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 맘 땐가 저 맘 땐가 이 권우선생님의 메일을 받았다. 젊은 작가의 참신한 프로젝트에 투자해보자는 내용이었다. 프로젝트명은 <성북동 일기>. 이 프로젝트를 만든 분은 마민지양.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석사과정에 있는 분이다. 이 프로젝트는 2012년 12월 27일부터 2013년 06월04일까지 현장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후 편집과 검토과정을 거쳐 한 권의 현장일지와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상물이 만들어 졌다. 이 결과물들은 후원자들에게 전해 졌다. 그 중 한 사람이 나였다.
성북동하면 그 유명한 법정스님의 길상사가 있고 삼청각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 근대 수필를 대표하는 상허 이태준의 생가가 있다. 그런데 작가가 탐사하고자 한 지역은 그 곳이 아니라 북정마을이라고 하는 달동네다. 우리가 아는 성북동은 부자동네. 북정마을과 도로를 경계로 건너편에 맞이하고 있다. 북정마을 사람들은 그 동네를 도둑촌이라고 한다. 북정마을은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고 지역 토박이들은 이를 반대하고 있단다. 작가는 머지 않은 미래에 사라질 운명에 처해져 있는 성북동 북정마을을 공간적으로 탐사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려고 한다. 이러한 시도를 도시공간문화연구라 하고, 방법은 관찰자가 직접 참여하는 것으로 한다.(참여관찰방법) 작가는 매주 북정마을을 찾아간다. 처음에는 지도교수와 함께,나중에는 혼자서 간다. 북정마을의 관문인 난롯가.이발소옆에 있는 북정카페,경로당등을 포스트로 해서 주민들을 만나고 친해진다. 그들에게 북정마을의 역사를 듣고 골목과 정자,성곽,우물터를 돌며 그 흔적을 기록해 나간다.
작가는 스스로 초보 연구자임을 인정하고 이 프로젝트를 왜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그리고 어떻게 문제의식을 형상화시킬 것인지 되묻는다. 이러한 모습을 '자기성찰적 반성과정'이라 한다. 이 프로젝트는 어떤 프로토콜이 있어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gentrification(빈민가의 부촌화) 과정에 들어 서고 결국 세월 속에 사라질 공간과 사람에 대한 기록이라는 당위만 있을 뿐이다. 구체는 현장 속에서 만들어 졌다. 그 과정을 작가는 현장일지에 고스란히 적어 놨다. 현장일지를 보면 디데일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고 듣고 느낀 점이 시간 순서에 따라 동선에 맞춰 자세하게 적어져 있다. 작가의 지구력과 집중력이 돋보인다. 앞으로 이 방면으로 길을 걸을 학동들에게 좋은 교범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현장일지를 읽지 않고 다큐 영상물을 먼저 봤다. 영상은 북정마을의 전경을 보여주고 시인 김광석이 이야기한 성북동의 모습이 남아 있는지, 이 곳에서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성북동의 모습을 한 주민의 안내와 동선을 따라 영상에 담는다. 그런데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등장인물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자막처리가 되면 좀 났겠다 싶었다. 그리고 앵글이 자주 흔들려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폐가를 보여 주고 빈집의 물건을 촬영한다. 만해가 거처했던 심우장을 찾아 가고 성곽에서 노는 아이들을 앵글에 담는다. 텃밭을 가꾸는 주민을 보여 주고 철조망과 구청에서 부쳐논 철거안내문과 땅바닥에 누워있는 군사시설보호구역 팻말을 보여준다. 길상사를 찾아 가고 마을축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만해동상앞에 영상의 주인공인 홍아저씨의 모습을 찍어 준다.그리고 그림작업한 인서트화면이 나온다. 그간 작가가 만난 북정마을의 인물,장소,건물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서히 그림 하나하나가 사라지고 마지막 남은 것은 홍아저씨 캐리커쳐. 다큐 영상은 이렇게 끝난다. 처음에 느낌은 "좀~뭐야~"였다. 어디서 본 듯한 느낌. 색다름이 있었나? 뭘 말하려는 거지? 아저씨 한 분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동선을 따라 가며 북정마을의 풍경을 보여주려 한 건가?
이 프로젝트의 특색은 작가가 성북동을 방문할 때 마다 매번 현장일지를 작성하여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생생하게. 읽어 보기로 했다. 글 속에는 영상에서 담을 수 없는 많은 정보와 사람,사건,고민이 들어 있다. 일지도 동영상과 같아서 날짜가 지날수록 사건과 사태가 다양하게 변화,진전된다. 영상과 달리 일지에는 성북동 주민들이 많이 소개되고 그 속 사정들도 넓게 펼쳐진다. 사진작가 K아저씨,살아있는 복정마을 역사책 강선생님,음식 솜씨 좋은 넙죽이 이모,항상 소금을 안주로 해서 막걸리를 드시고 작가의 관상을 보아준 할아버지,그리고 점심을 마냥 사 달래서 작가를 속상하게 한 현언니, 동네가 삶의 울타리면서 은따의 공간인 홍아저씨등등.
무엇보다 현장일지에는 작가의 솔직한 감정과 고민이 담겨 있다. gentrification의 문제를 담고자 했던 초기의 생각과 주민과의 라뽀를 형성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과정, 그리고 프로젝트에서 많은 것을 담아 내려는 욕심 때문에 정리가 안되고 전망이 안 서 헤매는 모습, 또한 그러한 문제를 고민과 대화,논의를 통해 정리해가는 모습이 디테일하게 쓰여져 있다.
