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그가 고국을 떠나기 한 해 전인 1917년에 작곡되었다.
그는 1915년부터 작곡에 착수했지만, 도중에 오페라 〈바보〉 작업에 매진하면서 2년이 지난 뒤에야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작품이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을 때 급기야 러시아는 공산주의 혁명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지만, 이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음악에 매달렸다.
청년 프로코피예프의 대담한 실험과 혁신적인 시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는 이 작품은, 그가 졸업한 상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바이올린 교수 파울 호찬스키 (Paul Kochansky)에게서 많은 조언을 받았다.
원래는 작품이 완성된 1917년에 초연되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10월 혁명의 발발로 무산되었다.
이후로도 이 작품이 요구하는 고난도의 기교를 소화해 낼 바이올리니스트를 찾지 못해 6년이 지난 1923년이 되어서야 파리에서 초연될 수 있었다.
초연은 마르셀 다리외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쿠세비츠키(Sergey Koussevitzky)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초연에 대한 반응은 냉담했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이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면서 ‘리리시즘의 과다’라고 혹평했다.
사실 이 작품은 청년기의 프로코피예프의 작품 치고는 실험적인 측면보다 고전적이고 서정적인 측면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듬해 프라하 국제현대음악제에서 오제프 시게티가 이 곡을 연주한 뒤 이 냉담한 혹평들은 눈 녹듯 사라지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시게티는 이 작품에 매료되어 자신의 독주회에서 즐겨 연주하였고, 프로코피예프는 시게티의 지지에 감동하면서 ‘최고의 연주자’라고 칭송했다. 두 사람은 이 작품을 통해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1953년 3월, 일본 순회연주 중이던 시게티는 프로코피예프의 서거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젖었고, 동경 리사이틀에서 프로코피예프를 애도하는 의미로 이 작품의 2악장을 연주하기도 했다.
1악장 안단티노
비올라의 트레몰로에 이어 독주 바이올린이 꿈꾸는 듯한 서정적인 선율을 연주한다. 뒤이어 클라리넷과 플루트가 주제를 반복하고, 저음부 현과 바순의 반주 위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반음계적인 2주제를 제시한다. 이 그로테스크한 2주제에 대해 프로코피예프는 바이올리니스트 오이스트라흐에게 설득하듯이 연주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발전부에서는 독주 바이올린이 토카타 풍으로 주제선율들을 전개하고 다채로운 변주가 이어진 뒤 웅장하면서도 야성미 넘치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다시금 비올라의 트레몰로로 도입되는 재현부에서는 1주제만을 제시한다. 플루트가 연주하는 1주제와 하프의 아르페지오가 아련한 여운을 남기며 악장을 마무리한다.
2악장 스케르초, 매우 빠르게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신랄한 유머를 담고 있는 2악장은 제1바이올린과 비올라, 플루트의 경쾌한 스타카토로 시작된다. 이 때 제2바이올린은 피치카토를 지속하고 하프의 몽환적인 울림도 가세하여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독주 바이올린은 아르코와 피치카토를 번갈아 제시하는 독특한 선율을 변주하고, 고난도의 현란한 기교를 선보이면서 최고음을 향해 가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절정에 다다른 독주 바이올린은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으며 아름답고 우아한 선율로 악장을 마무리한다.
3악장 모데라토-알레그로 모데라토
1악장의 주제선율을 자유롭게 변주하는 환상곡 풍의 악장으로, 현악성부와 클라리넷이 화음을 연주하는 가운데 바순의 스타카토로 시작된다. 뒤이어 독주 바이올린이 1악장의 1주제를 서정적으로 연주하고, 템포가 빨라지면서 비올라가 2주제를 연주한다. 이를 제2바이올린이 받아서 반복하고, 두 개의 주제선율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발전부를 이어간다. 재현부를 거쳐 코다에서는 다시금 독주 바이올린이 1악장의 1주제를 연주하고 목관 성부가 주요 모티브들을 몽환적으로 제시한 뒤, 꿈꾸는 듯한 ‘리리시즘’의 극치를 보여주면서 고요하게 마무리된다.
violin : Hilary Hahn,
연 주 : RTVE Symphony Orchestra ( Radio and TelevisionSymphonyOrchestra, SPA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