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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하면 ‘4번 타자’가 떠오른다. 곧바로 ‘홈런’이 연상된다.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큰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홈런을 자연스레 기대하게 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와다 쓰요시(시카고 컵스)에게 뽑아낸 통렬한 동점 투런포는 한국과 일본 야구팬들에게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 2년 뒤인 2010년 이대호는 롯데 유니폼을 입고 9경기 연속 홈런포를 쏘아올렸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8경기 연속 홈런을 뛰어넘는 대기록이었다.
롯데에서 11시즌을 보낸 이대호는 2012시즌부터 일본프로야구로 무대를 옮겼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바로 그 곳이다. 첫 번째 팀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붙박이 4번 타자로 2년 연속 24홈런과 91타점을 기록한 이대호는 퍼시픽리그 타점왕과 베스트나인에 뽑혔다. 일본 무대에서도 최고 타자 반열에 오른 것.
두 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이대호는 2014시즌부터 후쿠오카를 연고로 하는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했다. 구단 회장이자 일본야구의 전설인 오 사다하루(王貞治)의 직접 지시였다.
2011시즌 퍼시픽리그와 재팬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소프트뱅크는 이대호가 일본 무대에 진출했던 2012시즌부터 3위와 4위에 그치며 부진에 빠졌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오 사다하루 회장은 4번 타자 보강에 팔을 걷어붙였다. 처음부터 이대호를 겨냥했다. 그리고는 팀 최고 연봉인 5억엔을 제시하며 마침내 빅보이 이대호를 잡는데 성공했다.
2015년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는 이대호를 만나다 |
이대호가 입단한 뒤 소프트뱅크는 2014시즌 퍼시픽리그 우승과 재팬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대호 효과’는 타선의 안정을 불렀다. 144경기에 모두 4번 타자로 나선 이대호는 타순 변경 없이 전 경기에 출전한 팀내 유일한 선수였다. 이대호가 4번에 자리를 잡자 나머지 타자들은 부담 없이 자기 타순에서 방망이를 돌렸다.
이대호는 2014시즌에 19홈런 68타점을 기록했다. 타율은 정확히 3할(566타수 170안타)이었다. 퍼시픽리그 타격 6위였다. 최다안타 부문에서는 팀 동료인 나카무라 아키라에 이어 2위였다. 홈런과 타점부문 순위는 각각 8위와 12위였다.
정규시즌 우승 뒤 재팬시리즈로 접어들면서 이대호는 손목 부상으로 진통제를 맞고 출전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5경기에 모두 4번 타자로 나서 18타수 6안타(0.333) 1홈런 4타점으로 맹활약했다. 특히 1차전을 내주고 열린 10월 26일 2차전에서 1-0으로 앞선 4회초 한신 선발 노미 아츠시의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좌월 홈런을 터뜨렸다. 공식관중만 4만5천259명이었던 고시엔 구장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저 멀리 좌익수 뒤편 상단 스탠드에 외로이 자리한 소프트뱅크 응원석만 요란했다.
수비에서도 대단한 활약이었다. 2-1로 1점 앞선 8회말 1사 1루에서 후지이 아키히토가 친 1루 선상을 타고 흐르는 빨랫줄 타구를 이대호가 다이빙캐치로 걷어내자 관중석에서는 탄성이 메아리쳤다. 이대호의 수비에 그저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결국 이대호의 활약 덕분에 소프트뱅크는 재팬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다.
2014 일본 프로야구를 제패한 이대호와 소프트뱅크 동료들 (사진: 연합뉴스) |
한국의 팬들이 이대호의 홈런을 기대하듯 일본에서도 이대호를 홈런타자로 생각한다. 일반 팬들은 특히 그렇다. 그러나 일본 야구인들과 동료 선수들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이대호가 홈런을 노려 치는 일발장타형 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다.
후지이 야스오 타격코치는 “이대호는 유연성이 좋은 타자라 어떤 공에도 대응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유연하면서도 장타력을 보유했다는 점이다. 엄청난 장점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이나 중남미쪽에서 온 선수들은 일발 장타가 있지만 극단적으로 당겨 치거나 밀어 친다. 삼진이 많고, 팀 배팅이 전혀 안된다. 반면 이대호는 장타가 있으면서도 삼진이 적다. 여기에다 팀 배팅이 가능하고, 밀어치기에도 능하다. 상황에 맞는 타격을 할 수 있다는 게 이대호의 장점이자 다른 외국인타자들과의 차이점이다”라고 말했다.
