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소싯적 고향 마을에
설통을 처마밑에 놓아 한봉을 치던 집안 아저씨가 계셨지요.
초겨울이면 솔가지 잘라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피워 벌을 죄다 몰아내고는
나무 주걱으로 벌집을 긁어내어 꿀을 뜨곤 하셨습니다.
꿀풍년이 들면 기분 좋은 아저씨
놋주발로 한 가득씩 꿀을 퍼주셨고
꿀짜고 남은 밀납 찌끄러기를 가마솥에 물 약간 붓고 고으면
위에는 밀납이 떠오르고 밑에는 꿀이랑 화분이 녹은 물이 고였습니다.
아저씨는 그것을 "벌똥꾸녕 씻은 물"이라고 부르셨지요.
종재기에 한 가득씩 떠서 먹던 그 맛 때문에
자연스레 꿀벌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아이가 꿀맛을 알았으니
어찌 그 달콤함을 잊을 수가 있겠는지요.
놋주발에 받아온 진꿀은 집안에서 두루 쓰는 약꿀이었습니다.
속병에도 쓰고, 종기에도 바르고, 상처가 나면 응급약으로도 썼습니다.
흥부네 집안처럼 올망졸망 많은 자식들이
행여 약꿀에 숫가락을 들이밀까봐 엄니는 늘상 주의에 주의를 더하셨습니다.
집안 악동 중의 악동이었던 한 녀석
기어이 말통을 엎어놓고 올라서서 까치발을 짚고 시렁위의 놋주발을 훔쳐내고야 말았지요.
한 입만 먹고 살짝 덮어놓겠다던 결심이
그 향기롭고 달콤한 유혹에 맥없이 허물어져 버립니다.
두 수저 먹고나니 세 수저 먹게 되고....
놋주발 속의 내용물은 결국 눈에 띄게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완전 범죄를 꾀한다는 꼼수에
속에 덮었던 한지를 원 모습대로 여며 덮고
끈을 감쪽같이 동이고 주발 뚜껑을 씌우고 원래 있었던 시렁 위 제자리에 얹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속이 아프고 뒤틀리기 시작하는 거였습니다.
그 때는 못먹던 시절이라 그런지 아이들도 속병이 많았습니다.
(아마 그래서 일거라고 짐작됩니다만)
약한 속에 진한 꿀이 들어가자 속이 쓰리고 아파와서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배를 쓸어안고 방구석에 새우처럼 구부리고 옆으로 누워서 속앓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님들은 금방 알아차립니다.
밖에서 들어오신 어머니가
아야~~너 왜그래...너 왜그래...많이 아픈게냐??? 묻고 또 물으시지만
죄많은 불효자식(?)은 자기 죄를 알기에 할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악동 녀석은 졸지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답니다.
꿀 훔쳐먹은 불효자는 저였구요.
생꿀을 먹은 효과인지는 몰라도 그 후론 속앓이 한번 않고 건강체질로 살고 있고요.
지금은 다행히 훔쳐 먹지 않고도
실컷 먹고 맘껏 팔만큼 꿀을 만드는 양봉가가 되어 있으니 행복할 따름입니다.^^
(나중에 혼나지 않았냐구요?
부모님이 다 아셨지만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 주셨습니다.
지금은 그 보답으로 정말 일년내내 자시고도 남을만큼 꿀을 보내드리고 있답니다. ^^)
첫댓글 잼나는 이야가 잘보고 갑니다.
꿀 같은 나드향님의 자서전적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벌 똥구녕 씻은 물'이라도 먹어 봤으면 그리고 벙어리가 되어 봤으면...ㅋㅋㅋ
좋은 꿀 많이 따시고 즐탁하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제가 살던 시골에 하순에서 벌꿀 파시는 아주머니가 가끔 오시는데...
오실때마다. 우리집에서 꿀을 팔고 주무시고 가기도 합니다.
추억 그때 벌꿀을 많이 먹었던 기역이 납니다.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