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움과 채움의 축복
저는 집과 교회가 멀리 떨어져 있어 일주일 내내 교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주중에 샤워도 하고 반찬을 가지러 집에 들르고 있는데 그때마다 반찬 통을 깨끗이 비워 가지고 갑니다.
그런데 반찬을 담았던 플라스틱 통을 설거지하면 마음이 시원해지고 기뻐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좀 바보스러운 표현으로 하자면 뭔가 설레는 마음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빈 통에 담길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저에게 줄 반찬을 정성스럽게 준비하였다가 제가 집에 가면 그런 반찬을 싸서 주는데 그때 미묘한 설렘이 있었습니다.
한때는 비움에 대한 서글픔이 있었습니다.
내가 움켜쥐고 있던 것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그 허전함이 대단했습니다. 기껏 지어놓은 예배당을 떠나야 할 때가 그랬고,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좁은 곳으로 이사할 때가 그랬습니다.
건강에 대하여 자신을 가졌던 몸이 하나씩 무너지면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입에 마비 증상이 생겨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비움이 때로는 서러움으로 다가 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비움이란 채움의 축복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밤이 맞도록 길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기 위하여 애를 썼던 베드로의 배가 비어서 돌아왔을 때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만선(滿船)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처럼 비움은 겸손하게 주의 말씀을 담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말씀이 믿어지고 순종할 수 있으며 거둠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비움의 축복을 비우면 비울수록 더욱 선명하게 와닿고 있었습니다.
눅 5:4-6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