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평론가 이인순의 『연출가연극과 드라마투르기』(푸른사상 연극이론총서 9).
현대연극에서 ‘현대’를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탐구하고 있다. 또한 현대연극의 다양한 흐름을 전체적으로 정리해 연극 연구자뿐만 아니라 연극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안내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23년 8월 28일 간행.
■ 저자 소개
한양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실러의 연극미학으로 석사학위를, 셰익스피어 작품의 드라마투르기적 분석과 공연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구술사 책임연구원을 지냈고, 드라마투르그와 연극평론가로 활동하며 현재 인하대 연극영화학과에서 강의한다. 구술채록 연구들과 논문들, 공저, 비평문 등이 있다.
■ 책머리에 중에서
어느 매체가 연극만큼 역사가 깊을까. 그런 까닭에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매체가 출현하면 연극은 늘 실존적 위기를 만난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비대면을 요구하는 뜻밖의 시대에서는 배우와 관객이 직접 대면하는 연극은 그 자체로 위기였다. 그런데 이 비대면의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면을 그리워하는 시간은 아니었을까. 비대면에 적합한 매체들은, 마치 전자책이 종이책을, 온라인 채팅이 차 한잔을 두고 나누는 담소를 대신할 수 없듯이,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연극과 대비되었고, 연극의 존재 방식을 그립게 했다. 디지털 시대에 연극의 그 올드한 존재 방식이 오히려 여전한 연극의 매력과 위치를 부여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20세기 전환기에 태동해서 그 전반부를 차지하는 유럽의 ‘현대연극(Modern Theater)’의 ‘현대(modern)’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를 질문한다. 드라마와 연극 앞에 ‘현대’라는 단어가 붙을 때, 현대 드라마와 현대연극의 시작은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페터 손디(Peter Szondi, 1929~1971)는 그의 저서 『현대 드라마의 이론(Theorie des modernen Dramas, 1880~1950)』(Frankfurt am Main, 1963)에서 입센, 체호프, 스트린드베리, 메테를링크, 하우프트만의 작품들이 전통적인 드라마의 위기를 보여준다고 했다. 드라마가 인간 상호 간의 관계 재현을 대화를 통해 구축하고 있다면, 이들이 보여주는 드라마의 위기는 극문학의 대화 형식을 벗어나며 서사문학의 서사적인 것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연극’은 이러한 형식 변화에 나선 현대 드라마에서 기인했는가? 아니면 독자적인 변화였는가? 그러니까 ‘현대연극’의‘ 현대’가 무엇으로 규정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 책 속으로
20세기 전환기 유럽은 전반에 걸쳐 예술 개혁 운동이 진행되었다. 개혁이 역사에서 늘 그래왔듯 예술 개혁의 공통분모는 기성 예술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리하여 이 전반적인 예술 개혁은 당대의 사실주의 및 자연주의 예술의 재현미학을 떠나 상징적인 양식화와 추상화로 나아갔고, 연극은 시민사회의 연극과 단절함으로써 현대연극(Modern Theater)의 출발을 알렸다.
연극개혁가들에게 재현미학의 연극, 곧 연극은 부르주아적 예술 관습으로 부패한 ‘시민사회의 문화 시스템을 재현하는 구성요소’였으므로, 이들은 공통적으로 재현미학의 환영연극(Illusionstheater)과 그 무대형식인 액자 무대(Guckastenbuhne)를 거부했다. 환영 생산이 목적인 재현연극은 예술과 삶을 나누고 무대와 객석을 분리함으로써, 예술은 허상, 삶은 실제라는 각기의 실존 방식을 경계 짓는다. 현대연극은 이러한 예술과 삶의 괴리를 극복하려고 했다. 그 방법은 예술과 삶의 고유 영역을 상호침투하며, 배우와 관객의 일체성을 추구했고, 새로운 문화 창출을 선도했다. (39~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