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40~55장의 본문은, 예루살렘의 이사야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최소한 백 년 이상 지난 바벨론 포로기의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이사야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했던 서기전 8세기에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이때 남왕국 유다 역시 앗시리아의 위협에 시달렸지만, 히스기야와 요시아, 두 명의 훌륭한 왕이 국가적 위기를 잘 넘겨서, 북왕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100년 넘게 나라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기전 587년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되고 유다의 지식인들이 대거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사야서 40~55장은 이 시기를 다루고 있기에 예루살렘의 이사야가 쓴 글일 수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칼빈주의자들만이 이 글도 예루살렘의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먼 미래를 내다보며 예언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맞으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건 마치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어 놓고 책임을 묻는 것처럼, 예루살렘의 운명을 미리 결정해놓고 책임을 묻는 우스꽝스러운 것이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40~55장의 본문은 서기전 540년경에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 포로들을 대상으로 선포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의 이사야의 정신을 계승한 이사야 학파 사람이 쓴 글인 것은 분명하지만, 예루살렘의 이사야가 아니라 학자들이 ‘제2이사야’라고 부르는 사람의 작품입니다.
40장에는 바벨론 포로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글이 예언의 형식으로 담겨있습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1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2 "예루살렘 주민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이제 복역기간이 끝나고, 죄에 대한 형벌도 다 받고, 지은 죄에 비하여 갑절의 벌을 주님에게서 받았다고 외쳐라."
3 한 소리가 외친다.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길을 곧게 내어라.
4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5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랍니다. 복역기간이 끝났고, 죄에 대한 형벌도 차고 넘치도록 받았다는 것입니다. 1~39장까지 선포되었던 말씀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서 예언자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남왕국 유다는 이미 멸망한지 오래고, 끌려온 예루살렘의 지식인들이 오랜 세월 포로생활을 했음을 암시하는 내용입니다. 서기전 540년경의 시대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절망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예언자는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계곡을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내랍니다.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랍니다. 불평등을 없애고 공평한 세상을 만들라는 말씀인데, 전통적으로 교회는 이 말씀을 예수님의 사역과 연결시켜 해석했습니다. 신약성서의 여러 본문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23절을 보겠습니다.
23 요한이 대답하였다.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하고 말이오."
이 본문은, 세례 요한의 정체를 묻는 사람들에게 세례 요한이 스스로 한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2이사야가 예언한 이사야서 40장의 말씀이 예수님에 의해 성취되었노라고 요한복음서 기자가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그런 세상을 이루기 위한 삶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제2이사야의 희망의 예언이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말씀일까요? 이 부분에서 보수적인 신학자들과 진보적인 신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극명하게 갈립니다.
현대 진보신학자들 대부분은 그렇게 오백 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넘는 운명적인 예언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정해진 운명대로 운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 진보적인 신학자들이,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사실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의 도래를 염원했던 이사야의 꿈이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구체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은 현대 진보신학자들도 거의 다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