비스런 물속의 산과 계곡이 있다. 용궁이 이런 곳인가 싶다. 바다 밑 해초 숲에는 수천수만 마리 치어떼가 유영한다. 금비늘 빤짝이는 도미나 등지느러미 날카로운 우럭이 나타나면, 치어들은 갑자기 방향을 획 바꾸어 도망친다. 마치 마쓰게임을 하듯 일사분란하게 도망치고는, 다시 신비롭게 유유한 원모습을 되찾는다. 이 엄청난 치어떼를 보면서 욕지도는 잡아도 잡아도 끝없는 어족을 가진 섬이구나 싶었다.
배가 섬 주변을 도는 동안, 한 아이는 고물에서 노를 젖고, 한 아이는 유리를 덮은 됫박처럼 생긴 걸로 물속을 비쳐보면서, 창과 낫 달린 장대로 물속의 성게나 해삼을 찔러올린다. 한 아이는 망치로 단단한 껍질을 까서 물에 휑구어 내 앞에 놓는다. 아이들은 눈이 밝다. 어느 바위 밑에 그 영역을 지키는 어떤 물고기가 있고, 어디에 성게나 소라가 있는지 잘 안다. 성게알은 일본에 수출한다느니, 해삼은 내장이 몸에 좋은 거라느니 아이들은 나에게 설명한다. 내가 만족한지 어쩐지 볼려고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자기들은 해삼이나 멍게에 완벽하게 손 하나 대지 않음으로서 충성심을 보이려고 애썼다. 나는 다만 초장 단지 붙잡고 앉아서, 아이들이 상납하는 포획물을 음미하면 그만이었다.
'우는 것이 뻐꾸긴가 푸른 것이 버들숲가. 어촌 두어집이 냇속에 나락들락, 말가한 깊은 소에 온갖 고기 뛰노나다. 연 잎에 밥 싸두고 반찬으란 장만마라. 청약립(靑蒻笠)은 써 있노라, 녹사의(綠蓑衣) 가져오랴. 무심한 백구는 내 좆는가. 제 좆는가.'
나는 고산(孤山)처럼 어부사시사를 읊다가 나중에 뗀마에서 내릴 때 충성스런 어린 부하들에게 푼돈 몇푼 쥐어주곤 했다. 그 돈은 그들이 일년에 한번 쯤 만날까말까한 가게 주전부리 용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