일지를 읽고 나서 다시 영상을 보았다. 그제서야 영상의 의미가 다가왔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 나래이션도 무게감있게 다가왔다. 영상의 앞뒤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편집된 것도 눈에 보이게 되었다. 홍아저씨가 우물터를 보여주며 시멘트로 복개된 계곡의 자취를 설명하면서 나온 나래이션."홍아저씨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인다."가 있다. 이 말은 영상 후반부 만해동상에서 홍아저씨를 찍어주면서 또다시 반복된다. 작가가 동영상 화면을 나오지 않게 하면서 말한다. "이젠 나에게도 아저씨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라고. 또한 영상 초반에 군사시설 보호구역 팻말이 땅바닥에 누워 있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그 팻말이 땅 속에 더 파묻히고 글씨도 희미해진 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기법의 의도는 명확하다. '공간은 기억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것.
현장일지에서는 강선생님과 K 아저씨,현언니가 비중있게 다루어 진다. 그러나 영상에서는 홍아저씨가 주인공이다. 왜 그랬을까? 아마 집중때문일거다. 한 사람의 동선을 따라 북정마을을 담아 내는 것이 간결함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상만 본 시청자라면 이 기법이 어디서 본 듯한 식상함을 느꼈을 것 같다. 대부분의 다큐물이 이러한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지를 읽고 보면 식상하지 않다. 작가가 홍아저씨를 난롯가에서 반갑게 만나면서 어제 왜 안 보이셨냐고 인삿말을 건넨다. 아저씨는 혜화동에 갔었다고 한다. 아저씨는 동생네가 살고 있는 혜화동에 갔다 온 것이다. 성곽 밑에서 놀고 있는 남매는 그냥 노는 아이를 찍은 것이 아니라 주민자치공부방(?)에서 만난 호와 그의 누이다. 이렇듯 삶의 구체성을 일지를 통해 알게 되면 영상이 풍부하고 애뜻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다큐영상은 일지와 함께 볼 때 몰입이 잘 된다. 감동도 더 크다. 또한 작가의 고생과 고민도 이해된다. 한마디로 공감이 된다.
또한 독자의 눈에도 처음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바로 영상의 배경들.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 속에 주제가 숨어 있다. 마을축제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에 재개발을 반대하는 플랭카드가 슬쩍 보인다. 이 장면이 프로젝트가 보여주려는 핵심을 담고 있다고 본다. 도시의 주변으로 밀려난 북정마을은 또 다시 주변으로 밀려날 상황이다. 자본과 부자들이 이 땅을 점령할 것이고 구청과 중앙정부는 이들에게 많은 세금을 걷어갈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마을은 북정마을 반대편에 있는 도둑촌과 다를 것 없는 깨끗한 마을이 될 것이다. 높은 담벼락,CCTV,차고셔터문이 그 마을의 상징이 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재개발을 반대하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보상가를 높이 받으려는 의도된 행동이라고. 주민들 사이에도 이해관계가 있으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일 아니라고 쉽게 이야기 하지는 말자. 그 곳은 그들의 터전 아닌가. 그 곳의 개발은 그들에게 결정권을 줘야지 외부에서 막무가내로 밀어부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편 작가가 느끼는 성북동의 이미지도 결국 외부자의 시선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일지에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내가 성북동에 올 때마다 여우에 홀린 것같은 기분이 든다....성북동은 서울의 시공간안에 속해 있지만 마을 아래쪽과는 전혀 다른 시공간처럼 느껴진다."(179쪽) 북정마을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까? 어릴 적 경험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일학년 정도 되었나. 아산 외가댁 바깥마당에 묶어 놓은 소에게 풀을 먹이고 있는데 지나가는 대도시에서 온 듯한 가족이 이 장면을 보고 이야기 한다. "와~ 아름답다.". 왠 아름다움? 지금 생각하면 그 눈빛이 꽤나 부럽고 선망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하나도 안 부러운데. 갑자기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 한 느낌이 들어서 매우 기분이 안 좋은 기억이 있다. 그렇듯 북정마을도 그렇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과도하게 마을을 규정지어선 안 된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들의 운명은 그들이 결정하도록 해야 할 거다. 비록 앞으로 다가올 현실에 우리가 가슴 아파하고 슬퍼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북정마을 뒷편 숲 속에 부모님의 뼈를 뿌린 홍아저씨의 삶이 우리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기를 기원하고 싶은 맘은 간절하다.
일지와 영상을 보며 독자로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공간과 사람의 삶에 대한 기록은 꼭 성북동 북정마을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기록의 대상은 있다. 그러면 누가 기록하는 것이 좋을까?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이면 좋지 않을까? 향토사학자분들이 그 역할을 할 터이다. 영상과 일지로 기록된 이 기록물도 하나의 좋은 교범이 될 것이다. 이 교범을 좀 더 정비해서 전국의 기록전도사들에게 전파했으면 어떨가 싶다. 전국 관광지도가 일반 지도와 다르게 디자인 되어 있다. 아마 누군가 처음에 그러한 지도를 만들었을 것이고 전국의 지자체가 이를 따랐을 것처럼.
끝으로 마민지양의 고군분투를 기대한다. 열정있는 젊은 인재들이 꿈을 활짝 펼치며 살아 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싶다.
첫댓글 그곳에 갈일 종종 생깁니다 북정마을에 들어서면 묘한 기분에 휩싸입니다 옹기종기모여있는 집집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합니다 짖어대는 개도 드물어서 저는 한참을 골목어귀에 앉아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좋아하는 아가씨의 얼굴이 보고싶어 한참을 서성였을것 같은 창문밑에요 각박한 서울의 삶에서 드물게 인간적인 향기가 나는 곳인데 재개발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종을 울려고 하는 것인지요
실향민을 만들어 내는 도시개발 가슴 아픈 현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