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판 제목 <불가능한 작별'(Impossibles adieux)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
작가의 말.
그 말처럼 곳곳에서 연약하고 소중한
생명들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책.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이 남긴 아픔과 트라우마,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지,
어떻게 당사자의 것만이 아닌
그 사회의 아픔이 되는지를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역사적 상처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 시간)
한강을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한강은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며,
작품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며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갖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ㅡ 스웨덴 한림원 ㅡ
“저에게 생명이 있으니까, 살아 있으니까
생명의 힘으로 그렇게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생명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 그때 실감했다.
저 살과 장기와 뼈와 목숨 들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고 끊어져버릴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15쪽)
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17쪽)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언젠가 고통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흔적들을 손쉽게 여읠 수 있을 거라고,
어떻게 나는 그토록 순진하게-뻔뻔스럽게-
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23쪽)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목적을 가진다고,
애써 노력하는 모든 일들이 낱낱이 실패한다 해도
의미만은 남을 거라고 믿게 하는 침착한 힘이
그녀의 말씨와 몸짓에 배어 있었다. (44쪽)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 (44~45쪽)
이상하지, 눈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인선이 말했다.
어떻게 하늘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 (55쪽)
총에 맞고, /
몽둥이에 맞고, /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
얼마나 아팠을까? /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57쪽)
만 열일곱 살 아이가,
얼마나 자신이 밉고 세상이 싫었으면 저렇게
조그만 사람을 미워했을까?
실톱을 깔고 잔다고.
악몽을 꾸며 이를 갈고 눈물을 흘린다고.
음성이 작고 어깨가 공처럼 굽었다고. (82쪽)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 (87쪽)
인내와 체념, 슬픔과 불완전한 화해,
강인함과 쓸쓸함은 때로 비슷해 보인다.
어떤 사람의 얼굴과 몸짓에서 그 감정들을
구별하는 건 어렵다고, 어쩌면 당사자도
그것들을 정확히 분리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105쪽)
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이 물방울만큼.
새처럼 가볍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가 있다. (109쪽)
이상하다,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 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전까지 내가 닿아보았던 어떤 생명체도
그들만큼 가볍지 않았다. (109쪽)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134쪽)
모른다, 새들이 어떻게 잠들고 죽는지.
남은 빛이 사라질 때 목숨도 함께 끊어지는지.
전류 같은 생명이 새벽까지 남아 흐르기도 하는지. (135쪽)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이 결정이 된다.
아무것도 더이상 아프지 않다.
정교한 형상을 펼친 눈송이들 같은
수백 수천의 순간들이 동시에 반짝인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모든 고통과 기쁨,
사무치는 슬픔과 사랑이 서로에게 섞이지 않은 채 고스란히,
동시에 거대한 성운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빛나고 있다. (137~138쪽)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섬세한 조직을 가진 건 어디에도 없다.
이렇게 차갑고 가벼운 것은.
녹아 자신을 잃는 순간까지 부드러운 것은. (186쪽)
잊지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부드러움을 잊지 않겠다. (186쪽)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인선의 목소리가 그 열기 사이로 번졌다.
정말 헤어진 건 아니야, 아직은. (197쪽)
꿈이란 건 무서운 거야.
소리를 낮춰 나는 말한다.
아니, 수치스러운 거야.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폭로하니까. (237쪽)
하지만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런 지옥에서 살아난 뒤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291쪽)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311쪽)
하지만 죽음이 이렇게 생생할 수 있나.
뺨에 닿은 눈이 이토록 차갑게 스밀 수 있나.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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