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계절이다. 지천으로 흐드러졌던 꽃들이 엊그제의 비로 파릇파릇한 잎들에 자리를 내주었는지 온통 초록빛이다.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메마른 영혼을 적셔주고 채워 주는 느낌이라 충분히 위안이 된다. 공룡나라로 잘 알려진 고성에서 숨겨진 보물찾기라도 하듯 막연한 설렘과 기대를 안고 하일면 학림리 학동 돌담마을을 찾았다. 켜켜이 쌓인 돌담을 보니 330년의 세월을 품고 많은 이야깃거리를 풀어낼 것 같다. 학동이란 이름도 학(鶴)이라는 새의 상징적 이미지가 가져다주는 고고함에 예사롭지 않은 스토리를 전해준다.
/글 정철 자유기고가 사진 김지은 자유사진가
학이 알을 품은 마을
학동마을은 전주 최씨(全州崔氏) 안렴사공파 집성촌이다. 조선 중기 1670년경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는데 앞장섰던 의민공 최균(崔均)의 고손자 최형태(亨泰)가 학이 마을에 내려와 알을 품고 있는 꿈을 꾸었다. 날이 밝아 그 곳을 찾아가보니 과연 산수가 수려하며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므로 명당이라 확신하고 입촌하여 학동이라 명명하면서 형성되었다.
지금은 전주 최씨 집성촌 가운데 가장 큰 마을이 되었고 10여개의 성씨가 어울려 살고 있다. 한때 150여 가구가 살만큼 번창했으나 주민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나고 지금은 50여 가구에 100여명이 산다.
바다로부터 약간 물러나 앉은 이 마을 뒤로는 수태산, 앞에는 좌이산, 마을 옆으로는 학림천이 휘감아 흐르는 지세로 보아 전통적인 배산임수형 입지로 명당이요, 유서 깊은 마을임을 알 수 있다.
돌담장 옛모습 그대로 간직 정감있고 아름다워
산과 바다 언저리를 돌아 학동에 이르렀을 때는 막 정오를 지난 즈음, 김영랑 시인이 노래했듯이 돌담에 찬란한 햇발이 속삭이고 있다.
길고 아담하게 자리 잡은 마을은 시골 고향에 온 듯 낯설지 않아 반갑고 아늑하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한적함이 객을 맞는다. 천천히 좌우로 늘어선 돌담을 따라 골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돌담너머로 보이는 지붕들이 모두다 기와집은 아니지만 옛돌담이 아름답고 특별하여 유명해진 마을답게 대부분 돌담장은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옛날 동네치고 돌담길은 골목길인데도 제법 넓고 약간의 곡선이 있으나 잘 정리된 느낌이다. 저쪽에서 동무들과 술래잡기하는 아이가 금방이라도 골목을 돌아 튀어나올 것 같다.
돌담은 언뜻 봐도 특이하다. 마을 뒤 수태산(해발 571m)에서 가져온 돌이라는데 온돌방에 사용하던 구들장 느낌이다. 변성암 계통의 점판암이라 시커멓고 납작납작하다. 뒷산에 지천으로 널려 있으니 구하기 쉬운 대로 가져다 쌓은 모양이다. 이 돌들을 층층이 가지런하게 쌓은 뒤 윗부분에는 황토를 메워 단단하게 굳혔고 그 위에 개석을 지붕삼아 올려놓은 모습이 가히 예술이다. 담장 중간쯤부터 황토를 섞었고 그 위에 판석을 올려 빗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보호한 데서 마을 사람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투박한 듯 보이지만 자상한 손길이 가득 담긴 돌담. 돌 하나 흙 한줌 켜켜이 쌓아올린 모습이 단절된 과거로부터 현재를 이어준다.
도시인들 안식 구하기 위해 찾아
돌담은 마을에 있는 전통가옥인 최씨 고택과 사비정, 교육기관인 육영재, 노거수, 그리고 마을을 에워싼 대숲과 어울려 운치를 더한다. 제법 높아 보이는 돌담 너머로 집집마다 몇백년은 됨직한 고목들이 보이는 것도 색다르다.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학림천 앞에도 300년 넘은 느티나무가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 개울에서 동네 아이들은 멱을 감고 물고기도 잡고, 아주머니들은 삼삼오오 모여 빨래도 했을 것이다.