후지모토 히로시 타격코치도 "내야안타가 전혀 없는데도 3할을 치는 타자가 있다면 그 선수는 항상 안타를 칠 수 있는 선수라고 봐야한다. 그런 선수가 장타를 때려낼 파워와 더불어 유연성까지 갖췄다면 상대는 엄청난 위압감을 느낄 것인데, 바로 그 선수가 이대호다“라고 치켜세웠다.
2010년 SK에서 타격코치를 맡았던 세키카와 고이치 한신 수석 타격코치는 “내가 SK 코치를 하며 한국야구를 경험했을 때 투수 류현진과 타자 이대호는 이미 탈아시아급 선수였다. 두 선수는 리그 초반부터 눈에 확 들어왔다. 이대호는 지금 일본에 와서 계속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확실히 좋은 타자다”라고 말했다.
2013년 오릭스 타격코치였고 현재 kt타격코치인 이시미네 가즈히코 코치는 제자인 이대호를 “밝은 선수다. 함께 해보니 야구를 접하는 자세가 아주 좋은 선수였다. 숫자적으로 봤을 때 이대호는 홈런, 타율, 타점 모두 상위권에 랭크된 선수다. 모든 면에서 성적을 내고 있다. 특히 투수와 타이밍을 잡는 법에 대해서는 내가 본 선수 가운데 최고다"라고 말했다.
2011년 SK타격코치를 지내다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수석타격코치를 맡고 있는 다시로 도미오 코치는 “SK 때도 이대호한테 그렇게 많이 맞았는데 라쿠텐에서도 이대호한테 또 당하고 있다”며 껄껄 웃었다. 그러면서 “올해 소프트뱅크가 1위를 하고 있는 것은 타선에 이대호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갑내기 간판타자 우치카와 세이치와 이대호 (사진: 홍성욱 기자) |
팀의 간판타자인 동갑내기 우치카와 세이치는 “이대호는 최고의 동료이자 우리 팀의 고정 4번 타자다. 든든한 존재다. 지난해 우리 팀에 4번 자리가 고정되지 않았다. 여럿이 돌아가며 4번 타순에 들어갔는데 나도 그 중에 한 명이었다(웃음). 지금은 대호 덕분에 내 자리(3번 타순)를 찾았다"고 말했다.
정규시즌 우승과 재팬시리즈 우승 때 끝내기를 터뜨린 이대호의 절친 마쓰다 노부히로는 “이대호가 온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이제는 어떤 상대를 만나도 확실히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호는 당겨 치고 밀어친다. 홈런도 가볍게 쳐서 만들어낸다. 선구안도 좋다. 그런 선수가 내 앞에서 타격을 하고 있다. 나에게는 당연히 찬스가 많았고, 승부가 걸렸고, 루상에 주자도 많았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이대호는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선수인 동시에 인정받는 선수였다. 외국인선수 같지 않은 외국인선수였다. 특별대우나 열외 없이 똑 같이 움직였다. 먼저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결국 선수들과는 형동생 사이가 됐다.
2015 이대호 “나쁜 공도 때리겠다”
일본 야구로 건너와 3년을 보낸 이대호. 어느덧 프로 무대 15년째다. 벌써 일본 진출 네 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서 맛보지 못했던 우승까지 이뤄냈다. 이제는 목표가 바뀔 법 했다. 오는 3일 사이판으로 개인 전지훈련을 떠난다는 이대호를 만나 지난 3년과 다가오는 2015시즌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 비시즌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재충전은 충분히 했는지 궁금하다.
“이번에는 기간이 짧았다. 재충전을 못했다. 비시즌은 소중한 시간이다. 그런데 처음 우승을 하고 나니 쉴 수 있는 기간이 짧아졌고, 스케줄은 더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몸도 피곤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 계획이다.”
- 우승 보너스로 하와이 가족여행도 다녀왔다.
