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불교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주본 80권 중 권 제29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길게 이어붙여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전체 크기는 세로 28.5㎝, 가로 891㎝이다.
초조대장경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목판의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해인사대장경과 글자수가 다르고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으로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 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 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이 책도 장수를 ‘장(丈)’자로 표시하고 있는 점, 간행기록이 없는 점, 글자수가 23행 14자인 점, ‘경(竟)’자에 한 획이 빠진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초조대장경 판본임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 발견된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 중 유일한 권29로, 11세기경에 찍어낸 초조대장경의 원형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당(唐)나라 즉천무후(則天武后)의 증성원년(證聖元年)(659)에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보양유지(菩揚流支)등과 더불어 대편공사(大遍空寺)에서 새로운 화엄경(華嚴經)의 범본(梵本)에 의거 신역(新譯)에 착수, 5년(年)걸려 성역(聖曆)2년(年)에 필역선사(畢譯繕寫)한 것이다. 동보(東普)의 구역<舊譯)( 보본 육십화엄) ((普本 六十華嚴))에서 누락된 것을 증역(增譯), 80권(卷)이 되어 「팔십화엄(八十華嚴)」이라 일컫는다. 또한 즉천무후(則天武后)의 대주(大周)때 신역(新譯)되어 「 주본화엄(周本華嚴)」 또는 「신역주경(新譯周經)」이라 일컫기도 한다.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에 수록된 주본화엄경(周本華嚴經)과 비교하면 1) 본문(本文)의 벽휘결획(벽諱缺劃)에서 초조판(初雕板)은 경(竟) (송태조의 조명겸벽자(宋太祖의 祖名兼벽字))이 11회(回) 나오는 것중 6회(回) 결획(缺劃)되어 있으나, 재조판(再雕板)은 그것이 모두 바로 잡혀지고 있다. 2) 권말(卷末)의 음의(音義)가 초조판(初雕板)에 없으나, 재조판(再雕板)에는 수록되어 있다. 3) 판식(版式)에서 초조판(初雕板)은 매장(每丈) 23행(行)(단, 첫장 22행)14자(字)이나, 재조판(再雕板)은 24행17자로서 글자가 작고 가늘어서 빽빽하다. 이것은 국내전본(國內傳本)에 의했기 때문이다. 4) 판제(板題) · 권차함차(卷丈函次)가 초조판(初雕板)은 도려내고 점련(粘連)하여 나타나지 않았으나 다른 경(經)을 보면 대체로 본문(本文) 앞의 여백에 새겨지고 그중 장차(丈次)에는 주로 "장(丈)"의 글자가 쓰여지고 있다. 재조판(再雕板)도 본문(本文)앞 여백에 표시되고 있으나 그 형식(形式)은 「주경제이십구 제팔폭 평 유(周經第二十九 第八幅 平 油)」과 같이 되어 있고 「장(丈)」대신 「폭(幅)」의 글자가 쓰여지고 있다. 5) 간기(刊記)가 초조판(初雕板)에는 생략(省略)되고 있으나 재조판(再雕板)에는 권미제(卷尾題) 다음에 「갑신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와 같이 표시된 차이가 있다.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의 주본화엄경(周本華嚴經)은 총 80권중 11권이 국내(國內)에서 발견되었으며 제29권(第29卷)은 이것이 유일본(唯一本)이다. 각자(刻字)가 정교(精巧)하고 글자의 묵색(墨色)이 시커멓게 윤(潤)이 나며 지질(紙質)이 자못 고박(古樸)한 11세기(世紀) 인출(印出)의 정각본(精刻本)인 바 초조판(初雕板)의 원형(原形)을 그대로 살필 수 있는 귀중(貴重)한 자료(資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