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까요. 주인공 한석규나 이제훈? 등장 아리아 〈Nessun dorma〉? 타이틀 파바로티?
뭐... 쓰는 놈 마음대로죠. 먼저, 영화의 개략부터 간단히 소개해 올리면
「파파로티」
개봉: 2013 감독: 윤종찬 주연: 나상진(한석규), 이장호(이제훈)
성대에 문제가 생겨 성악가로의 꿈을 접고 지방예고 음악선생으로 부임한 상진(한석규) 앞에 나타난 고딩 조폭 장호(이제훈). 어린 노무 XX가 주먹밥까지 먹고 있으니 그 싸가지야 말해 무엇, 문제는 하늘이 내린 목소리를 지녔다는 것. 이 떡잎 그른 조폭이 비록 입은 걸지만 속마음은 따듯한 스승을 통해 조직생활을 접고 훌륭한 성악가로 거듭 태어난다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 한석규 특유의 목소리로 상욕&빈정거림을 듣는 것이 포인트.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1946)」로 대표되는 필름 느와르(미니 예산으로 제작된 냉소적 분위기의 할리우드 범죄 영화)가
주윤발이 하얀 목도리를 두르고 나오는 「영웅본색(1986)」의 홍콩 느와르를 거쳐
「장군의 아들(1990)」로 한국판 조폭영화의 나와바리를 구축한 이후
초록물고기(‘97), 넘버3(‘97), 달콤한 인생(‘01), 두사부일체(‘01), 비열한 거리(’06), 해바라기(‘06), 우아한 세계(‘07), 영화는 영화다(‘08), 범죄와의 전쟁(‘11), 신세계(‘13)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운 영화들이 조폭의 힘을 빌려 흥행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그 중에서 클래식을 편애하는 낭만배달부의 촉수에 걸린 영화가 요 「파파로티」였죠. 암튼 다음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클래식 관련 컷들. 가곡 2, 아리아 3곡이 살짝 혹은 찐~하게 소개됩니다.
〈송어〉 관련 장면
상진; 이 곡은 슈베르트 선생님이 송어가 파닥파닥 뛰는 모습을 보고 만드신 건데, 그렇게 묵직하게 부르면 동태지 송어냐?
제자1; 둘은 완전히 다르죠. 동태는 냉동이고 송어는 활언데.
상진; 네 송어의 정체는 뭐냐?
제자1; 막 잡아가지고 초장에 찍어먹는 자연산...
〈Musica Proibita(금지된 노래)〉 관련 장면
(제자2가 고음 파트에서 삑~사리를 내자)
상진; 이 노래 제목이 뭐냐?
제자2; 금지된 노래요.
상진; 그래, 숙희(제자2)에게는 노래가 금지다.
〈La donna e mobile(여자의 마음)〉 관련 장면
“왜 공휴일에 부르고 지랄이야~” 스텔라 똥차를 끌고 김천예고로 향하던 상진이 젊은 조폭의 비까번쩍한 제네시스를 긁어버린다. 첫 만남부터 꼬인 두 주인공.
“오디오 작살이네. 이 차에 달긴 아깝다. 시간 없으이까 명함 받고 보내드리라.” 이때 상진의 차에서 흘러나오는 곡이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만토바 공작이 부르는 〈여자의 마음〉.
La donna è mobile qual piuma al vento. Muta d'accento e di pensiero.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 이리 저리로 흔들린다오.
장호가 상진의 똥차로 다가가며 점차 사운드가 증폭되는 scene이라 단언할 순 없지만, 마지막 소절 e di pensiero 의 음색과 전개과정에서의 장례식 화면으로 추정해볼 때 파바로티의 목소리인 듯.
〈별은 빛나건만〉 관련 장면
상진; 야, 뭐 헐래?
장호; 별은 빛나건만.
상진; (헛웃음) 야, 그냥 할 만한 거 하지.
장호; 이기 조은데여. 파파로티 창법으로 불러볼까요? 억수로 똑같은데...
