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의 오랜 은사님의 호출 오찬초대가 있었습니다. 스승님의 오랜 제자들 몇과 같이했던 오찬자리는 간만의 태균이를 벗어난 외부 모임이었습니다. 자주 밝혔던 것처럼 저에게는 무려 46년 인연이 이어져온 은사님이 계시는데, 지방소도시 여고에서 배운 영어를 평생 잘 써먹게 된 배경이 바로 이 분이기도 합니다.
4명이 모인 그 자리에 저를 제외한 3분은 여전히 미혼이시니, 자기삶에 대한 계발영역이 또다른 차원일 수 밖에 없는 분들입니다. 유명한 한식집에서 맛있는 오찬을 즐기며 간만의 수다와 정겨운 덕담들이 오가면서, 거의 매년 행사인 대산 김석진 옹의 새해 호신부격인 경원부를 하사받는 날이기도 합니다.
어려운 말로 보이는 수시변역隨時變易은 얼마 전에 중앙일보에 기사화된 김석진 옹의 인터뷰내용(아래첨부)에 나옵니다. 때에 따라서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융통성을 강조한 말이 바로 수시번역일 것입니다.
이제는 대산옹이 너무 연로하신데다가 노환도 깊어져 아마도 마지막 하사가 아니겠는가 하는 부언 속에 은사님의 애석한 감정이 진하게 묻어나옵니다. 은사님의 고전학문에 대한 사랑은 아주 커서 과거에 대산 김석진옹을 스승으로 모시고 직접 고전학당을 열고 배움을 갈구하는 여러 분들과 함께 사서삼경과 주역을 정통으로 수학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바쁘고 사는 지역도 다르니 기회가 없었지만 어제 함께한 고교선배들은 은사님과 함께 김석진옹의 수 년간의 직강을 접한 착실한 제자들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대화가 마치 고품격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서로에게는 김옹에게서 하사받은 호號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호는 월강月江, 물론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은사님께서 대신 받아준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제자를 늘 챙겨주시려는 은사님이 계시니, 그것에 대한 보답은 세상에 무언가 좋은 족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다짐하곤 하는데 언젠가 강 위에 밝은 달처럼 훤한 빛을 발할 날이 있기는 하겠지요.
모임장소가 서울이다보니 정작 오찬과 대화의 시간보다 오고가는 시간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니 이 점 아쉽기는 하지만 간만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제게 올해의 경원부를 주실 때 결코 제것만 챙겨주시지 않고 태균이것도 꼭 챙겨주시는 선생님. 태균이는 참으로 복이 많기도 합니다. 태균이 복 덕에 제가 존재하는 것 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