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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선교를 위한 동기와 준비
(11월 11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25분)
TMI 실천해 보세요
81. 장보기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세요.
82. 이웃 어르신들의 집수리를 도와주세요.
99. 길거리 청소의 날을 개최하세요.
연구 범위: 눅 24:1-12, 눅 24:36-49, 행 1:12-26, 히 10:24, 25, 행 2:1-41, 고전 11:1
기억절: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 24:44)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5-18).
놀라운 말씀이다. 거짓된 마음이든 진실한 마음이든 그리스도는 전파된다.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동기는 이기적인 야망이나 시기, 다툼이 아니라 사랑과 진리에서 비롯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동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선교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겠는가? 이번 과에서 우리는 초대 교회에 일어났던 몇 가지 사건들을 통해 주어진 선교의 핵심적인 요소에 대한 지침을 살펴볼 것이다.
TMI Time*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을 말씀의 토대 위에 굳게 세우셨다.
느끼기: 말씀은 제자의 실제 삶 가운데 적용되고 실천될 때에 능력있게 전해진다.
행하기: 말씀 가운데 거하고 말씀에 조화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선교에 동참한다.
TMI 안으로 : 안교 소그룹이 함께 서로를 돌보고 연합함
1.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합니다.
2. 출석과 공부를 확인하고 안교헌금을 드립니다.
3. 결석자와 구도자를 확인하고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TMI 위로
1. 인생의 경험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준비시킨다고 느낀 적이 있었습니까?
2.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 돌아와 소식을 전한 동기는 무엇입니까?(눅 24:7-9)
3.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어떤 이유에서입니까?(눅 24:44)
4. 제자들이 성령의 부어주심을 기다리는 기간은 어떤 의미가 있었습니까?(행 1:4)
5. 성령의 부어주심이 선교에 있어서 요긴한 이유는 무엇입니까?(행 2:37)
6. 초대교회의 제자훈련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까?(행 2:42-47)
7. 초대교회의 모본에서 발견하는 성공적인 선교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결론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일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제자들을 말씀의 토대 위에 세우시고 성령의 부어주심을 통해서 전하는 이와 듣는 이의 마음을 준비시키셨다. 신앙과 가르침은 교제를 통해서 실제적으로 보여지고 새로운 신자들은 삶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말씀 가운데 거하고 그것이 삶 가운데 적용되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선교의 비결이다.
TMI 밖으로 : 안교 소그룹이 함께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하고 봉사함
1. ‘내가 실천한 TMI 활동 : ( )’을 적고 함께 나눕니다.
2. 각자가 접촉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내용을 나눕니다.
3. 우리가 오늘 오후에 실천할 TMI 활동계획을 구체적으로 안내하고 함께 기도합니다.
11월 5일(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누가복음 눅 24:1-12을 읽어 보라.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눅 24:1-12)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이른 일요일 아침, 많은 여인들이 무덤으로 갔다고 누가는 말한다. 향유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들은 안식일이 끝난 다음 예수님의 시신을 살피러 갔을 것이다. 여전히 봉인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할지 몰랐던 그들에게 빛나는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자 그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그들에게 줄 소식이 있었다. 그들은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실제로 부활하셨다고 말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했다. 감격한 여인들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재빨리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로 가서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알게 된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었다.
여인들의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분명 경외감으로 가득 찬 놀라운 경험을 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경험을 "허탄한 이야기"라고 부르며 믿지 않았다. 베드로는 여인들의 말을 믿을 수 없어서 무덤으로 달려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베드로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다 믿지는 않는다. 베드로는 여인들의 말을 경청했지만, 그들의 경험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나중의 일이다. 처음에 베드로가 경험한 것은 빈 무덤뿐이었고, 그저 "그 된 일을 놀랍게 여"(눅 24:12)겼다고 누가는 기록했다. 베드로가 무덤에서 경험한 것은 여인들의 경험과는 달랐다.
베드로의 반응과 상관없이 이 여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자마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다.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행하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보다 더 큰 선교 동기가 어디 있겠는가?
(이어서) 우리 모두의 유일한 희망인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보다 더 큰 동기가 있을까?
물론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야말로 선교 동기의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나눌 수는 없지 않겠는가?
<교훈> 선교는 그분께서 나에게 행하신 일, 내가 발견한 예수님 안에 있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묵상> 하나님의 살아계시고 그분이 사랑하시는 것에 대해 당신이 경험한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적용>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이 소중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 경험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동기를 부여합니까?
