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스님을 모시고, 대중스님들과 함께 살던 대중생활에서 벗어나 처음 혼자서 절살림을 맡아 하기 시작했을 때는 참 저녁시간 보내기가 난감했다. 대중에서야 바쁜 일들도 많고, 한가로운 시간 가지기가 그리 쉽지 않다 보니 얼마 안 되는 시간이라도 여가가 생기면 얼마나 꿀맛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스님들 없이 혼자 살게 되다 보니 처음에는 많이 게을러지기도 하고, 또 하루 일과를 끝내고 조용한 방안에 앉아 있자면 알 수 없는 적적함이 파도치듯 밀려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습관적으로 TV를 켜게 되고, 컴퓨터를 켜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음을 알아채게 되었다.
하루종일 움직이고 있는 내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자신을 관찰하게 된다. 모처럼 만에 혼자 있을 수 있는, 속 뜰의 본래 향기를 지켜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더라도 습관처럼 우리는 그것을 거부해 버리곤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하루 중 '그냥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아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시간 말고 그냥 있는 시간이 과연 있기는 했었는가 하고 되물어 본다. 그러고 보면 나도 우리도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지 잠시도 그냥 있지 못했다.
일을 하고 있거나, TV를 보고 있거나, 신문을 보고 있거나, 책을 읽고 있고, 공부를 하고 있고, 그도 아니면 생각을 하고 있거나,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거나, 미래의 계획을 짜고 있거나,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가만 살펴보면 이렇듯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지 그냥 있은 적이 얼마 없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게 된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욕망과 바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무언가를 도모코자 하는 바램이 있을 때 우리는 거기에 얽매이게 되며 참된 휴식을 가질 수 없다.
그냥 있을 때, 아무런 바램이나 욕망도 가지지 않고 다 비워버렸을 때, 그때 우린 비로소 참된 휴식을 가지게 된다. 그때 비로소 안온한 마음의 평화를 느껴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뒤떨어지는 것 같다거나 좀이 쑤셔서 못 견딜 것 같은 이유는 우리가 그동안 그냥 있지 못하고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강박적인 행위 중독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큰 일이라도 일어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혼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때, 고요히 내면을 비추어 보는 시간을 가질 때 오히려 더 많은 영감과 지혜와 내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 함이 없이 무위로써 그냥 존재하는 있음의 자리에는 전혀 힘을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힘의 원천, 영감과 지혜의 근원이 충만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없던 것이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이미 충만하게 갖추고 있었던 것들이 생각과 분별, 욕망과 유위의 행위가 잦아들자 비로소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 우리는 끊임없이 행위를 통해, 지식과 소유를 늘려나가려는 온갖 노력을 통해 무언가를 애써 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이미 날 적부터 충만하고 완전한 존재다. 이미 모든 것을 갖춘 존재인 것이다. 다만 우리의 분별망상과 생각들이 그동안 그 완전성을 막아 선 것에 불과하다.
그저 순수하게 존재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마음에 일 없이 그냥 있어 보자. 우리의 지친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쉼과 휴식뿐이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방송중에서
첫댓글 "우리는 이미 날 적부터 충만하고한 존재다. 망상과 생각들이 그동안 그 성을 가리고 막아 선 것에 불과하다.
있어 보자.
이미 모든 것을 갖춘 존재인 것이다.
다만 우리의 분
그저 순수하게 존재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마음에 일 없이
우리의 지친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쉼과 휴식뿐이다."
不用求眞 唯須息見 진리를 찾으려 굳이 애쓰지 말고 단지 모름지기 망상 번뇌를 쉬어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