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짝꿍모임 - 세상에서 제일 신나게 놀기!

[정한별]

7월 27일 월요일

◆ 첫 짝꿍모임

내 짝꿍은 규리.

알뜰시장 첫 모임을 같이 했던, 눈이 예쁘고 마음씨가 비단결같이 고운 아이다.

규리와의 첫 만남은 돌봄교실에서였다.

책 읽어주는 선생님으로 들어가서 1학년 아이들과 열심히 책을 읽다가... 아뿔싸.

아이들이 서로 싸우고 말았다.

동건이와 뜻이 맞지 않아 다투게 된 규리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러워했다.

오늘 규리와 어떤 활동을 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

돌봄교실이 끝나는 12시에 맞춰 학교에서 기다렸다가 규리와 오빠 동주를 만났다.

규리가 하고 싶어 하는 활동은

아이스크림 만들기, 피자 만들기, 무서운 이야기하기, 도서관 마당에서 놀기

여기에 내가 미리 준비한 스무 가지 정도의 활동을 더해 규리와 하고 싶은 것을 정했다.

‘아이스크림 재료 들고 피냇골 위로 올라가 소풍가기’

보건소에서 일하시는 어머니와 통화를 한 후 집 열쇠를 받으러 갔다.

피냇골로 소풍 갈 생각에 들떠있던 우리는 날이 너무 더우니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는 어머니의 설득에 30초도 안 되어서 넘어가 버렸다.

뚱뚱한 바나나 우유 두 개와 함께 넣을 초코과자 한 개를 사서

동주와 규리와 집으로.

큰 스텐레스 그릇을 꺼내 얼음을 붓고,

그 위에 작은 스텐레스 그릇에 바나나 우유를 담아 거품기로 휘휘 저었다.

과자는 비닐에 담아 주먹으로 부셔서

중간에 넣어준다.

규리 한 번, 동주 한 번, 나 한 번.

이십 분 가량을 팔이 달아날 정도로 빠르게 저은 뒤

냉동실에 넣고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에 규리와 나는 무얼 했을까?

규리가 듣고 싶어 하는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거실에서 잠깐 하다가 규리가 안방의 돌침대에 가서 하자고 하여

(규리가 말하기를 원래 메트리스가 있었는데

이를 거실 쇼파로 내놓는 바람에

안방 침대가 저절로 돌침대가 되었다고 한다.)

조용한 안방에서 무섭게 귀신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하나 들려주니 규리도 하나 즉석에서 만들어서 들려주었다.

규리의 무서운 이야기는 다채로웠다.

내가 흔히 귀신에 대해 갖고 있는 상상의 영역 밖이었다.

흔한 빨간 마스크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었는데,

빨간 마스크, 파란 마스크, 노란 마스크, 핑크 마스크 그리고 새 멤버 민트 마스크까지.

보통 귀신이 사람을 놀라게 한다면,

규리의 이야기는 귀신들 간의 역동을 다루는 참신한 것이었다.

새 멤버 민트 마스크의 능력과

새 멤버여서 기존 멤버 귀신들에게 소외당하는 내용,

그래서 껴달라고 부탁하는 내용.

민트 마스크가 숨는 곳이 돌침대 밑이라는 것과

귀신들이 찜질방에 놀러가서 음료수를 한 잔씩 사먹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피 음료수로 마무리했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무서운 이야기가 끝나도 아이스크림은 얼지 않았다.

그래서 규리는 동주오빠와 같이 쓰는 방에서

엄마, 동주, 규리의 오카리나를 보여주었다.

잘 깨지지만 소리는 좋은 엄마 오카리나, 중간 소리의 동주오빠 오카리나,

구멍이 쉽게 막히도록 버튼이 달려있는 규리 오카리나까지.

꺼내서 구멍을 막고 소리를 들려주었다.

나는 규리 오카리나로 동요 등대지기와 섬집아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잠깐 규리 오카리나를 불어봐도 되냐고 물었을　때,

제 건 침 거의 안 묻어서 괜찮아요. 그리고 선생님은 A형이니까 괜찮아요. 했다.

방 소개와 오카리나 연주를 마치고서도 아이스크림은 아직 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찰흙으로 작은 미니어처 만들기를 시작했다.

규리는 작은 것들을 모두 좋아했다.

나 역시 작은 것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내 손바닥만 한 작은 식탁과 부엌이 있는 장난감을 가져와서

찰흙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찰흙은 파란색, 보라색, 연한 주황색, 노란색이 전부였다.

나는 보라색으로 포도를 만들고 나니 더 이상 만들 것이 없어 고민되었다.

무얼 만들어야 정말 실제 모습과 비슷한 미니어처가 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색깔이 너무 부족하다 생각하는데

규리는 옆에서 보라색으로 눈사람 쿠키도 만들고

파란색으로 푸딩도 뚝딱 만들어 장난감 접시 위에 한 가득 올렸다.

나는 포도 하나 만들고 규리의 작고 빠른 손놀림을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작은 음식에도 꼼꼼하게 장식하는 규리의 솜씨를 칭찬했다.

