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무너져야할 여리고성(수6:8-11)
2019.9.29 김상수목사(안흥교회)
과거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앞길을 인도하실 때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승리를 주신 것을 많이 본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리고성 함락에 대한 과정도 그 중의 하나다. 그렇기에 우리들이 내 생각에 어려워 보인다고 해서 하나님도 못하실 것처럼 미리부터 단정 지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늘 주님을 믿고, 주님께 맡기고, 그분 뒤만 따라가면 된다.
여리고성은 고대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낙공불락의 성들 중의 하나였다. 1930부터 36년까지 여리고성을 발굴했던 유명한 영국의 고고학자 존 가스탕(John Garstang)에 의하면 일반적으로는 적군이 공성퇴로 공격할 경우에 성벽이 안쪽으로 무너지는 것이 상식인데, 여리고성은 성벽이 바깥쪽으로 무너져 있었으며, 심한 화재로 인한 흔적들이 많은 것을 발견했다. 가스탕은 말하기를 ‘이것은 여리성이 사람의 공격보다는 하나님의 역사로 무너졌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성경 여호수아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리고성 함락을 위해 명령하신 방법은 간단했다. 6일 동안 매일 한 바퀴씩 성을 돌고, 7일째는 7바퀴를 돈 후에, 여호수아가 “외치라”라고 말하면, 다같이 외치는 것이다. 성을 돌때는 일곱 나팔을 가진 제사장들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앞장서고, 나머지 군사와 백성들은 그 뒤를 따른다. 물론 맨 앞에 무장한 군인들이 서기는 하지만 이는 보호차원일 뿐이다. 이처럼 나팔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뒤따르도록 지시하신 것은 곧 하나님께서 이 전쟁의 주인이시며, 하나님이 앞서 행하신다는 의미가 있다. 백성들은 단지 아무 말도하지 않고 조용히 제사장들의 뒤를 따라가면 된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수6:10)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여리고성을 돌 때, 아무 소리도 안 난 것이 아니고, 제사장들이 부는 나팔 소리는 들렸다. 다시 말하면 제사장들이 ‘뿌우~ 뿌우~’하며 부는 나팔 소리를 들으면서 돈 것이다.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수 6:9)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행진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진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니라”(수 6:13)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성을 돌 때, 나팔 소리만 나게 하고, 사람들의 소리는 일체 나지 못하게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신 이유를 함께 나누고, 그것을 나의 생활 속에 적용하게 하는 것이 이 시간 설교의 초점이다. 제사장들이 앞에서 부는 나팔 소리만 들으면서 성을 돌게 하신 이유는 우리들이(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이 되어서, 그들과 함께 걸으면서, 생각해 본다면 좀 더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도 나팔소리를 들으면서 ‘왜 하나님이 자기들에게는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고 하셨을까’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리고성을 돌면서 그동안 하나님께서 출애굽에서부터 요단을 건너게 하시기까지 그들에게 베푸셨던 하나님에 대해 깊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성품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 등……. 또한 동시에 그들의 부모들이 지금까지 수없이 사람의 음성을 앞세우면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툭하면 불평, 불만, 불신하며 하나님을 멸시하다가 광야에서 38년 동안이나 방황했던 일들도 회상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문득 섬광처럼 “아하! 진짜 무너져야 할 것은 지금 눈에 보이는 여리고성 이전에 내 마음 속에 있는 여리고성들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것이 이 시간 한 분 한 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우리 앞에 있는 어려운 환경이나 상황의 여리고성들이 무너지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상황의 여리고성이나 다른 사람 안에 있는 견고한 여리고성은 무너지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내 안에 있는 더 견고한 여리고성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하나님 앞에서 내 속에서(또는 우리들 안에서) 무너져야할 견고한 여리고성은 무엇이 있는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의 가치관의 여리고성이 있다.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의심하고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기를 방해하는 불신과 태만의 여리고성도 있고, 불의를 기뻐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비겁함의 여리고성도 우리 안에는 숨어 있다. 몇 일전 장로교 총회에서 명성교회 편법적인 세습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준 것도 그런 것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런가하면 탐욕과 욕심의 여리고성도 있다. 지금 여야 정치인들이 서로를 물고 뜯으면서 정의로운 척들을 하지만 사실은 그들 속에는 포기되지 않은 욕심의 용암이 꿈틀댄다. 용서하지 못하게 만드는 미움과 자존심의 여리고성도 있고,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터져 나오는 혈기와 상처의 여리고성, 나를 공격하는 죄와 사단의 강력한 공격도 있다. 내 안에 이런 것들을 먼저 무너뜨려야 한다. 그래야 진짜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여리고성도 무너질 수 있다.
그렇기에 자세히 보면 나팔 소리를 들으면서 여리고성을 도는 시간은 적군과의 전투이기 이전에 사실은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나 자신과의 내적인 전투시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의 내적인 준비가 되면, 하나님께서 “외치라!” 하는 때가 반드시 온다.
그러므로 내 소리는 죽이고,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내 안에 성벽들을 무너뜨리는 시간이 우리들에게는 필요하다.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 앞에서 철저히 나를 부인할 때,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내 속에 있는 견고한 여리고 성벽들을 하나씩 무너뜨려 나가신다. 이 시간이 우리의 영혼을 살린다.
예수님도 날마다 이런 시간을 가지셨다. 예수님은 사역을 하시기 전에 늘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이 예수님에게는 철저히 자신을 내려놓는 시간이기도 했고 또한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이 받는 시간이기도 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진짜 먼저 무너져야할 것은 눈에 보이는 문제의 여리고성들 이전에 내 안에 숨어있는 여리고성들이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다보면 수없이 많은 견고한 여리고성들을 만난다. 어쩌면 아마 지금 이 설교말씀을 듣거나,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실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그래서 나를 좌절하게 만드는 여리고성들을 내 힘으로 무너뜨리려고 하지 말고(다 무너뜨릴 수도 없지만), 주님께서 무너지게 해주기를 간구해야 한다. 다만 우리는 겸손하게 십자가 앞에 나의 연약함과 못된 성품과 문제의 짐들을 다 내려놓고, 매일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만 따라가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내면을 정리해 나가신다. 이것이 내 안의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