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최초의 이양선(異樣船)은 87t급 영국 해군의 탐사선 프로비던스호다. 이 배는 1797년(정조 21)10월 13일 정오 무렵에 부산 오륙도 부근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들을 따라 용당포에 닻을 내렸다. 물과 식료품을 구하기 위함인데, 고깃배를 따라가면 마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무작정 따라 온 것이다.
가뜩이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은 해적이요, 나가는 것은 역적으로 보는 이른바 해금정책(海禁政策)을 실시하고 있는 마당에 난데없이 이양선이 기항을 했으니 부산포는 봉수대에 연기를 피우는 등 온통 난리였다.
9일간 부산포 내항 탐사
부산항 항박도 최초 제작
英 왕자, 입항 200돌 맞아
신선대에 기념비 제막
다음 날 오후 이 지역의 수장 동래부사 정상우가 달려와서 상황을 살피고 돌아갔고, 그 다음 날에는 이 소식을 접한 삼도통제사 윤득규도 소금에 절인 생선, 쌀, 해초 등을 선물로 주면서 빨리 부산포를 떠나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윌리엄 로버트 브라우톤 함장은 나무와 물 그리고 신선한 식료품이 필요하다는 의사표시를 했으나 쉽게 먹혀 들지를 않았다.
정조실록에는 그 당시의 상황을 "통역관을 시켜 그들에게 국호와 표류하게 된 연유를 물어보았는데 한어, 청국어, 왜어, 몽고어를 모두 알지 못했다. 붓을 주어서 쓰게 하였더니 모양새가 마치 구름과 산을 그린 그림과 같아서 알 수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무도 영어를 몰랐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브라우톤 함장은 틈틈이 눈치를 보아가며 부산포 내항의 탐사활동을 펼쳤고, 26종의 식물명과 우리말 38개 단어를 채록해 가는 한편 '조선(CHOSAN)항'이란 이름으로 된 부산포 항박도를 최초로 그렸다.
9일째 되는 날 브라우톤 함장은 쾌청한 날씨 속에 주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아침 일찍 출항했다. 브라우톤 함장은 틈틈이 탐사할 때마다 갖고 싶은 듯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던 감시병에게 망원경을 선물로 주고 떠났다. 그리고 수많은 용당포 주민들도 기쁜 마음으로 근처 산으로 올라가서 프로비던스호가 출항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브라우톤 함장은 1804년 런던에서 그동안 항해한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북태평양 항해기를 1, 2부로 나누어 출판했는데 용당포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2부에 수록했다.
훗날 이 항해기가 조선을 찾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1997년엔 영국의 앤드루 왕자가 부산에 와서 프로비던스호 부산항 입항 200주년, 한국과 영국의 교류 200주년을 기념해 신선대 정상에 기념비를 제막하고 돌아갔다. 김 진 기자 jin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