“프로 생활하면서 처음해보는 경험이었다. 우승도 즐거웠지만 단체 가족여행도 즐거웠다. 특히 아내가 제일 즐거워했다. 선수단 가족이 모두 모여 하와이에서 파티를 했다. 정말 특별한 시간이었다. 골프대회도 열렸다. 51명이 참가했는데 대회가 끝나고 나니 51등 부터 한 명씩 차례대로 시상을 하더라.”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다양한 자선행사를 통해 팬들과 만남을 가진 이대호 |
“16등을 했다. 핸디를 적용해서 93타였다. 상품으로 명품 넥타이를 받았다. 창용이형(소프트뱅크 한국선수 담당 정창용씨)은 3등을 해서 상금 7만엔을 받았다. 1등은 전력분석원이 차지했는데 핸디 적용 78타였다. 상금 15만엔과 큰 가방을 받고 무척 좋아했다. 편하게 즐기는 시간이었다.”
- 지금 몸 상태는 어떤가. 포스트시즌 전에 목부상이 있었고, 재팬시리즈 때는 손목부상으로 교체된 뒤, 다음날 진통제를 맞고 출전했었는데.
“현재는 아픈 곳이 없다. 그렇지만 시즌 마지막에 다친 손목이 걱정된다. 지금은 방망이를 돌리지 않으니 괜찮지만 방망이를 들었을 때 어떨지는 모르겠다. 두 달을 쉬었으니 아무렇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일단 1월에는 러닝에 중점을 두면서 손목도 가볍게 돌려보려고 한다.”
- 팀 전체 훈련은 2월 1일부터다.
“그렇다. 그 전까지는 바로 배팅할 수 있도록 몸을 내가 만들어놔야 한다. 1월 초부터 운동량을 늘리면서 몸을 빨리 만들려고 한다. 12월에 몸을 좀 만들어놨어야 했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으니 1월 초부터 바짝 하려고 한다. 사실 올 해는 몸을 천천히 만들려고 했었다. 그런데 새로 오신 감독님이 내 타격 모습을 빨리 보고 싶어 하실 것 같다.”
- 일본 진출 4년째인데 벌써 4번째 감독을 만났다.
“그렇게 됐다. 1년에 한 번씩 감독님이 바뀌고 있다. 아키야마 고지 감독님이 계속 계셨다면 신뢰관계가 돈독했기에 아무래도 심적으로 편했을 것 같긴 하다. 더구나 우승도 했고, 1년 내내 나를 믿고 기용해주셨던 분이기도 하다. 나에 대해 잘 아시니 여러 모로 마음이 편했다. 새로 구도 기미야스 감독님이 오셨으니 나 역시 그에 맞게 새롭게 시작하겠다.”
- 지난 시즌 얘기를 좀 꺼내보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
“10월 2일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였다. 제일 힘든 경기였다. 이미 끝난 143경기와 상관없이 그 날 한 경기 결과에 우승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가장 힘들었고, 가장 긴 하루였다. 그에 비하면 재팬시리즈는 긴장도 별로 안됐다.”
이대호가 돌아본 일본 프로야구 진출 3년 |
“치려고 마음을 먹고 타석에 들어갔다. 그런데 투수의 제구가 흔들렸다.”
- 일본 취재를 갈 때마다 느끼지만 4번 타자라 그런지 정말 치기 힘든 공만 준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고민이 많을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생각을 많이 했던 부분이다. 분명 투수들은 좋은 공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거기에 대해서는 나도 늘 고민이다. 나쁜 공을 주는 데 그걸 쳐야 하나 말이다. 하지만 결론은 쳐야 한다. 그러면서 성적이 나야 한다. 정리하자면 나쁜 볼을 쳐서 성적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치라고 좋은 공을 주는 투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계속 안치고 볼넷으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타석마다 고민이다. ‘이번에는 승부를 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을 때 승부가 들어온다. 아예 승부를 하지 않을 것처럼 하다가 갑자기 승부로 돌아서기도 한다.”
- 이대호의 선구안은 일본 여러 팀 코치들도 인정하고 있다. 뻔히 나쁜 공인 줄 알면서 손을 내는 게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고민의 연장선이다. 그래도 이번 시즌은 더 적극적으로 칠 생각이다.”
- 지난 시즌 타율은 정확히 3할이었지만 19홈런 68타점은 성에 차지 않을 것 같다.
“홈런도 그렇고 타점도 마찬가지다. 올 시즌은 30홈런 100타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에 진출할 때 세웠던 목표다. 한 번은 꼭 하고 싶다.”
