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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초등학교 총동문회
 
 
 
카페 게시글
59조병현 진도얘기 옛날에 목포-벽파-조도간을 운항했던 배 문화호
59회 조병현 추천 0 조회 12 26.08.03 13:37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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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8.04 08:26

    첫댓글 멋짐....... 문화호 명신호 가야호 벽파에서 쉽게 봐왔던 배. 사진 보니 그립네요
    명신호 땜시 강진 사람과 진도사람 교류가 많았고 진도에 강진 사람 이주가 많았습니다.
    가야호 때문에 제주도로 시집간 아낙네도 있고 벽파 사람이 나락가마니 등짐과 벽파 아낙네들의 떡장사가 많았습니다

  • 작성자 26.08.04 17:36

    백파, 백파장이라고 불렀었지라? 덜?
    이전 우덜 에릴찍에 벡파장 가보므는 날마디 장날같어가꼬
    그케 벡파장이라고 불렀등갑서라? ㅋ~~

    진도대교 놓기 직전 1980년대 초
    최고 시절 최대 108가구 500명 이상이 살았던 데지라.

    지주도 가넌 배럴 갈어 탈라고 강진 해남 완도서 오넌 손님덜이 많앙께
    주점 겸 식당을 겸하는 여인숙덜이 다섯 반데나 댰었넌데도
    기상이 안 좋아 뱃질이 멍크므는 그케 많안 방덜이 모도 꽉꽉 창께
    반침이나 지시렁 밑에랑 허청재까장도 꺼적 펴놓고 자고
    그랬든 데가 백파장이었었지라.

    지끔은 모도 흘러간 옛 노래가 댜뿌렀제만이라.

    소전 선성님 조부이신 옥전 할아부지께서
    여그 벽파진 수진장을 지내셨단 기록이 있지라.

  • 26.08.04 17:34

    제 기억으로는 1960년말경 진도쌀을 제주도로 보낼 때 벽파에서 배로 실어 옮길 때. 한가마당 약 80kg 사람이 일일이 어깨 짐해서 선적했어요 그때 가마당 5원인가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하루에 2-3백가마 선적하면 1000원~1500원 벌었으니 큰 돈이죠. 제 외가가 벽파이고 바로 선착장이며 외가집에서 가야호 명신호 등 배표를 담당을 해서 잘 압니다.

  • 작성자 26.08.04 20:03

    벽파항은 서권영씨라고 서씨 댁이 매표관리럴 했었등 거 같은데라만...

    참고로 진도 지명에 -진(陣)과 -진(津)이 있넌데라
    일단 진(陣)은 군대가 진을 친 곳인데
    내나 진지(陣地)로 언제든지 적과 싸울 수 있도록 설비 또는 장비를 갖추고 부대를 배치하여 둔 곳이지라.

    진도에는 세종 때 남도진(南桃鎭)히고 금갑진(金甲鎭)에 수군 만호들얼 둬가꼬 만호가 주재했던
    남도진성(南桃鎭城), 금갑진성(珍島 金甲鎭城)이 있었고

    그란데
    녹진리(鹿津里) 벽파리(碧波里)는 거가 진이라도 나루터라서 나루터 진(津)이로
    글자가 남도진(南桃鎭), 금갑진(金甲鎭)하고는 딸러람짜.

    벽파진(碧波津)하고 녹진(鹿津)은 나루터라서 진지(陣地)는 아니고 나루터 진(津)이지라.

    또 참고로 해창(海倉)에넌 병선도 6척이 있었고 수군도 300명이 있었다제만
    여그는 국가 창고가 있어가꼬 그란 것이었고라

  • 26.08.05 08:30

    @59회 조병현 서권영씨는 58회 서만석씨 작은 아버지입니다 매표는 주로 저의 외가에서 하다가 1970년 중간부터 서권영씨가 했습니다.
    또한 옥전(손병익)이 벽파진에 계실 때는 더 조사해 보면 알겠지만 고군 벽파리 연동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유는 옥전의 집이 연동마을에 있었고 연동마을을 넘어 바닷가로 가면 뾰족 나온 곳(붉은 원)이 있어요 그곳에 초소 비숫한 망을 보던 곳이 있습니다. 또한 그 일대가 지금도 옥전 소유의 임야가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진도고등학교 소유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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