상진; 파파로티는 또 어떤 분이셔~ 니 아버님이시냐? (일부 편집)
E lucevan le stelle ed olezzava la terra 별은 빛나고 대지는 싱그러웠지
stridea l'uscio dell'orto, e un passo sfiorava la rena 정원의 문 열리며, 그대 발자국 소리 땅을 스치네
Entrava ella, fragrante mi cadea fra le braccia 향기로운 그대 다가와 내 품에 안기고
Oh, dolci baci, o languide carezze 오! 부드러운 입맞춤, 달콤한 애무여.
mentr'io fremente le belle forme disciogliea dai veli! 떨리는 손길로 베일 벗기니, 그대 고운 얼굴을 드러나네
Svanì per sempre il sogno mio d'amore 아, 그 사랑이란 춘몽은 영원히 사라지고
L'ora è fuggita 시간은 흘러
E muoio disperato! 나는 이제 절망 속에 죽는다네!
E muoio disperato! 나는 이제 절망 속에 죽는구나!
E non ho amato mai tanto la vita! 이토록 삶이 절박한 때가 있었던가!
(Mai) tanto la vita! 이토록이나!
E lucevan le stelle 첫 소절에 상진의 표정이 굳어지고, 마지막 소절 tanto la vita가 smorzando로(꺼져 가듯이) 흩어진 후 찾아든 정적. 상진은 삼익피아노 덮개를 내리며 말없이 방을 나간다. 목에 핏대 세운 장호의 립-싱크와 퉁퉁 퉁기는 듯 상진의 marcato(힘주어 강조하는) 핑거-싱크가 압권. 실제 목소리의 주인공은 테너 강요셉.
〈네순 도르마〉 관련 장면
조폭 생활은 청산했지만 하필 콩쿨 당일 조폭들로부터 흠씬 얻어터지고 경연장에 지각한 장호와 “5분이면 된다고 X발, 애가 얼마나 노래하고 싶어 하는데” 울부짖는 상진. 상호가 보안요원에게 끌려 나가기 직전 무대 뒤쪽에서 Nessun dorma~ 노래가 들려온다.
Nessun dorma! Nessun dorma! 아무도 잠들지 말라! 아무도 잠들지 말라!
Tu pure, o Principessa, 당신도, 공주여,
nella tua fredda stanza, guardi le stelle 그대의 차가운 침방에서, 별을 보시오,
che tremano d'amore, e di speranza! 사랑과 희망에 전율하는!
Ma il mio mistero è chiuso in me; 허나 나의 비밀은 내 안에 숨어있고
il nome mio nessun saprà!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를 것이오!
No, No! Sulla tua bocca 아니, 아니! 그대 입술에
lo dirò quando la luce splenderà! 여명이 밝으면 내가 말해주리다!
Ed il mio bacio scioglierà 그러면 내 입맞춤이 침묵을 녹이고
il silenzio che ti fa mia! 그대는 내 것이 될 것이오!
Il nome suo nessun saprà, (합창)그의 이름은 누구도 알지 못할 터,
E noi dovrem, ahimè, morir, morir! (합창)그러면 우리는, 아아, 죽는구나, 죽어!
Dilegua, o notte! Tramontate, stelle! 물러가라, 밤이여! 사라져라, 별들이여!
Tramontate, stelle! All'alba vincerò! 사라져라, 별들이여! 새벽 밝아오면, 나 이기리라!
Vincerò! Vincerò! 이기리라! 이기리라!
이미 심사와는 상관없지만 두 사람의 음악에 대한, 삶에 대한 열정&의지가 카타르시스로 분출되는 장면이다.
국내 허다한 조폭물 중 툭 삐져나와, 음악과의 접점을 통한 휴머니즘의 승리를 그리려 했던 영화. 2009년 SBS 스타킹에 고딩-파바로티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김호중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영화. 개인적으론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파리넬리’ 만큼이나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이젠 우리 영화도 장르가 다양해져 볼거리가 풍성해졌지만, 20년 넘게 충무로판을 주도했던 조폭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