300년이 지나도록 소박한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서 평온을 유지해 더욱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움을 갈망하며 편리함 만을 좇아가는 도시인들이 영혼의 안식을 구하기 위해 물어 찾아오기까지 하니 말이다. 글 쓰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이 이곳에서 영감을 얻어 간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 삶이란 그저 복잡한 이론과 형이상학을 들이대지 않아도 단순함과 소박함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고, 잔잔한 평화와 즐거움이 마음에 충만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330년 종사를 받드는 최씨 종가
마을에서 백미는 역시 대대손손 마을을 지키고 있는 후손들의 전통가옥이다. 최씨 종가는 2011년 7월 14일 경남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종가에는 안채와 사랑채, 고방채, 토담으로 쌓은 창고가 남아있다. 수많은 제사를 지휘하던 팔순 종부 박종례 할머니가 마당에 쏟아지는 햇살을 즐기다 예고 없이 들어서는 객을 거부감 없이 맞는다. 널찍한 마당에 가꾸어 놓은 텃밭에는 마늘이 파릇파릇 싱싱하게 자라며 시골인심을 나타내고 우아한 동백나무가 몇백년의 세월을 품고 대문 옆에 서 있다.
330년 종사를 받드는 종가는 축대위에 높이 앉아 위용을 드러낸다. 납작돌로 축대를 높이 쌓은 후 그 위에 집을 지은 모습이 한결같은 이 마을 특징이다. 안채 축담 위에 신기하게도 같은 돌담으로 나지막하게 에워싼 닭장은 닭을 족제비 등 동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커다란 돌로 덮어 놓았다. 안채 뒤 장독대는 계단식 돈대로 돌을 차곡차곡 쌓았는데 꽤 널찍한 것을 보니 종가에 쓸 음식은 모두 이곳에서 나왔으리라. 제일 높은 돈대 위에는 뒷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가묘가 조상들의 신성한 위엄을 내뿜는다.
자랑스러운 선조 위세 '당당'
차종가인 참봉댁이라 부르는 최영덕(泳德) 매사고택은 일찍 문화재로 지정되어 비교적 잘 보존된 모습으로 종가와 돌담장 하나로 이웃하고 있다. 전통 목조건물인 사랑채를 포함한 모든 건물이 시원스런 일자형 평면구조다. 선조들의 교지는 경상대학교에 기증하고 모본만 있었는데 자랑스러운 선조의 위세가 당당하다. 사랑채에 멋진 글씨체로 적힌 학림헌(鶴林軒)이라는 편액은 통영 통제사 관할구역인 이곳이 관청과 멀었던 사정에 따라 임시 동헌으로 사용하면서 붙여진 이름.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흙돌담에 내놓은 구멍은 사랑채로 드나드는 사람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란다. 대문채에 있는 돌담 구멍은 가난한 자를 위한 음식을 내어주는 데 쓰였다니 사려 깊은 인심을 알 수 있다. 뒤뜰에 있는 정(井)자 모양의 화강암 우물 뚜껑에 난 크고 작은 세 개의 구멍은 '천·지·인'을 뜻하며 당시 석공의 솜씨를 자랑한다. 조선시대 양반가 선비를 상징하는 회화나무, 연리지로 자라난 모과나무, 동백나무가 모두 고목이어서 고택과 함께 기록되지 않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
우국충절을 기린 서비정
마을을 휘감아 도는 학림천을 건너 마을 맨 끝자락 언덕에 서비정(西扉亭)이 있다. 서비정은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것을 한탄한 최우순(崔宇淳, 1832~1911)의 넋을 기리고 있다. 정자 앞에는 기품 넘치는 소나무 한 그루가 청청하다.
최우순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일본이 위치한 동쪽이 싫어 사립문을 서쪽으로 돌리고, 호 청사(晴沙)를 서쪽으로 난 사립문이라는 뜻의 서비(西扉)로 바꾸어 의병활동을 하였다. 경술국치를 강행한 일본이 은사금으로 회유하려 하자 거부하며 자결하였는데 이때가 그의 나이 향년 80세였다. 순절 소식에 전국의 유림과 지사들이 그의 우국충절을 기려 서비정을 세우고, 향사를 모셨다. 나라를 아끼는 우국충절도 남달랐던 마을이다. 이곳 역시 같은 형태의 돌담과 석축을 쌓은 축대 위에 정자를 지어놓았다.