<영감의 교훈>
빛을 나눠주려면 먼저 빛을 가져야 -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침례이다. 성령의 침례 없이는… 우리는 세상에 나가 외치기에 더욱 합당치 못하다… 모든 교사는 먼저 배우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전진하는 진리에 대한 증거들을 바라보기 위하여 그의 눈에 안약을 발라야 할 것이다. 만약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나누어주기 원한다면 먼저 의의 태양이신 주님의 빛이 그의 마음속을 빛으로 환하게 해야 할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411).
<기도> 내가 전하지 않는 것은 주님을 잘 모르기 때문인지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주님을 만나고 더욱 알고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기쁨을 홀로 가지고 있지 않게 하시고 나의 경험을 지혜롭게 나눌 수 있게 도와 주옵소서.
11월 6일(월)
예언적 기초
누가복음 24:36-49을 읽어 보라.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이것이 사도들에게 왜 그토록 전환기의 경험이었는가?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 24:36-49)
흥미롭게도 제자들도 처음에는 두려움 때문에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예수님을 보고 난 후 그분이 참으로 살아계신다는 확신을 얻은 후에도 “너무 기뻐서”(눅 24:41, 새번역)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 좋은 것이 아닌가 하고 느낀 적이 있는가? 그것이 바로 제자들을 포함한 다락방에 있던 사람들의 경험이었다.
만약 예수님이 이 경험만 남기고 떠나셨다면 그들의 믿음은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경험의 기억이 약해지고 잊혀지거나 심지어는 의문이 들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시고 직접 생선을 드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셨다. 대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보여주며 그리스도의 봉사와 사역에 대한 예언을 깨닫게 해주셨다. 즉 제자들이 그분과 함께한 경험이 아무리 대단했더라도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기를 원하셨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 24:44).
여기서도 우리는 전도와 선교에 대한 강력한 동기를 발견한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경험을 확고히 하려면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제자들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제자들의 세계관이 정치적인 지상 왕국이 아닌 죄에 대한 위대한 해결책과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로 전환되어야 했다. 복음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주권을 회복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복음은 사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보여주고 언젠가 세상의 모든 악이 멸망하고 땅이 새롭게 창조되며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했다.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러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눅 24:45) 하셨고, 제자들은 이 진리를 세상에 나누어야 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이르는 역사와 사건을 가리키는 예언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토대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이런 진리를 확고하게 이해할 때 우리는 충만한 동기를 가지고 선교를 위해 준비될 것이다.
<교훈>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견고한 말씀의 토대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진리를 밝히 이해할 때에 우리는 선교를 위해 더 잘 준비될 것이다.
<묵상> 마지막 때에 특별히 예언을 포함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선교를 위해서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적용> 예언의 말씀을 성실하게 연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가리키는 예언을 얼마나 잘 연구하고 있습니까?
<영감의 교훈>
말씀만이 신앙의 기초 - “그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확증을 받게 된다.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그대들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믿기 이전에 어떤 놀라운 감정의 변화가 있기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신앙의 기초로서 확고한 무엇을 가져야만 한다. 주님의 말씀은 그대들이 의뢰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의 말씀이며 주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가려 뽑은 기별 1권, 328).
<기도> 우리에게 주신 분명한 예언의 기초와 사명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마지막 때의 중대한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하고 연약한 종입니다. 말씀을 밝히 깨닫게 도와주시고 성령의 도움으로 이 시대에 갈 길을 분명히 걷도록 도와 주옵소서.
11월 7일(화)
기다림과 선교
누가복음 24장은 예수님의 승천으로 끝나지만(눅 24:50-53) 그것이 끝이 아니다. 누가가 계속해서 기록한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사명과 약속을 주셨고, 예루살렘에서 "위로부터의 능력"(눅 24:49, 행 1:4-8 참조)을 기다리라는 분명한 지시를 내리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실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이 오시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능력을 주실 것이었다.
사도행전 행 1:12-26을 읽어 보라. 120여 명의 남녀 제자들은 약속을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침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행 1:12-26)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한 사명을 주셨다. 그들은 세상을 향해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이었다. 제자들은 기다리는 동안 두 가지 방법으로 사명을 준비했다. 첫째, 누가는 그들이 합심하여 기도와 간구를 계속했다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각자가 그 사명을 받아들였다. 이것이 제자들이 기도로 연합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기도했는지 누가가 기록하지 않았지만 함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지혜와 힘,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우리를 위한 얼마나 귀한 모본인가?
