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立秋)의 나빌레라
정현수
쓰르라미 우는 억척스럽게 뜨거운 입추立秋의 늦여름
누르스레 호박잎 물들어 갈 때 어느덧 하나 둘 떨어지는 낙엽이 참 오묘하다
풀 먹인 모시 적삼은 배짱이 우는소리에 마냥 뻣뻣하기만 하다
지 맘대로 하는 고온이 와 다습이는 호불호가 갈리는 듯 시원이를 시기한다
빨간 고추는 따가운 햇살 아래 아주아주 맵게 여물어 가고
함박 웃는 접시꽃은 더위가 맘에 드는 듯 뜨거운 마음이 꾸밈없다
빨간 장미는 고추잠자리와 왈츠를 추고 처염한 능소화는 혹서로 사랑을 잃어버렸다
장미와 능소화, 운명 같은 사랑과 슬픔이 함께하듯 고이 접어 나빌레라다
잔 바람에 살살이 꽃도 들판에 입추立錐에 여지없이 살랑살랑 춤춘다
그것은, 그 분위기는 스스로를 밝게 비추어 함께 어울리는 친밀감을 나눈다
두견새는 녹음 뒤에 숨어 멀리 가버린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돌아오지 않을 사랑에 어설픈 더위에 숨어 빛바랜 지난 추억을 노래하고 있다
촉촉한 설렘을 전해주는 엷은 보라가 스민 저 하늘
흐르는 작은 개울 물은 사랑을 흘려보낸 듯 무심하기만 하다
쓰르라미도, 능소화도, 두견새도, 흐르는 세월도,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그 자리에서 영원히 갇혀버렸으면 하는,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면 좋겠다
어정 7 월 건들 8 월 더위의 기승에 헛된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2024.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