- 홈구장인 후쿠오카 야후오크돔의 팬스를 낮춘다는 얘기가 들린다.
“손정의 회장님이 야구장이 너무 커서 홈런이 타 팀보다 적다고 지적하셨다. 1.8미터 가량 낮춘다고 들었다. 야구장이 큰 건 사실이다. 담장을 때린 타구도 많았다. 나와 동료 타자들에게는 희소식이다.”
- 그런 이유인지 오프시즌에 투수만 보강됐다. 마쓰자카와 밴덴헐크까지 동료가 됐다.
“팬스를 낮추면서 투수 영입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 삼성에서 뛴 벤덴헐크는 솔직히 잘 모른다. 알 수도 없었다. 한국에서 13승을 거둔 선수로만 알고 있다. 당연히 좋은 투수라 데려왔다고 생각한다. 우리 팀에 와서 잘 던져주면 좋은 거다.”
2015년 시즌 목표는 30홈런 100타점, 명확한 목표를 향하고 있었다 |
“거의 비슷하다. 그런 부분은 한국이 많이 발전한 것 같다. 한국도 비디오 분석이나 구질 분석을 많이 한다. 나도 일본에서 두 팀에 있어 봤지만 전력분석 데이터를 받아보면 한국에서 받아보던 것과 비슷했다.”
- 소프트뱅크와 계약은 2+1년이다. 상황에 따라 올 해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국내 팬들은 이대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홈런을 터뜨리는 모습을 원하고 있다.
“그런 팬들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 문제는 대우를 받고 가는 것인데 미국 시장은 국내 선수들에 대한 대우가 인색하다.
“김광현이나 양현종을 그 정도로 대우하고 있는 게 메이저리그다. 유망주를 데려가 키워보려는 성격이 짙은 곳이다. 마이너 계약도 많고. 가서 잘할 수도 있지만 무턱대고 기회를 주지도 않는 곳이 메이저리그다. 스프링트레이닝이나 시범경기 때부터 신인같이 성적을 내야 기회를 주는 데 쉽지는 않다.”
- 해외 진출을 먼저 한 상황에서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올 해 잘했고, 몇 년 동안 잘해왔다면 자신감이 많이 들 것이다. 그 자신감을 들고 진출하는 건 좋다. 그럴 때 완전히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 모든 면에서 신인 같은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 일본에 처음 진출했을 때 일본야구와 일본생활 중에 어떤 쪽이 더 힘들었나.
“둘 다 힘들었지만 야구보다 생활적응이 더 힘들더라.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한 부분이 있다. 시즌 중에는 분명 슬럼프가 찾아온다. 한국이라면 마음 깊은 대화를 코치들과 나누면서 풀 수 있는 부분은 풀고, 고민도 하면서 이겨내야 하는데 여기선 그런 부분이 어렵다. 통역을 통하다 보니 그런 얘기에 한계가 있다. 특히 힘들 때가 더 그렇다. 먹는 것도 그렇고, 거기에다 구단에서 원하는 것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 코칭스태프가 히팅이나 웨이팅에 대한 사인을 낸 적이 있나.
“그런 것까지 하지 않는다. 완전히 나에게 맡겨버린다.”
팀의 우승을 넘어 또다른 목표로 '4번 타자' 이대호의 2015년을 응원한다 |
“이전부터 타순에 대한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어느 타순이든 앞에 두 타자가 잘 치면 좋고, 뒷 순번 타자가 잘 치면 나에게 승부가 들어오니 그것도 복이라고 생각했다.”
- 일본 야구는 4번 타자에 대한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 같다.
“그런 게 있다. 아무래도 요미우리에서 4번 타자에 대해 ‘몇 대 4번 타자’로 계보를 이어오듯 의미를 부여하니까 다른 팀들도 4번 타자는 더 대우해주고 부각을 시키는 것 같다.”
- 올해도 4번으로 나선다.
“나 혼자가 아닌 다 같이 잘 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팀이고 테이블세터와 3번, 5번이 잘하면 당연히 4번도 잘하게 된다. 반대로 4번이 좋아서 3번과 5번이 좋아질 수도 있지만 모든 선수들이 잘하면서 같이 올라가야 한다. 한 두 명이 무너지면 같이 무너진다.
