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수촌리고분에서 김종서 생가지까지(12-13회 연번 136회차 답사 결과)
: 2012년 4월26일(목)
금동관이 나온 고분으로 유명해진 공주 수촌리 고분군에서부터 고등산 봉화대 터를 지나 동혈사를 보고 김종서생가지까지 답사길이었다.
공주시청 문화관광과에서 주관한 이번 답사길은 다분히 테마가 있는 둘레길 조성 정책의 일환이었지만, 이에 편승해서 손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코스를 쉽게 다녀올 수 있었다.
힌성백제에서 돌연 웅진(공주)으로 백제 수도를 옮길 수 밖에 없었던 급박한 시절에, 이미 공주로 도읍을 천도할 수 있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주체로 보이는 세력들의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촌리 고분군은 수촌초등학교 바로 옆 언덕에 있었다.
한 때 발굴로 떠들썩했던 곳들이 도로 되뭍혀지고 나면 휑한 것이 지금은 별 볼 일 없다.
다만 그 곳에 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는 기회로 삼는다.
주변 지형이 어떠한지.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생각해본다. 옅은 풍수지리적 지식까지 동원해서.
이어지는 고등산 봉수대 터는 지금껏 본 중에서 원형이 가장 남아있는 터 중에 하나임이 분명하다.
오히려 복원하지 않은 상태가 더욱 실제 원형을 볼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고등산의 지명이 갖는 의미와 위치적 특성을 생각해본다.
동혈사(東穴寺)는 백제시대 때 왕성이 공산성에 있었다면, 사방에 혈처를 찾아 절을 세워 수호했을 것으로 본다.
남혈사, 서혈사에 이어 동혈사를 찾아보는 것도 크나큰 의미가 있었다. 북혈사는 아직 미확인이지만, 더불어 오방성의 방위체제까지 그 기본 원리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백제 산성에서의 오방성 문제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다만 추정으로 그칠 뿐이다.
(공주)의당초등학교 옆에 있는 김종서 장군의 생가지 역시 전설로만 전해지는 곳에서 조선 태종시부터 단종시까지의 시대적 상황을 오늘에 비춰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이었다.
남들이 닦아 놓은 길을 따라 가는 답사길은 편하기만 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나선 답사길은 동상이몽처럼 제각기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터이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알려고 노력하는 만큼 보일 것이 아니겠는가하고 자문해본다.
<공주시 의당면 수촌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는 고분군 입구>
< 고분군 : 서쪽 멀리 앞으로 무성산 줄기가 보이고, 바로 앞으로는 서울 - 공주 국도와 정안천이 흐르고 있다>
<고분 발굴을 담당했던 분이 당시 상황을 자료를 가지고 설명해주고 있다.>
<수촌리 고분군에서 설명을 듣고 답사길은 시작된다. 09:20분이 넘어서 출발에 나선다. 고등산 봉수대 터를 향해서>
<남쪽 출입구 쪽에서 바라본 봉수대 고대>
<봉화산으로 불리우는 고등산의 뒷모습>
<봉화산이 보았을 공주시 쪽 조망>
<도령서당에서 점심을 먹다>
<점심 후 찾아간 동혈사>
<대웅전 찾아 올라가는 도중에 석탑이 있고. >
<바위위에 설치한 치졸한 3층 석탑과 노송사이로 공주 쪽 조망이 일품이다.>
<혈처로 보이는 곳과 느티나무 고목이 무슨 사연을 말해줄 것만 같다.>
<공주 의당초등학교 옆에 있는 김종서 장군 생각지; 세월의 무상함과, 권력의 냉엄함과 역사의 엄숙함에 숙연해진다.>
<명당터였을 곳의 지형은 남향으로 좌우 산줄기가 다소곳한데, 한 때의 영화와 번성함이 멸문지화로 끝맺음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김종서 장군 생가지에 피어있는 자목련과 박태기 나무의 검붉은 모습이 화려한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