후손들의 교육기관 육영재
원래는 1723년에 전주최씨 문중에서 후손들의 교육을 위해 마련한 초가집이었으나 1845년 이곳에 현재의 건물을 세웠다. 지금의 학제로 치면 유치원부터 대학까지다. 4동의 목조와가 건물이 동서남북으로 배치되어 있다. 많은 석학과 독립지사를 배출하였고, 경내에는 당시 학동들이 사용하던 고서 300여 권이 소장돼 있다. 서비정 주인공인 최우순의 순의비(殉義碑)도 있다. 한국전쟁 당시 하일국민학교가 불탔을 때 4년 동안 공부했던 곳이기도 하다. 1994년 도문화재자료 제208호로 지정되었다. 육영재와 더불어 야외학습과 서화경연을 하던 천도연(天桃淵)이 저수지 둑 공사로 흔적이 없고, 연못 안 표석만이 대문 앞에 제자리를 잃고 놓여있어 안타깝다.
마을 옆 조금 떨어진 곳이라 사람의 발길이 뜸한 탓인 듯, 정오의 해가 하늘높이 걸려 있는 데도 육영재 솟을대문은 굳게 잠겨 있다. 문틈으로 안을 살필 수 없어 담 위로라도 엿 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란 노거수들이 성글게 그늘을 만들고 뒷산 고아한 홍송만이 선비의 의리와 절개를 대변하며 병풍처럼 육영재를 둘러 서 있다. 멋지게 차려입은 도령들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리는 듯하다.
내 고향 돌담길 추억을 떠올리며
짚을 섞은 황토와 함께 쌓은 담. 그 속에 촘촘히 박혀있는 돌들, 추억 속 고향의 황토 돌담이다. 기억이 아련한 그 돌담은 세월의 간극을 메우고 많은 잃어버린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양반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바닷가에 인접하지 않고 물러나 일구었다는 학동마을. 대대손손 번창한다는 의미를 지닌 학의 마을 돌담과 전통고택이 그 가치를 보존하여 후대에도 변함없이 전해지길 기원한다.
'우리것'에서 찾을 수 있는 느림의 미학을 여유롭게 느껴보길 원한다면 최씨고택에서 하룻밤 묵어갈 수도 있다. 넉넉한 인심으로 최씨 종가의 비법을 담아 내오는 한식을 기대하면서...
최씨고가
위치 경남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학동마을
전화 055-673-6904, 011-824-4274
Plus Info no.1좌이산 자락 송천마을
생명환경농산물 참다래 · 취나물 맛보고
갯벌체험과 청정해역 굴 구이도 일품
공룡발자국으로 잘 알려진 고성이지만 청정해역 자란만 일대에는 해풍을 맞으며 자란 무공해 참다래와 취나물도 유명하다. 그래서 학동마을에서 멀지 않은 송천리로 옮겼다. 좌이산 자락에 자리한 송천리 참다래마을은 참다래와 취나물, 바닷가 갯벌체험을 위해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송천 참다래 정보화마을
위치 고성군 하일면 송천리 229-2
홈페이지 http://chamdarae.invil.org/
전화 070-7767-8622(체험 예약필수)
달콤하고 부드러운 참다래
해풍 맞아 당도 최고
흔히 키위라고 부르는 참다래, 말만 들어도 그 새콤함에 온몸이 움츠려지고 입안에 침이 괸다. 보송보송한 털로 덮인 다갈색 껍질을 벗겨내고 드러나는 연한 초록빛 속살을 잘라서 먹거나 숟가락으로 떠먹는 그 맛. 새콤하면서도 달콤하고 부드러워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다.
송천마을에서는 참다래를 생명환경농법으로 생산한다. 산약초와 천혜녹즙, 해초류, 한방영양제 등 40여 가지의 천연비료와 녹차잎 등 즙액을 활용하여 병충해를 자연방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 송천의 참다래는 해풍을 맞고 자라 당도가 더하다. 수확 뿐아니라 참다래잼, 천연비누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봄내음 물씬
쌉싸름한 취나물
쓴맛이 강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약용 성분이 강해 건강식으로도 좋은 힐링 식재료인 취나물은 송천이 자랑하는 최고 농산물 중 하나. 해풍을 맞으며 자란 이 마을 취나물은 잎 끝이 살아있고, 초록색이 진하고 선명하다. 한 번 맛보면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반드시 다시 찾는다는 취나물.