- 30점 홈런 100타점을 위해서는 뭘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플랜이 있나.
“그냥 열심히 하는 거다. 열심히 하다보면 된다. 야구가 뭘 하겠다고 하면 되는 게 하나도 없더라. 열심히 하다가 점점 성적이 좋아지면 자연스레 운도 따랐다.”
- 재팬시리즈 2차전 때 홈런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그 때 느낌은 어땠나.
“뭐 그때는 ‘홈런을 쳤구나’ 이런 정도였다. 아주 특별히 좋거나 즐거운 것도 아니었다. 경기 중간상황이었고 1점 접전이라 결정적인 홈런도 아니었다. 그거 하나로 좋다고 기뻐할 상황은 아니었다. 더그아웃에 들어오고 나서 홈런을 하나 더 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 해외 진출 3년이 지났다. 우승도 했다. 되돌아본다면.
“어려서부터 일본야구에서 뛰어보고 싶은 꿈이 있었다. 한국보다 높은 리그에서 뛰어보고 싶은 꿈이었다. 꿈은 어느 정도 실현됐다. 생애 첫 우승도 했다. 이제는 개인성적에 대해서도 목표를 강화하려고 한다.”
이대호의 조준점은 개인성적으로 바뀌었다. 팀은 이미 우승을 했다. 마운드도 보강됐다. 후쿠오카돔의 높은 팬스도 키를 낮춘다. 이대호는 나쁜 공에 대한 적극적인 공략을 천명한 상태다. 개인성적의 커리어하이를 충분히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이대호의 나누는 삶, 함께하는 삶
일본에서 성공스토리를 써가는 이대호는 마음이 따뜻한 남자다. 어린 시절 형과 함께 할머니의 손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힘든 환경가운데서도 보란 듯이 성공하며 일어섰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이대호가 큰 돈을 벌기 직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대호의 든든한 조력자, 형 이차호씨 |
아침 9시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고된 연탄배달이 끝나면 인근 대중탕에서 목욕을 하고,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훈훈하게 마무리한다.
또한 2014시즌에는 네이버 해피빈과 함께 ‘홈런치고 사랑의 쌀 나누기’ 캠페인까지 시작했다. 홈런 하나를 때릴 때마다 비거리를 킬로그램으로 환산해 소외가정 아동에게 쌀을 이대호가 직접 사는 프로그램이다.
정규시즌과 재팬시리즈까지 20개의 홈런은 모두 합해 2400미터 비거리를 기록했고, 120포대의 쌀이 차곡차곡 모아졌다. 팬들도 콩을 기부하며 동참해 8900개가 넘은 콩을 모았다. 지금도 참여할 수 있다.
나누면서 함께하는 삶은 이대호와 형 이차호씨의 의기투합 결과다. 형제는 돈독했다. 현재 형 차호씨는 이대호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오투에스앤엠의 대표다. 회사이름도 할머니 오분이 여사의 이름에서 따왔다. 형은 묵묵히 동생을 지원하고, 이대호는 야구에만 전념하고 있다. 의좋은 형제의 표본이다.
이대호는 “든든하고 좋다. 연락은 자주 하지만 서로 바쁘다 보니 같이 시간을 내서 밥 한 번 먹기가 힘들다. 올해는 더 그랬다. 형님은 스케줄을 만들고, 난 잡아놓은 스케줄 쫓아다니느라 바쁜 일정이었다(웃음).”
재미있는 징크스도 있다. 형 차호씨가 동생을 응원하러 야구장에 오면 항상 졌다는 것. 그런데 이번에 징크스가 깨졌단다.
이차호씨는 “이상하게도 롯데 시절부터 야구장에 가기만 하면 계속 져서 일부러 가지 않고 TV를 시청했다. 일본에 자주 건너가도 야구장은 가지 않았다가 이번 재팬시리즈 때 마지막경기일 것 같아 마음먹고 갔다. 대호가 끝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겼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돌아오는 시즌에는 징크스가 깨진 만큼 야구장에 자주 가겠다고 했다.
이대호는 이처럼 가족과 함께 나누며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역경을 딛고 일어나 한국야구를 넘어 일본야구에서도 우뚝 선 이대호다. 그가 2015년에 써내려갈 또 다른 희망과 열정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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