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독서일지(2024.07.04~07.25)*
<7월 15일 월요일>
무더운 여름과 책,
우리 앞에 드러나는 두 가지 다른 세계
독서(讀書)는 일상(日常)이어야 한다.
일상이란 아주 오래된 관습과 같이,
습관처럼 매일 규칙적으로 이루어지고 진행되는
여러 행위들로 채워진 하루를 말한다.
1
통영
-백석
옛날엔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 오리같이 말라서 굴 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줏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 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 냄새 나는 비가 내렸다
<斷想> ‘미역 오리같이 마르고 굴 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여성이 일제 강점기에는 있었을 것 같다. 아니, 많았을 것 같다.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원망하며 현해탄에서 같이 바다로 뛰어내려 정사(情死)했다는, 당시 신문에 보도되며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는 남녀도 있었고……. 시대를 뛰어넘어 남녀 간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고 하는데, 어째 요즘은 문학작품을 보나 영화를 보나 그런 사랑은 이제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 요즘 세태에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 것 같다
2
소설을 읽는 묘미
-자네 부친은 튼튼한 분이셨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말은, 피로를 호소하지 않으며, 결코 앓아눕지 않고, 죽을 때 큰 돈 안 드는 살림꾼을 뜻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중에서)
소설 속 어느 시골의 본당 신부(神父)가 그냥 매일 쓰는 일기다. 도입부를 조금 지나고 있다. 부임한 마을이 가난하다 보니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자란 신부입장에서 그렇다고 가톨릭 중앙 총무처에서 주는 경제적 지원이 충분치 않아 자신의 직책을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고뇌와 마을 신자들과의 갈등이 일기의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신부 스스로도 일기를 쓰는 목적이 일기를 매일 작성함으로서 자신의 고민들로부터 고통을 덜기 위함이라고 쓰고 있다.
현존(現存)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자신이 믿고 섬기는 절대자의 현존이 일기를 쓰는 중에 느껴지는 대신 다른 현존(자신의 절대자와는 엄연하게 다르다고 느끼는)이 나타나 자신의 고뇌와 고민, 어려움들을 지켜보는 것 같다고 작품 속에서 밝히는 장면이 나온다. 앞으로 차츰 이런 부분에서 치열한 작가 정신이 드러나리라 기대하며, 그래서 골랐던 책이고, 충분히 부응하리라 여겨진다.
지나온 내용 중에는 작가의 실수를 각주를 써서 옮긴이가 밝힌 부분도 있다. 나중에 자세히 알게 되리라 생각해서 각주만 확인하듯 읽어보고는 넘어간다. ‘어린 두 남자애’라는 부분에서 별표(*) 표시가 있었던 것인데, 아마도 결과적으로 둘이 여자애거나, 하나는 남자애고 하나는 여자애 등의 애초 구성을 쉬이 망각한 채 작문 당시의 분위기에 몰입한 채 글을 써나가다 보니 이런 실수가 벌어졌으리라 여겨진다.
이런 정도는 실수축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직 어떤 식이든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줄거리에 방금 전의 실수라고 지적된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일기라는 형식이라 하루하루가 작중 신부가 생각하는(조그만 마을의 본당 신부로서의 임무를 수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서서히 나타나는 고뇌와 갈등) 같은 방향이되 조금씩 다른 내용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보다도 서두에 소개한 글귀처럼 소설을 읽는 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작품의 향방을 가르는 줄거리에 서두에 소개한 글귀가 관여할 수도, 안 할 수도 있겠는데(그건 더 읽어봐야 확실하게 알 듯), 생전에 튼튼한 부친을 둔 자식은, 그것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의미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생각해 볼 여지가 되는 신선한 자극이 되고, 이런 말이 비록 소설 속에서 등장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의미로 통용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흥미로운 시간이 된다는 사실이다.
