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감상하며 마음을 챙기다2
글/스텔라박
백치미와 관능미의 극치
남자들은 여인의 어떤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여길까. 목욕하는 나부, 춤추는 댄서,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상.. 화가들은 평범한 여인들의 모습에서 예술혼을 일깨우는 뮤즈, 여신의 표정을 읽어낸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스페인 생)의 ‘책 읽는 여인’(Woman with a Book)’에서 엿볼 수 있는 여인의 아름다움은 그 소재가 상징하는 지성미라기보다는 백치미와 관능미로 요약될 수 있다.
그가 51세 때인 1932년도의 이 작품은 가로 38.5인치, 세로 51.38인치 크기의 캔버스에 오일로 그려졌다.
물결치는 여인의 곡선, 황홀할 정도로 밝은 색채, 굵고 대담한 아웃라인과 함께 모델이 입고 있는 옷의 꽃무늬까지 대가가 정성을 다해 캔버스 구석구석을 장식한 노력의 흔적은 여러 곳에서 읽혀진다. 여러 컬렉터들의 손을 거쳤던 이 작품은 현재 패사디나의 노턴 사이먼 뮤지엄(Norton Simon Museum)의 ‘20세기 초 작품 전시실’에 걸려 관람객들을 반기고 있다.
부드러운 곡선을 찾게해 준 마리 테레제 월터
백발의 할아버지가 돼서도 피카소의 여성 편력은 시들 줄을 몰랐다. 피카소가 나이 예순이 넘어 만났던 프랑소와즈 길롯은 그가 절대 몰래 바람피울 만한 위인은 못된다고 얘기한다. 그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여인들은 항상 그의 화폭을 장식하고 있었으니까.
작품의 주인공이 되었던 여러 여인들 가운데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색채로 수놓아진 오브제는 마리 테레제 월터(Marie-Therese Walter)다.
17세 때 처음 피카소를 만난 마리 테레제는 피카소가 자신이 실린 잡지를 보여주며 내가 이렇게 유명한 화가라는 것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피카소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그저 순진무구한 처녀였다. 나이 어린 정부의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모습에서 그는 비로소 화려한 색채와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을 찾는다.
다른 여인들과 열애에 빠져있을 때도 마리 테레제는 매일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고 피카소 역시 비록 딴 살림을 차렸을 지라도 일주일에 두 번은 어김없이 그녀를 찾아갈 만큼 그들의 관계는 눈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를 넘어선 운명의 실로 엮여져 있었다.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신앙과 같았다. 무릎에 눕혀 귓밥을 파주기도 하고 발톱까지 정리해 줄 만큼 그녀는 그에 대해 극진한 정성을 다했다.
1932년 초 피카소는 대형 캔버스에 다양한 여인의 이미지들을 그렸다. 잠깐 읽고 있던 책에서 눈을 떼고 아무 생각 없이 막 낮잠을 청하려는 마리 테레제의 모습이 쉰을 넘긴 피카소의 눈에 얼마나 어여쁘게 보였을까.
배경을 이루고 있는 보라 빛과 마리 테레제의 푸른빛 의상은 강렬한 주황 빨강색의 의자와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오른쪽 상단 거울에 비친 영상은 그림 속의 또 다른 그림. 아! 그러고 보니 이와 유사한 그림이 있었던 것 같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돼 있는 앙그르(Ingres)의 그림 ‘마담 뫄테시에 초상화’(Portrait of Madame Moitessier)는 우아하고 감각적인 곡선의 포즈, 그리고 앉아 있는 이의 이미지가 거울에 투영된 구도 등 여러 면에 있어 피카소의 ‘책 읽는 여인’과 유사성을 보인다.
피카소의 ‘책 읽는 여인’을 소장하고 있는 노턴 사이먼 뮤지엄(Norton Simon Museum)의 주소는 411 W. Colorado Blvd. Pasadena, CA 91105. 전화 (626) 449-6840.
<소제목>
마티스의 ‘탬버린을 든 오달리스크’
<소제목 아래 인용>
“내게는 정물화도 풍경화도 인간의 모습만큼 관심을 일으키진 않는다.”