제자들이 기다리는 동안 두 번째로 한 일은 선교를 위한 조직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유다는 예수님을 제사장들에게 넘겨준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열두 제자의 자리에 공석이 생겼고 제자들은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고 후임자를 선택했다. 사실상 제자들은 스스로를 정비하고 선교의 시작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베드로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아무도 그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모두가 그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를 보았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서 행동하시고 일하시며 움직이신다는 이해와 신뢰가 있었다.
(이어서) 그들의 기다림의 시간은 한가로운 시간이 아니었다. 그 시간은 목적과 선교 중심적인 행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의 대사명을 완수하는 데 도움이 될 성령의 부으심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연합하여 서로 격려하고(히 10:24, 25) 하나님의 성령을 구하며 기도해야 한다. 또한 우리 자신과 교회가 하나님의 우선순위인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는 일에 연합해야 한다.
<교훈> 예루살렘에서 약속한 성령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동안 제자들은 한 마음으로 기도했고, 사명을 이루려는 한 목표 아래 연합하고 준비하였다.
<묵상>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다리는 법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기다리는 동안에도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적용> 주님의 약속을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제자들처럼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해 보시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기다리는 자에게만 성령을 주심 - “오직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은혜와 지도를 기다리는 자들에게만 성령을 주신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들의 요구와 받아들임을 기다린다. 믿음으로 요구된 이 약속된 축복은 이 축복에 따르는 다른 모든 축복을 가져온다. 이 축복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하심을 따라 주시는 것이며 또한 그분은 받을 수 있는 역량대로 각 영혼에게 공급하시려고 준비하고 계신다”(시대의 소망, 672).
<기도> 기도하고 한 마음으로 연합한 초대 제자들의 모본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보고 들었던 예수님의 뜻과 음성을 저도 경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한 마음으로 분명한 약속을 바라보고 성령의 은혜로 연합하게 도와주옵소서.
11월 8일(수)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지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기도하고 있을 때 불의 혀 같은 것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임했다. 그들은 약속된 성령의 능력이 주어졌음을 깨달았다.
사도행전 2:1-41을 읽어 보라.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제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1-41)
제자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행 2:4)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각 사람에게 능력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 축복은 사도들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천국에 잘 맞는 이가 되기 위한 축복도 아니었고, 외국어로 사업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를 향한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믿지 않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각자의 은사를 사용하라고 부르신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주어진 은사를 사용하는 것보다 선교를 위한 더 요긴한 부르심이 무엇이겠는가?
예수께서 돌아가실 때에 예루살렘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메시아를 거부한 것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다. 성령께서 능력 있게 역사하시는 장면을 보라. 베드로는 너희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직고했다. 그들은 자신이 한 일을 깨닫고 찔림을 받아 사도들에게 고백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 2:37).
그러나 그들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이어서)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한 마음으로 성령과 조화를 이루며 협력할 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데 직접적으로 관여했었던 사람들에게까지 회개와 죄 사함이 전해졌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다. 이 기별이야 말로 우리를 선교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죄 많고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에 살고 있는 죄 가운데 무너진 타락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받았다. 우리의 임무는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을 증거 하는 것이다.
<교훈>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회개하여 그를 전하게 된 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다. 그것은 우리가 성령의 역사에 협력할 때 갖게 될 놀라운 경험이다.
<묵상>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계된 사람들에게도 구원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우리 자신의 영혼을 위한 어떤 격려가 됩니까?
<적용> 가능성이 없어 보이고, 아무리 나쁘게 보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회개와 용서도 그리스도로부터 -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그러나 믿음이 우리의 구주는 아니다. 그것은 아무런 공로도 주지 못한다.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잡고, 죄의 치료제인 그의 공로를 힘입는 손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회개조차 할 수가 없다 … 용서가 분명히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것처럼 회개도 그리스도에게서 온다”(시대의 소망, 175).
<기도> 주님 십자가 앞에 겸손히 자신을 내어 놓습니다. 구주를 못 박은 죄 어찌할 바 모르지만, 겸손히 주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용서하시는 주의 사랑을 전하게 하시고 부족한 종의 전도를 통해서도 죄인을 변화하게 하는 은혜를 보게 하옵소서.
