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을 보내며/전성훈
병신년 새해가 벌써 한 달이 지나간다. 오늘은 공교롭게도 1월 마지막 주일이자 마지막 날이다. 1월은 1년 열두 달에 속하지만 그 해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 나머지 11개월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일을 시작할 때 쓰이는 재미있는 말이 ‘시작이 반’이다. 이 말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말을 찾아보니, ‘작시성반(作始成半)’-[처음을 만들면 반을 이룬 것], ‘행원자이(行遠自邇)’-[먼 곳을 가려면 가까운 곳에서,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또 ‘등고자비(登高自卑)’-[높은 곳을 올라가려면 낮은 곳에서부터]가 있다. 서양 철학사에서 볼 때 인류의 위대한 스승인 소크라테스 보다 훨씬 늦게 등장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시작이 반이다’라고 말했는지 궁금하다.
일을 하면서 끈기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지구력, 인내력, 체력이 강하지 못한 사람들도 흔하다. 목표를 향하여 나아갈 때 장애물을 만나거나 어려움에 처하면 쉽게 단념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넘어지고 엎어지는 괴로운 현실에 부딪히면 목적의식을 잃거나 목표를 내팽개치며, 나약하고 처참한 모습으로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숱한 풍상에 짓눌려 형편없이 초췌해진 얼굴과 초라한 모습이지만 불굴의 의지와 용기를 지닌 독수리처럼 불타는 눈빛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그다지 많지 않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어떤 결심을 하고 그 일을 시작한 지 3-4일 만에 이른바 ‘작심삼일’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고약한 올무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말 한마디는 무엇일까? 깊은 성찰 속에서 혹은 번뜩이는 기지로 그리스 현인은 ‘시작이 반’이라는 멋진 격언을 후세에 전해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해의 시작인 정월을 보내며 한 달 동안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았다. 예년과는 달리 올 해에는 하고 싶은 일 또는 해야 할 일을 적어 두었다. 수첩을 꺼내어 기록해 둔 새해 소망을 다시 읽어 보니 가장 중요한 체력관리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였다. 지난 1월 한 달의 생활은 짧은 여행과 혹독한 추위로 인하여 아쉽게도 ‘작심삼일’이 되었다. 매일 근린공원을 30분 이상 걷기로 하였는데 1월 초순 일주일 간 걷고는 전혀 걷지 못하였다. 걷기만 그만 둔 것이 아니라 수영장 다니는 일도 중단하였다. 수영장에도 1월에는 세 번 밖에 가지 못했다. 매주 2-3회 가려고 마음먹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8일간의 해외여행으로 운동의 흐름이 끊어졌다. 게다가 날씨가 매우 추워지면서 야외활동을 접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심하게 추위를 탄다. 어쩌면 내가 태어난 때와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음력으로 동짓달 보름날에 태어났는데 양력으로는 12월 31일이다. 그 대신 웬만한 더위는 잘 참는다. 여름에도 그다지 땀을 흘리지 않아 다른 이들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지낸다. 선풍기나 에어컨을 찾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전철이나 버스를 타도 에어컨이 켜진 자리를 피한다. 음식점에 들어가도 가급적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을 등지고 자리를 잡는다.
내일이면 2월이고 곧 입춘이 다가온다. 입춘이 지나면 동장군과 북풍한설로 꽁꽁 얼어붙은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가 찾아온다. 혹독한 추위에 움츠리며 꼼짝 못하고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몸과 마음, 그 가련한 마음과 몸이 애타게 봄을 기다린다. 봄소식을 전하는 늦겨울의 홍매화와 봄의 전령인 샛노란 개나리가 우리 곁을 찾아오는 날, 내 몸도 슬슬 긴장을 풀고 기지개를 활짝 피게 된다. 그 때가 되면 자애로운 어머니인 대지의 따스한 품속으로 마음껏 달려 나가며 ‘시작이 반이다’라고 크게 외치고 다시 시작하자. (2016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