송천마을 취나물 또한 생명환경농산물이며 청정해역 자란만의 맑은 환경에서 자라 그 맛과 향이 독특하다. 취나물 수확시기에 맞춰 2월부터 6월까지 봄 내음 가득한 취나물을 캐고 직접 채취한 취나물로 나물을 무쳐 먹는 체험도 가능. 취나물은 비타민A가 배추보다 10배 많이 들어있고 고기가 탈 때 발생하는 발암물질을 80%이상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고기와 함께 먹으면 좋다.
바다냄새 가득한 굴
직접 따서 구워먹기도
청정바다 자란만에 위치하고 있는 송천마을에서는 시원한 갯벌체험도 즐길 수 있다. 솔섬 부근에서 물이 빠지고 난 갯벌을 호미로 살짝 파기만 하면 조개 갯지렁이 고둥 게가 거품을 뽀글거리며 나온다. 모든 일을 다 잊고 진흙을 묻힌 얼굴로 호미를 들고 바지를 둥둥 걷어 올린 채 갯벌을 파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다.
특히 늦은 가을에서 봄까지는 굴 따기 체험이 있어 신선한 굴을 맛볼 수 있다. 해안선을 따라 굴양식이 발달하여 정갈하게 관리한 굴을 구워먹는 맛도 일품이다. 바다의 우유, 바다의 현미, 바다의 의약품이라 일컫는 굴은 일찍부터 서양인들이 더 좋아하고 애용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Plus Info no.2자란만
해안 드라이브 100% 즐기기
'고성' 하면 공룡과 공룡세계엑스포를 떠올린다. 하지만 고성에는 공룡 외에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학동마을을 둘러본 후 자란만 바다를 안고 환상적인 해안 드라이브 코스를 따라가 보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리아스식 해안을 실감할 수 있다. 한려수도 안자락의 절승인 이 길은 부분적으로 아스팔트 도로를 둘러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으나 해안 둘레길 트레킹코스로도 연결 가능하다.
학동고개
'쥬라기 골프장' 입구가 보이는 곳을 지나서 학동마을로 들어가기 전 자란만이 한눈에 들어오는 학동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절경 중 절경이다. 야생 자란(紫蘭)에서 이름을 가져온 자란도가 전설 같은 작은 섬들과 함께 동양화를 그려 놓았다.
임포마을
학동 돌담마을에서 돌아 나오면 '임포마을 자연산 횟집'이라는 아치형 안내판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한낮이라 조용해 보이는 마을이지만 새벽 6시가 되면 임포마을 물량장에서는 그날 잡은 펄떡펄떡 뛰는 생선들을 경매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솔섬 둘레길
나지막하고 자그마한 솔섬, 바로 옆에 또 하나의 작은 솔섬이 사람 얼굴을 문득 떠올리게 하는 모습(보는 사람에 따라 다름)으로 찰랑이는 파도 속에서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문득 향긋한 바닷바람이 간간히 불어온다.
소을비포 성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진영을 구축해 적의 침입에 대비했다는 소을비포성지. 낮은 산 해안경사를 따라 쌓은 타원형 성곽이다. 봉수대가 있는 좌이산이 소을비포 뒤편에 솟아있다. 도 기념물 제139호.
용암포항
용암포항은 믿음직스런 사량카페리가 사량도 지리망산을 찾는 관광객을 기다리며 정박해 있는 곳. 사량도까지는 배로 30분 걸린다. 사량도 지리망산은 그냥 지리산이라고도 불리며, 한국의 산하 100대 인기 명산 중 25위,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도 올라있다.
맥전포항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 사람이 부끄러워할 만큼 예쁜 맥전포항이다. 자그마한 등대가 오월의 푸른 하늘과 쪽빛 바다를 배경으로 바다 멀리 떠난 임을 기다리며 붉게 단장하고 있다. 깨끗하게 정비해 놓은 항구에는 청보리를 형상화한 조각품에서 시원하게 물을 뿜어내는 분수대와 누군가 연주할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채비를 갖추고 있는 음악분수대도 있다.
상족암
상족암에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면 알찬 나들이 길이 될 듯하다. 고성에 와서 바닷가에 펼쳐진 바위에 공룡발자국이 선연한 상족암을 빼 놓을 수는 없다. 공룡도 공룡이려니와 상족암의 절경이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바다 맞은편 주상절리가 아름다운 병풍바위는 깎아지른 절벽을 한폭 한폭 펼쳐 놓았다. 해면의 너럭바위와 조각칼로 그린 듯한 거대한 수평층리는 기암괴석을 만들어 아득하게 이어지고 있다.
첫댓글 고택이 아름다운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