11월 9일(목)
초대 교회의 모습
사도행전 2:41-47을 읽어 보라. 여기에는 초대 교회의 어떤 모습이 담겨 있는가?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1-47)
사도행전 2장은 초대 교회의 모습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로 마무리된다. 사도행전 2:41은 침례를 받은 사람이 "삼천이나 더하"였다고 말한다. 이 구절을 누군가가 계산을 해서 기존 신자 수에 새 신자 수를 더하여 전체 신자 수를 계산했다는 의미로 읽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이해일 뿐이다. 이 표현에는 새로 침례를 받은 신자들이 교회 공동체의 동등한 일원이 되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초기 기독교 교회의 핵심 기능은 제자 훈련이었다. 새 신자들이 교회에 들어오면 그들은 세 가지 방식으로 제자 훈련을 받았다. 첫째, 그들은 사도들의 교리와 교제를 계속해서 배웠다. "교리"와 "교제"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가르침"과 "동역"을 의미한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잘못된 믿음을 고쳐주고 사람들이 보고 경험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설명을 제공했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진리를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못한다. 오히려 진리를 삶에 적용하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교제 속에서 일어났다. 새 신자들은 영적으로 성숙하고 신앙의 기초가 든든한 사도들의 감독과 지도를 통한 직접적인 가르침은 물론 다른 신자들과의 일상생활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신중하고 계획적으로 제자 훈련을 받았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그것을 설명하는 책을 보거나 설교를 듣는 것보다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이 하는 것을 직접 보고 그것을 따라 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방법일 것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수님을 본받은 것처럼 그들도 자신을 본받으라고 가르쳤다(고전 11:1). 사람들이 당신과 당신이 경험하는 그리스도의 실재를 볼 수 있다면 이는 그들에게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함께해요: 당신의 삶에서 신자였으면 좋았을 것이라 바라는 누군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이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기를 매일 기도하십시오.
시작해요: 당신은 어떤 사람을 제자로 삼으며 예수님과의 관계로 인도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을 다른 신자들과의 교제로 초대할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교훈> 초대교회 제자훈련의 핵심은 “가르침”과 “동역”이었다. 가르침은 유익을 주지만 그보다 제자들을 직접 보고 따르는 동역을 통해 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영감의 교훈>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들 - “그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을 것이며 그들은 그분이 가지신 바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에 관심을 가진 사심 없는 자선심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분께서 영혼들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처럼 그들을 귀히 여겨야 한다. 그들의 동정심은 그들의 사랑하는 구주의 사업에 두어야 하며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그분의 피로 사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교회증언 2권, 663-664).
<기도> 이 땅에 오셔서 함께 먹고 주무시고 가르치신 예수님의 귀한 사랑과 모본에 감사를 드립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귀한 모본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사오니 주님 닮은 참 제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11월 10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우리의 선교 사업은 예수님께서 우리 삶에서 행하셨고 이루고 계신 일에 대한 깊은 사랑과 감사에 기초해야 한다. 다른 동기는 그 무엇이건 다 잘못된 것이다. 말씀 가운데 거하며 말씀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성공적인 선교와 전도의 열쇠이다.
“우리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결합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늘에서 오신 생명의 떡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를 먹어야 하며, 언제나 신선하고 풍성한 생수가 용솟음치는 샘에서 마셔야 한다. 우리가 항상 주님을 우리 앞에 모시고, 마음으로부터 그분에게 감사와 찬송을 돌린다면 우리의 신앙 생애는 늘 새로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형식이 될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당신의 오묘한 뜻을 개인적으로 말씀해 주실 것이며 우리는 자주 예수의 임재로 평안과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가 에녹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가까이 임하실 때에 우리의 마음은 뜨거워질 것이다. 이것이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생애에 나타날 때에 그의 생애 가운데는 검소(儉素)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자기를 낮추는 정신이 나타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일들이 그가 교제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가 예수와 함께 있다는 사실과 또 그분을 배워왔다는 사실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실물교훈, 129).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생애에는 자라나는 일도 없고 열매 맺는 일도 있을 수 없다.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였다면 그대는 자신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그대가 그리스도의 정신 곧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기심 없는 사랑의 정신과 그들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정신을 받아들일 때 그대는 자라나게 되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실물교훈, 67).
토의를 위한 질문
1. 시기, 다툼, 이기적인 욕망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다는 빌립보서의 바울의 말을 어떤 의미로 이해하는가? 우리 자신이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2.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을 개인의 삶에서 경험하고 있는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에 대해 진실하고 정직하게 전할 수 있는가? 그대의 솔직한 답은 무엇인가?
3. 그대가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 것은 어떤 경험이었는가? 그런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전반적인 신앙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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