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2월 8일 (목) 쾌청 –23세-
청년부 집합 ― 고이와에 있는 I씨 댁. 7시, 종교혁명의 젊은이 14명이 용약하여 스승의 슬하에 모였다.
엄숙하다. 약동하고 있다. 오늘 밤의 역사적 회합은 실로 3시간 이상이나 계속되었다. 모두 진지하다.
마지막 〈삼대비법품승사〉 대강의에 마음은 맹렬하게 타올랐다.
말법, 화의(化儀)의 광선유포가 무엇인지 그 정의(定義)를 시사해 주셨다.
다음에 《영원의 도읍》에 대한 감상을 한 사람씩 발표했다.
우리에게는 크게 나누어 세 종류의 혁명이 있다.
즉 정치혁명, 경제혁명, 종교혁명이다.
지금 이 책은 메이지 유신과 같은 정치혁명이 되리라 생각한다.
공산혁명은 경제혁명이다. 우리들이 단행하는 혁명은 그들보다 본원적인 종교혁명이다. 즉 진실한 평화혁명이며 무혈혁명이라고.
대략적인 감상을 이야기했다.
오늘 모인 14명이 10년 후, 1961년 2월8일에는 어떤 존재로 되어 있을까. 기원한다,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기를, 건재한 모습으로 건투하고 있기를. ―
추운 길, 추운 차 안에 앉아 U씨 등과 함께 집으로.
12시 40분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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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2월 8일 (일) 쾌청 –25세-
날씨 양호. 봄철의 향기와 빛을 느끼고 있다.
다이세키사(大石寺), 등산 참예. ― 선생님의 사모님과 함께.
당일 코스. 7시 36분 도쿄발, 하마마쓰 행.
선생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 학회의 장래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 절실하다.
선생님, 부디 장수하시기 바랍니다.
내 몸 또한 좋지 않다.나는 젊다. 제육천의 마왕에게 이길 것이다.
차 안. 지쳐서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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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2월 8일 (화) 비운 뒤 흐림 –27세-
평범한 하루였다.
결코 거만함 없이, 사회에 진력해야 할 나의 임무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반성.
내일부터 한층 더 긴장한 마음으로 만사를 처리해 가자.
타성과 건설, 의무와 권리, 소극적과 적극적. 그리고 규율과 방종, 근성과 무기력.
위인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은 어디가 얼마나 뛰어났는가. ― 결론은 자기 자신을 이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전진했다는 것이다.
一. 교학을 철저하게 할 것.
二. 독서하여 미래의 양식으로 할 것.
三. 자기 건설을 항상 잊지 말 것.
6시, 본부, 부대장 모임. 정말 좋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지도를 하고 싶다.
회장실에서 선생님께 T정공(精工)의 ‘문화선반’ 일로 심하게 꾸중을 들었다. 어쩔 수 없다. 벗을 돕고 지키기 위해서였다.
본존님께 부끄럽다.
돌아오는 길에 S씨 댁으로. S씨가 너무 으스대서 질려버렸다. 참으로 난처한 일이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사람은 우쭐해하는 것일까. ―
아무도 없는, 허전한 나의 집으로.
귀가, 12시 조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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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2월 8일 (토) 흐림 –30세-
오사카에서 급행을 타고 히메지로.
① 지도회, ② 반장회, ③ 지구부장회
처음 갖는 지도회라서 혼신을 다했다.
“모두, 자신감이 넘친다고 합니다.”라고. 기쁜 일이다.
하지메 성(시라사기 성)을 견학했다.
‘옛날, 겐페이 시대. 안도쿠 천황과 함께 도망치던 여인들의 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름답고 가련한 시라사기(백로) 성. 그 위용은 이내 싸움터가 아니라, 시정(詩情) 어린 모습으로 생각된다.
덴쇼 시대의 히데요시, 게이초 시대의 데루마사, 겐나시대의 혼다, 간에이 시대의 마쓰다이라, 간엔 시대의 사카이 다다유키 ··· 무사들의 꿈, 그 흔적. 주인 없는 시대의 두려운 추이(推移).
히메지에서 1박. 늦게까지 잠 못 이뤘다. 가슴속으로 많은 것이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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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2월 8일 (월) 맑음 –32세-
아침 6시 조금 전, 가나자와 도착.
오전 내내 여관에 있었다. 어깨와 목이 많이 아팠다.
오후에, 조사에서 강사로 올라오는 교학부 승격 시험 실시.
오후에 겐로쿠 공원을 천천히 거닐었다. 뒷산을 돌아, 하쿠산(白山)의 웅대하고도 밝고 수려한 경관에 시를 읊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에다(前田) 영주의 당시 실세(實勢)가 어느 정도였는지 깊이 실감했다.
지구부장 댁에서 반장회. 너무 피곤하다.
일단, 조금 일찍 여관으로 돌아왔다.
저녁 6시부터 가나자와 대회.
한층 비약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장소는 가나자와농업회관 4층. 참석 인원 2000명.
〈여설수행초〉 강의.
말법의 법화경의 행자, 아니 말법의 본불님이신 니치렌 대성인의 생명이 맥맥히 흐르고 있다.
두렵고도 기쁘도다. 대성인의 제자이기에.
호쿠리쿠에 광포의 숨결이 맥동한다. 도다 선생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
암울했던 호쿠리쿠였다. 이런 호쿠리쿠가, 묘법의 힘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인간혁명의 실증을 보이고 있다.
확신은 더더욱 깊다.
‘묘법을 이기는 병법은 없다.’
최근, 나를 이용하려는 자들이 많은 것 같다. 참으로 곤혹스럽다. 나도 반성해야만 한다.
이용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실로 두렵다. 천박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의연하게 나아가자. 책임자답게 나아가자.
명장답게. 공명하게 나아가자.
불법을 커다란 기준으로 삼아 나아가자. 뒤를 돌아보지 말고.
젊은 날의 일기 (2월 8일).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