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7] 이정옥(李貞玉) - 일심봉천(一心奉天) 7. 1960년 하계 전도 순회 경험 - 3
21 집을 한 바퀴 돌아 보니 아궁이도 부엌도 없고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찢어진 문구멍으로 들여다보니 성전 정면에 작은 흑판이 있고 그 앞에 강대상이 하나, 그 옆의 괘도에 성가를 적어 놓은 십여 장의 종이가 걸려 있는데 낡아 보였다.
22 바닥은 통나무를 반 쪼개서 거칠고 둥굴둥굴한채 깔았는데 사이가 많이 떠 있어 가끔 밑에서 바람이 올라올 것 같이 보였다. 교회 토방 돌 위에 앉아 기도를 했다. 얼마 동안 울며 기도를 하고 나서 식구를 찾아가야겠다는 마음으로 교회를 나섰다.
23 교회 바로 앞 50m쯤 떨어진 곳에 한 집이 있는데 젊은 부부가 추수한 볏단을 부지런히 쌓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소리를 질러 불러 보았는데 개울물 소리 때문인지 전연 알아듣지 못했다.
24 할 수 없이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그 집에 가서 혹시 우리 식구가 아닌가 하고 물었더니 교회에 다니는 청년의 집이 산모퉁이를 돌아서 두 마장쯤 가면 있다고 했다.
25 그 집을 찾아가니 청년의 부모가 식구는 아니었지만 자기 아들이 곧 돌아올 거라고 하면서 우선 들어오라고 한다. 좀 서먹서먹했지만 고마웠다.
26 그곳은 무 밭이 많았다. 나는 염치 불구하고 무 하나를 뽑아 달라고 해서 그것을 먹으면서 하루종일 물 한 모금도 못 마셨기 때문에 우선 갈증과 허기를 풀었다. 그들의 안방 방바닥은 아주 거친 밀짚 돗자리가 깔렸고, 벽은 종이 한 장 없는 흙벽이었다.
27 청년 식구가 돌아왔기에 내가 순회사로서 서울에서 왔다고 소개하자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2년 전에 서울 청년 식구가 개척을 했을 때는 50명 정도의 식구들이 모였는데 그 인도자가 서울로 돌아간 뒤에 점점 식구들이 나오지 않아 지금은 겨우 청년 네 명이 남아서 예배를 보는 형편이라고 했다.
28 그가 청년들을 데리러 간 동안에 저녁상이 들어왔다. 손님이 왔다고 해서 특별히 차린 것 같다. 막 추수한 햅쌀밥을 사발 위에까지 가득히 담아 놓았다. 밥을 뜨니 찰기가 하나도 없이 버실버실 흩어졌다.
29 그곳은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기후가 차서 쌀이 찰기가 없다고 했다. 쌀밥 속에는 감자도 들어 있었다. 보통 그들은 상도 없이 방바닥에 놓고 먹는데 손님이라고 해서 청년과 겸상을 해주었다. 생전 처음 먹는 두메산골 음식이었지만 몹시 시장도 했고 그들의 정성이 고마워 감사히 먹었다. 30 새벽부터 종일 90리 가까이 걸어서 말할 기력도 없었지만, 식구들이 다 떨어지고 네 명의 청년들이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이 대견스러워 이들만이라도 변하지 말고 끝까지 남아 축복을 받았으면 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자정이 넘도록 말씀과 격려를 해주었다. 그들 중에 그 집 청년이 제일 심정이 좋고 순진하고 소박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