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경남 창원의 LG전자 세탁기 공장은 한겨울 냉기가 무색할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100m 길이의 조립 라인마다 70명씩 배치된 작업자들의 손 놀림은 잠시도 멈출 줄 몰랐고, 이를 지원하는 테스트센터에서는 초고온·극저온 내구성 실험 등 70여 가지 검사가 한창이었다. 창원공장 김현식 생산실장은 “이달 들어 계절적 비수기 영향으로 물량이 다소 줄었지만 그래도 밀린 주문에 라인을 멈추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미국 시장 휘젓는 LG 세탁기=창원 세탁기 공장은 요즘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창원공장에서 만들어 보내는 LG전자 세탁기가 올 들어 미국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작년만 하더라도 미국 드럼 세탁기(세탁물 투입구가 위쪽이 아니라 앞쪽에 설치된, 국내에서도 가장 많이 출시되는 세탁기)시장에서 14.3%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올해는 이를 23%까지 끌어올리며 정상을 차지했다. 처음 진출한 2003년 점유율이 2.3%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급격한 성장세다. 세탁기사업부장 조성진 부사장은 “덕분에 홈디포 같은 유통업체는 물론 까다롭기로 유명한 시어즈백화점까지 올 들어 우리 물건을 팔겠다고 해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그 중에서도 프리미엄 드럼세탁기 위주로 시장을 공략한 덕에 제품 값도 높게 받고 있다. LG전자의 올해 3분기 미국 시장 평균 판매 단가는 1007달러를 기록, 업계 평균(800달러)을 훨씬 웃돌았다. LG전자 관계자는 “최근 미국 세탁기시장도 과거의 톱로더(세탁물을 위쪽에서 투입하는 방식)형 제품에서 드럼세탁기로 넘어가는 추세라 앞으로의 전망도 밝다”고 말했다.
LG전자 창원 세탁기 공장에서 직원들이 숙련된 손 놀림으로 세탁기를 조립하고 있다. /탁상훈 기자
◆맞춤형 생산체제가 원동력=이런 결과는 LG전자 생활가전의 핵심 기지 역할을 하는 창원공장에 힘입은 바 크다는 분석이다. 창원공장은 몇년 전부터 세계 3위 수준인 LG전자 세탁기의 위상을 1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미국 시장 정복이 필수라는 판단 아래 세부 전략을 짰다. 세탁기사업부 류재철 부장은 “전담 팀을 꾸려 미국 소비자들의 성향을 철저히 분석한 뒤 제품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까다로운 미국 소비자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십 가지의 검사 공정을 추가했고, 대용량 제품 선호 추세에 맞춰 이례적으로 기존 제품보다 40~50% 큰 15㎏짜리 대용량 세탁기를 만들었다. 또 미국인들이 큰 키 때문에 세탁기 문을 여닫을 때 불편해한다는 점을 고려, 바닥 높이를 20㎝ 높인 제품도 출시했다. 공장 라인은 10초당 1대를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성 높은 체제로 전환했다.
이런 결과들이 맞물리면서 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JD파워’는 올해 세탁기 부문 소비자 만족도 조사에서 LG전자 제품을 1위로 선정했다.
다만 올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 등의 영향으로 내년 미국 경기가 나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부정적 요인이다. 소비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탁기의 특성상 LG전자가 이 부문에서 올해 같은 실적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뜻이다. 조성진 부사장은 “전체 시황에 관계 없이 제품 자체의 경쟁력을 높여 한 단계 도약하겠다는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