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적인 자녀지도 (039) 제1장 참된 가정 제4절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4) 가족 중에 좋은 사람이란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그 정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나에게서 찾을 것이냐,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그런 문제가 제기된다구요. 내가, 내가 결정하느냐, 전체가 결정해야 되느냐? 이런 문제가 문제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전체 분위기를 중심 삼고 이것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보다 가치가 있고 좋은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나온다구요.
내가 잘생겼다고 할 때는 말이예요, 눈도 잘생기고 코도 잘생기고 입도 다 잘생겼지만 손가락 하나 요렇게 됐다, 없다 할 때는 어떻게 돼요? 어떻게 되겠느냐구요? 손을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권한은 없습니다. 요걸 감추려고 해요. 손가락을 감추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모든 몸 전체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전체의 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공인된 기반 위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전통적인 이런 기준이 완전한 기반을 대표한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그것을 선이라고 할 수 있고, 좋다고 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내가 우리 집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다.' 그럴 수 있지요? 아버지 어머니는 나를 좋아하지만, 누나가 바라볼 때는 '저저-, 이놈의 자식 언제나 짖궂고 말이야, 욕심쟁이고…' 이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 집안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내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제일 좋다.'는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구요. 우리 집 전체가 좋다고 하는 주장을, 결정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부정 하지 못해요.
자, 그러면 우리 엄마로부터 전체 열 식구가 있고, 또 식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거기에서 좋다고 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좋게 해줄 수 있는, 보다 높은 차원을 지닌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좋다'는 결정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구요. 거기에서, 공적으로 선하고 좋다고 공인받을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이냐? 이런 문제가 벌어진다구요.
희생과 봉사, 이것이 절대 필요해요. 그것이 필요하긴 필요한데, '희생과 봉사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와 전체 식구가 다 함께해야 된다.' 그게 좋지요?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다 이거예요. 「아닙니다.」 어떻게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예요? 「내가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요.」 내가, 내가 하겠다는 사람이예요. (105-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