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9:1-15 / 2021년 9월 14일 화요일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
그의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한 사람과 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기뻐하니라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머물게 하매 그가 삼 일 동안 그와 함께 머물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다가
넷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의 사위에게 이르되 떡을 조금 먹고 그대의 기력을 돋운 후에 그대의 길을 가라 하니라
두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밤을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서 가고자 하되 그의 장인의 간청으로 거기서 다시 유숙하더니
다섯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이르되 청하노니 그대의 기력을 돋우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 하므로 두 사람이 함께 먹고
그 사람이 첩과 하인과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날이 저물어 가니 청하건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찍이 그대의 길을 가서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하니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하지 아니하여 일어나서 떠나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두 마리와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십시다 하니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가서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모두 앞으로 나아가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 해가 진지라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나를 찾아 세상까지 내려오신 그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그 마음에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성도만이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면 두려워하며 자신을 십자가에 부인하여 순종하고야 맙니다.
육신의 평안함과 만족보다 몸은 고통스럽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그 기쁨과 평안을 아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예배를 마치로 명보극장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닭볶음탕을 시켜 먹었는데 그 식당은 휴대용 가스렌지와 그릇을 갖다 주었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문 앞에 놓으면 된다고 하였는데 설거지를 깨끗하게 해서 교회 문 앞에 놓고 집으로 가다가 차를 돌려 귀찮더라도 식당에 갖다 주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전도지와 함께 넣어서 주고 온 적이 있습니다.
설거지를 해놓지 않고 문 앞에 내놓는다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설거지만 해놓아도 감사한 일이겠지만 직접 갖다 주기까지 하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다르다고 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착한 행실로 이웃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마음에 없으면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입니다.
내가 왕인데 다른 사람의 종노릇은 죽어도 못하는 것입니다.
에브라임에 사는 제사장의 첩이 행음을 하고 자기 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제사장의 아내가 될 수 없는 음란한 여자가 제사장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은 세상과 간음하던 음란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내가 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과 간음을 하고 도망한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첩도 될 수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첩이 아니라 우리를 아내로 맞아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간음을 하고 도망간 아내를 찾을 남편이 세상에 있을까요?
제사장은 베들레헴까지 찾아가 간음한 아내를 용서하고 다정하게 타일렀습니다.
간음을 하고 도망한 첩은 없어도 그만이고 그 첩은 율법으로 하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죄인입니다.
더군다나 제사장은 그 율법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으로 다스려야 할 제사장이 율법을 폐기하고 용서와 긍휼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간음을 하고 세상으로 도망한 우리에게 용서와 긍휼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를 찾아와 타이르시고 다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우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그 자리에서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제사장이 간음한 아내를 데리고 가고자 하는 곳은 여호와의 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세상까지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아버지가 방해합니다.
성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의 집으로 가려면 방해하는 세력이 나타나기 마련인 것입니다.
제사장의 일행이 기브아에 이르렀을 때에 영접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나그네를 대접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무도 제사장의 일행을 대접하지 않는 그 현실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환영하는 자가 없었던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형식적인 종교인들로 타락한 성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으나 문전박대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이 시대의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영접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왕이 된 자들은 그 입으로 주여 주여 하지만 말씀에는 전혀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있으나 마나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나를 찾아 세상까지 오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