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단임, 대통령 無책임제…인간성 유지하는 사람 없다 (94)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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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YS) 대통령은 1993년 2월 25일 출범하는 새 정부의 국무총리로 황인성 의원을 발탁했다. 황 의원의 총리 임명은 나의 추천에 의한 것이었다. 전북 무주 출신인 황 총리는 73년 내가 국무총리를 할 때 비서실장이었다.
1992년 대선을 넉 달 앞둔 8월 20일 민자당 대통령 후보인 김영삼(YS·뒤) 대표와 김종필(JP) 최고위원이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노태우 대통령의 사돈 기업인 선경그룹이 발표되자 YS 집무실에서 대책을 논의한 뒤 헤어지고 있다. YS 집권 뒤 JP는 그 밑에서 민자당 대표를 지내다 95년 2월 9일 탈당했다. 중앙포토
일처리가 치밀하고 원만한 사람이다. 김 대통령은 92년 당 대선 경선과정에서 내가 자기를 지지해주겠노라고 결심을 밝히자 크게 기뻐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나는 박정희기념관 건립과 국정의 내각제적 운영을 요청하면서 당 출신을 국무총리로 써달라고 했다. 그는 문서라도 써줄 듯이 흔쾌히 약속했다. 그러나 YS는 대통령이 된 후 황 총리를 임명한 것 외에 나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건립하긴커녕 박 대통령의 업적을 부정하는 언행을 되풀이했고, 내각제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보다 오히려 독단적 대통령제를 강화했다. 김영삼 대통령과 주례회동을 하다 보면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 세계에 빠져드는 경향을 보였다. 내 의견을 듣는 것은 그때뿐이었고 혼자서 하는 얘기가 점점 많아졌다.
황인성 전 국무총리(1926~2010)
대통령은 군(軍)과 정보, 사정(司正)권력을 틀어쥐고 행정부의 전권을 행사한다. 또 집권당 총재라는 위치에서 국회를 움직이며 대법원장 임명권 등으로 사법부에까지 미묘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니 누구든 대통령이 되면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이다. 게다가 절대 권력자 앞에서 그의 생각에 거스르는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다 옳다는 독선과 독단에 빠지기 쉽다. 청와대에 들어가면 사람이 변한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