찰흙으로 음식을 만들면서

규리와 반 친구들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혜원이, 정현이, 서연이, 동건이, 규영이, 민재, 재현이, 현아 등.

각 친구들이 잘 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규리가 잘 하는 것을 이야기했다.

규리는 자신이 잘 하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면서 망설였다.

넌 손으로 만들기를 잘 하잖아!

규리가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한 시간쯤 지났지만 아이스크림은 결국 제대로 얼지 않았다.

국물이 조금 남아있지만 덩어리로 언 부분도 있기에 아이들과 숟가락 하나씩 들고

열심히 퍼서 먹었다.

나는 선생님이니까 옆에서 조금 나와서 아이들이 실컷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했는데

나도 아이스크림이 신난 나머지

셋이 한 번씩 차례가 오도록 맛있게 먹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는 산책 가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가서 놀기이다.

아까 갖고 놀던 접시와 식탁, 의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내가 어릴 때 정말 많이 좋아했던 소꿉놀이를 같이 하고 싶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평평한 돌 하나와 찧는 돌 하나를 구하고

여러 가지 색깔의 꽃잎을 뜯어와 돌 위에 올려놓고 열심히 빻는다.

빨간색 꽃잎을 살짝 빻으면 김치가 되고 많이 빻으면 묵은 김치가 된다.

여기에 각종 풀잎을 뜯어 접시로 사용해서 장식하면 완성.

여보. 식사하세요.

친구들과 엄마 아빠 놀이를 하며 김치도 먹고, 나물도 먹고, 밥도 먹는

어릴 적 소꿉놀이를 규리와 했다.

꽃이 적당한 주공 아파트 근처 공원을 찾아 돌을 고른 뒤 필요한 꽃잎을 살짝 뜯었다.

재료는 끝.

나는 빻으며 김치를 만들었지만 규리는 꽃잎의 예쁜 색깔이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꽃잎을 찢어 음식을 만들었다.

규리의 아이디어는 환상이었다.

내 생각은 꽃잎만 쓰는 것에서 그쳤는데

규리는 나리 꽃의 암술 수술도 사용하고

코스모스의 가운데 암술 수술도 손으로 뜯어 장식하는 데에 넣었다.

또, 돌아다니다가 뱀딸기를 찾아

‘공사 하느라 공기가 좋지 않아서 여기 있는 딸기는 먹으면 안된다는’ 딸기도

양껏 요리에 넣었다.

규리와 내가 마주 앉아서 소꿉 놀이를 하는 것이 나는 정말 행복 그 자체였다.

아이 때의 놀이를 어른들과 하려 하면

적당히 하고 말아야 하는 기념 수준의 놀이에 그치는데

아이와 함께하면 푹 빠져서 그 속에서 실컷 놀 수 있는 것이다.

규리와 나는 손으로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자꾸 찾아냈다.

규리는 손으로 무언가 만들면서 이야기를 툭 툭 꺼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한창 식탁을 채워 넣고 있는데

규리는 나와 짝꿍활동을 할 수 있어서 즐겁다고,

열심히 풀잎을 모양대로 찢고 있던 내가 깜짝 놀라도록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는 서율이가 선생님이랑 하고 싶다고 해서 양보했는데

자신에게 기회가 돌아와 기쁘다는 것이다.

규리는 내가 마음씨가 착하고 키가 커서 좋다고 하였다.

사람이 참 단순한건지, 나도 칭찬을 들으니 규리의 칭찬을 쏟아냈다.

슬슬 네시 반이 가까워질 때 즈음 우리의 만찬은 마무리가 되었다.

오늘 우리가 한 것이 뭐지?

아이스크림 만들기, 무서운 이야기하기, 방 소개해주기, 오카리나 보여주기,

찰흙으로 미니어쳐 만들기, 학교 친구들 이야기하기, 꽃으로 음식 만들기.

또 뭐가 있을까...

꽃이랑 풀 구경하기요!

생각하지도 않았던 대답을 규리가 해 주었다.

아, 규리는 완성된 결과만이 아니라 함께 보냈던 그 과정들 하나하나도

좋았나보다, 기억에 남나보다.

규리를 집에 데려다 주면서

저녁 식사를 얻어먹었다.

입이 짧은 오빠와 달리 깻잎 반찬을 손으로 북북 찢어 먹을 줄 안다는 규리의

터프함을 보면서

둘 만의 데이트가 정말 끝나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어머니와 이런 저런 철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철암 아이들의 강점에 대해서 서로 공감하였고,

학벌보다도 자주하려는 인성이 중요함을 함께 이야기하였다.

인사를 드리고 나왔을 때,

내일 돌봄교실에서 만나는 규리와 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오늘 이렇게 둘이 꼭 붙어 있었는데,

내일 책 읽어주기 전에 사랑의 총알 눈빛이라도 한 번 뿅 주고받고 시작해야겠다.

[김동찬]

우와~ 우와~ 우~와
참 신난다.
신나요.

[김동찬]

규리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