-앙리 마티스
앙리 마티스(1869~1954)의 1926년 작품, 탬버린을 든 오달리스크(Odalisque with Tambourine)는 가로 36.25인치, 세로 25.625인치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진 유화로 패사디나의 노턴 사이먼 뮤지엄(Norton Simon)에 소장돼 있다.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앙리 마티스는 동시대의 다른 어떤 화가보다 뛰어난 색채 감각을 지녔다. 북프랑스의 르 카토에서 태어난 그는 법률학교를 나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했지만 20세 이후 파리 에꼴 데 보자르에서 스승 귀스타브 모로를 만나 화가로 전향한다.
강렬한 색채•개성적 표현에 생명력 느껴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원색, 개성적 표현이 꿈틀대는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이슬람교와 비잔틴 예술 역시 그의 화려하고 독창적인 화풍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자주 여행을 떠났던 모로코의 강렬한 태양과 원색의 꽃들에 대한 감동도 자주 작품에 나타난다.
오달리스크는 술탄의 여자를 시중드는 궁녀, 또는 그 거처인 하렘의 정부를 뜻하던 터키어 오달리크가 프랑스로 옮겨지면서 오달리스크(Odalisque)로 오용된 것이다. 프랑스가 근동 지방으로 세력을 뻗어나가던 19세기, 동양에 관심을 둔 오리엔탈리즘 화가들에게 있어 금기의 장소인 하렘의 오달리스크는 관능미 넘치는 이국적 뮤즈였다.
예술혼 지핀 불멸의 연인
서양 회화와 근대 나체화의 주요 주제였던 오달리스크를 회화에 있어 불후의 테마로 만든 화가는 앙그르.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앙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1819년 살롱 전에 출품됐을 때 신고전주의 지지 평론가들이 인체 묘사를 왜곡했다며 혹독한 평가를 했던 작품이다. 길게 늘어진 척추와 좁은 어깨, 커다란 골반과 작은 발의 여인은 기형적인 만큼 관능적인 여성미가 넘쳤다.
프랑스 회화에 있어 오달리스크는 중요한 오브제로 자리 잡아 앙그르와 들라크롸, 르느와르 등 수많은 화가가 반복해 그렸는가 하면 1920년대 이후 마티스의 작품에서는 가장 중요한 테마로 등장하기도 했다.
초로의 화가 가슴에 불을 지른 오달리스크
프랑스 남부 니스 지방에 머물던 1926년, 이제 타오르는 열정의 거친 불꽃이 잔잔히 가라앉은 57세, 초로의 화가는 젖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관능적인 오달리스크를 그린다. 8년 전인 1918년 그렸던 ‘검은 숄-로레트’(The Black Shawl-Lorette VII)보다 색채는 더욱 화려해졌다.
온 몸이 훤히 비치는 의상 아래로 드러나는 그녀의 하얀 피부,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는 여성의 눈에도 매혹적이다.
주렁주렁 매단 목걸이와 겹겹으로 한 팔찌는 오달리스크들이 얼마나 욕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 온 몸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철저히 자기 관리를 했는지 알게 한다. 그녀들은 여신과 성모, 귀족 부인의 뒤를 이어 화가들의 예술혼에 불을 지핀 불멸의 연인들이다.
곡선을 그리며 춤을 추는 댄서의 유연한 팔놀림을 보고 있으면 꾸밈음이 화려한 아라베스크가 귓전에 울려 퍼지는 것 같다. 파란 배경에 그려진 빨간 패턴은 그녀가 춤추는 음악을 색채로 표현한 것처럼 율동감 있게 움직인다. 파랑 빨강의 모자이크 벽면과 대비를 이루는 핑크빛의 조화가 강렬하며 아름답다.
오달리스크의 오른쪽 발아래 물체는 터키 식 물 담배 파이프, 후카가 아닐까. 그녀 앞에서 폭신한 쿠션에 몸을 기대고 춤을 감상하는 술탄의 얼굴엔 나른한 만족의 미소가 퍼졌을 것 같다.
‘탬버린을 든 오달리스크’를 소장하고 있는 노턴 사이먼 뮤지엄(Norton Simon Museum)의 주소는 411 W. Colorado Bl. Pasadena, CA 91105. 전화 (626)449-6840.
힌두교와 불교 미술 소장도 미국 내 최대 규모인 노턴 사이먼 뮤지엄의 영구 소장품을 돌아보고 있으면 삶의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해답이 주어질지도. 수련이 둥둥 떠 있는 정원도 꼭 들려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