3
하루를 뚫어주는 세 가지 통로
-대표제는 다수의 의지로부터 떨어져서 대표자가 독자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을 허용한다. 나아가 스스로 의지를 드러낼 수 없는 것을 대표해서 행동하는 것도 대표제에서는 가능하다. 그런 차원의 대표제가 적용될 수 있는 사례로 이 책은 환경·생태 문제와 미래 세대 문제를 든다. 지구를 대표해 온난화 문제를 제기하고 싸우는 것,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대표해 보호를 요구하는 것이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대표제의 길, 민주주의의 길 : 「대표」 - 모니카 브리투 비에이라·데이비드 런시먼>중에서)
-슈미트는 정치적 낭만주의의 치명적인 취약점으로 ‘수동성’을 찾아낸다. 낭만주의는 스스로 일관성 있는 이념을 제시해 세상을 적극적으로 바꿔 나가는 내적인 힘이 없어, 그때그때 위세를 떨치는 정치 세력에 들러붙는다. 낭만주의자는 상상 속에서는 세계를 창조하는 절대자가 되지만, 현실에서는 더 큰 힘에 무릎 꿇고 그 힘에 봉사하는 무력한 자로 드러난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낭만주의와 정치의 잘못된 만남 : 「정치적 낭만주의」 - 카를 슈미트>중에서)
-‘좋은 정신은 건조하다’가 낮의 모토라면, ‘잘 숨어서 산 인생이 잘산 인생이다’가 밤의 모토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건조한 정신으로 이론을 생산하는 작업에 모든 것을 바친 것이 자기의 삶이라는 얘기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건조한 정신과 시적 상상력 : 「아르키메데스와 우리」 - 니클라스 루만>중에서)
4
롯폰기 힐즈의 의미
-하나의 복합 개발이 동네와 도시와 국가까지 살릴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
-뉴욕의 록펠러 센터가 20세기 도시개발의 상징이라면, 도쿄의 롯폰기 힐즈는 21세기 도시개발의 상징이다.
-사업성과 지역 활성화라는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사례
-도쿄라는 ‘도시의 진화’에 가장 크게 기여
(박희윤, 《도쿄를 바꾼 빌딩들》, <20년간 8억 명이 찾은 일본 도시개발의 상징 : 롯폰기 힐즈>중에서)
그 성공 이유로 다음의 네 가지를 들었다.
1)’세계 수준의 문화 도심’이라는 명확한 목표(Vision)와 컨셉(Concept)을 세우고 1980년대부터 추진해왔다.
2)‘모리 미술관’을 문화 도심에 건설함으로서 문화시설과 함께 하는 풍요로운 삶을 보여준다.
3)다양성과 의외성을 지닌 동네 본연의 모습을 살린 ‘걷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4)글로벌 기업을 유치함으로서 가능성을 실제 성공으로 연결한다.
위와 같이 ‘가능성’을 ‘실제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처음부터 치밀한 기획과 실행을 이어갔는데, 그 중에는 전용률을 높이기 위한 설계 단계에서 디벨로퍼와 설계자 사이에 벌어진 치밀한 노력의 하나로 ‘슈퍼 더블데크 엘리베이터’ 개발과 일부 고객을 위한 ‘전용 로비공간 확보’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롯폰기 힐즈는 외부에서 연간 4000만(일간 10만)이 다녀가는 일본의 핫한 플레이스로 등극하며, 자연스럽고 다양한 만남이 이루어지며 일에서도 삶에서도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는 명소로 부상했다.
어떤 동네, 어떤 사람이 살면서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라이프(Life) 스타일(Style)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하는 것이 진정성 있게 접근하는 디벨로퍼(Developer) 본연의 자세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5
호기심(好奇心)
일요일은 하루 종일 무더운데다 날씨가 흐렸다, 맑았다, 소나기가 갑자기 내리는 등의 변덕으로 집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는 반짝 생기 있는 표정과 눈빛으로 일어나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뭘 하기가 귀찮아지고 무기력해져 가는 것이 요즘의 일상사다.
일상이 이렇다면 우리의 긴 생(生) 또한 그런 걸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 모든 것이 회색빛으로 물들여져 가는 것처럼 물러터지고 아래로 아래로만 자꾸 처지는 것이다.
책은 펼칠 때마다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저마다 다른 개성적이고도 특별한 삶을 살았거나, 살아가는 사람들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자기가 몸담은 세계를 알 수 없다고들 한다. 저마다 개인은 모든 걸 잘 안다는 듯이 뽐내고 교만을 부리지만 말이다.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호기심이다. 인간 사회와 자연, 그리고 우주와 같은 주변 세계에 대해 부단히 관심을 가지게 하고, 일상시간 속에 조그만 틈이라도 생기면 책으로 허겁지겁 시선을 돌리게 하는 힘은. 그런 호기심은 어릴 적부터 시작해서 지금껏 좀체 사그라들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강력한 동력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