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이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찾았다. ‘용눈이오름’을 파노라마처럼 담아낸 사진에 감동했다. 이후로 사진작가가 수없이 올랐다는 용눈이오름은 내 그리움을 불러내는 또 하나의 자리가 되었다.
이번 제주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마음을 정했다. 올 때마다 계획과 달리 올레길에 빠진 발길이 쉬 돌려지지 않아 용눈이오름은 다음으로 미루곤 했다. 오름은 용이 누워 있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분화구가 용의 눈처럼 보인다고 하여 ‘용눈이오름’이라 한다. 김영갑 씨는 그곳에 움막을 짓고 추위와 배고픔을 참아내며 사진을 찍었다. 사계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세찬 바람이 불거나, 뙤약볕이 쏟아질 때도 자연이 연출하는 순간 포착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의 열정적인 생을 느껴보고 싶은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오름의 낮은 곳에는 무덤들이 즐비하다. 현무암으로 쌓은 담들은 어릴 때 보았던 조각 밥상보 같다. 순환 버스에 탑승한 해설자는 공동묘지가 명당이라고 소개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기저기 삶과 죽음이 가까이하고 있다. 양지바른 곳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 게다가 관광객들은 망자가 외롭지 않도록 시시때때로 이곳을 찾아온다.
가파르게 보이는 것과 달리 완만하게 오를 수 있다. 입구에서 올려다본 오름은 나무가 없다. 부드러운 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노출된 능선의 곡선이 매혹적이다. 마치 옆으로 누워 있는 여인의 풍만한 누드 형상 같다. 사진작가의 예리한 눈길이라면 충분히 육감적인 여인의 몸매에 홀렸을 것이다.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으리라. 또 다른 방향으로 본다. 오름의 두 봉우리가 젖이 불어 있는 봉긋한 젖가슴 같다. 외로움에 지친 작가는 이곳에서 포근한 엄마 품에 안긴 듯 편안함도 누렸는지 모른다.
밥벌이가 되지 않는 일에 매달려 영혼을 바치는 사람들이 많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괴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다른 이상을 위해 꿈꾼다. 그것을 위해 정신적 육체적 고통도 감수한다. 먼저 행동하지 않으면 꿈은 그냥 꿈일 뿐이다.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이룰 수 있는 궁극의 목적이다. 열정으로 뭔가에 미쳐서 날뛰며 결국 원하는 이상을 이루어 낸다면 생에 최고의 행복이 되겠다. 그 순간을 누리지 못하고 기막힌 세월을 견뎌내다가는 육신이 지쳐 요절한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용눈이오름의 정상에 선다. 환상적인 풍광이 아득하게 펼쳐있다. 사방으로 탁 트인 곳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보이는 한라산이 엄마라면 가까이 보이는 작은, 오름들은 한라산의 어린 자식들이다. 오름들이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평화롭게 놀고 있는 듯 장관이다. 먼저 다녀왔던 성산 일출봉과 우도가 보인다. 멀리서 바라보니 경이롭기만 하다.
용눈이오름에서 김영갑 작가의 시선을 탐닉한다. 순간 포착을 위해 치열하게 생을 살았던 곳이다. 그가 많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행여 내 발이 작가의 발자국 위에 포개질지도 모른다. 어디쯤에서 카메라를 세우고 작품의 각도를 조절했을까. 외로움과 배고픔을 참아내며 순간 포착을 기다렸던 자리는 어디쯤일까. 작품을 잡아내었던 거친 바람은 지금은 어디에서 이리로 오고 있을까. 이곳저곳의 피사체가 되었을 풍경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한순간도 같은 풍경을 보여주지 않는 오름이다. 철 다라 조석으로, 방향과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 변덕스러운 여자의 마음 같다. 그러기에 작가는 더욱 요사스러운 여인에 집착하듯 했나 보다. 놓칠까 하는 조바심도 있었을 게다. 원하는 순간을 잡으려는 다급한 마음에 숱한 애간장도 끓였으리라.
예술가의 곁에 있는 사람은 죽을 만큼 힘들 때가 있다. 그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오붓한 가정을 꾸리지도, 심지어 부모 형제의 사랑까지도 외면했다. 그에게 사진 찍기는 평을 받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오직 작가의 삶의 반영이었을 뿐이다. 사진에 미친 그에게 세상과의 타협은 없었다. 소중한 생명의 시간도 소모했다. 그러니 당연히 모두가 젊은 나이에 떠난 그를 안타까워하며 슬퍼한다. 그는 제주도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특히 바람을, 그의 사진 속에 담긴 제주의 모든 풍경에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김영갑 작품에 매혹당하는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그는 예술혼으로 살아서 내색할 것이다.
한때는 주어진 삶의 조건이 힘들어 느긋한 일상을 원했다. 이제 그런 일상이 주어졌건만 느긋함도 지나치니 습관이 된 듯하다. 한편에는 내 글에 시간을 축낸 게을렀던 문장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자유로운 일상을 벗어나 애써보는 집착이 필요하다. 글쓰기에 매달리고 또 매달리려 한다. 오늘 용눈이오름에서 김영갑 작가님의 포기 없는 정신을 배운다. 바람도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용눈이오름에는 작가의 인간적 고뇌와 예술혼이 머물고 있다. 풍경마다 절절하고 애틋하다. 오름길은 지금도 소소한 찬 기운이 느껴진다. 거친 제주 바람을 견뎌내느라 키를 키우지 못한 한 그루 작은 소나무를 본다. 저 나무도 작가의 몇 컷의 작품이 되었던 멋진 날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늦가을, 바람에 춤추었던 억새들도 이미 힘을 잃었다. 루게릭 병마로 야위어진 작가의 모습처럼 처연하게 보여 애잔하다. 겨울로 치달으며 슬슬 찬 기운을 풍겨낸다.
용눈이오름에 바람이 헤집고 지나간다. 그는 죽지 않았다. 바람으로 살아있다. 그의 긴 머릿결이 야생마의 갈기처럼 바람에 휘날린다. 무거운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오름의 능선 길로 걸어오고 있는 그가 보인다.
용눈이오름 바람 앞에 서서 한 컷의 피사체가 되어본다.
첫댓글
작가님께선 제주도엘. 자주가시나 봅니다.잘읽고 나갑니다.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