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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법(末法)에 와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는 자(者)는 남녀(男女)를 가리지 말지니라. 모두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출현(出現)이 아니고서는 부르기 어려운 제목(題目)이니라. 처음엔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불렀으나 이인(二人)·삼인(三人)·백인(百人) 이렇게 차례로 불러서 전(傳)하느니라. 미래(未來)도 또 그러하리라, 이 어찌 지용(地涌)의 의(義)가 아니리오. 더구나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때는 일본일동(日本一同)으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게 될 것은 대지(大地)를 과녁으로 하는 것과 같으리라.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에다 이름을 세우고 몸을 맡기시라.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허공(虛空)에서 이불(二佛)이 서로 수긍(首肯)하여 정(定)하신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오로지 말법(末法)의 영법구주(令法久住) 때문이니라. 이미 다보불(多寶佛)은 반좌(半座)를 나누어서 석가여래(釋迦如來)께 드릴 때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기(旗)를 꽂아 나타내시고,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 대장(大將)으로서 정(定)하신 일이 어찌 헛되리오. 이는 오로지 우리들 중생(衆生)을 성불(成佛)시키고자 하는 담합(談合)이시니라..
삼세각별(三世各別)은 있을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노라니 유배(流配)의 몸이지만 희열(喜悅)은 한량(限量)없도다. 기뻐도 눈물이오, 괴로워도 눈물이라.." 어서 1360쪽부처는 성인(聖人)의 근본(根本)이로다. 여러 경문(經文)을 보건대 부처의 탄생시(誕生時)에는 오색(五色)의 광기(光氣)가 사방(四方)에 가득 차서 밤이 낮과 같았으며, 부처가 입멸(入滅)하실 때에는 十二개의 흰 무지개가 남북(南北)에 걸쳐서 대일륜(大日輪)의 광명(光明)이 없어지고 암야(闇夜)와 같이 되었느니라.
니치렌(日蓮)은 이 도리(道理)를 안 지가 이미 이십일년(二十一年)이니라.
행복(幸福)하도다, 이 일생(一生)동안에 무시(無始)의 방법(謗法)을 소멸(消滅)하리니.
기쁘도다, 아직 견문(見聞)하지 못한 교주석존(敎主釋尊)을 시중듦이여,
원(願)컨대 나를 해(害)치는 국주(國主) 등(等)을 최초(最初)로 이를 인도(引導)하리라. 단(但) 이제 꿈과 같이 보탑품(寶塔品)의 뜻을 알았노라,
이 경(經)에 가로되 「만약 수미산(須彌山)을 들어서 타방(他方)의 무수(無數)한 불토(佛土)에 던져놓을지라도 또한 아직 이는 어렵다 하지 않느니라, 내지(乃至) 만약(萬若) 부처의 멸후(滅後)에 악(惡)한 세상(世上)에서 능(能)히 이 경(經)을 설(說)하는 것을 곧 어렵다 함이라」 등(等) 운운(云云).
부처는 성인(聖人)의 근본(根本)이로다. 여러 경문(經文)을 보건대 부처의 탄생시(誕生時)에는 오색(五色)의 광기(光氣)가 사방(四方)에 가득 차서 밤이 낮과 같았으며, 부처가 입멸(入滅)하실 때에는 十二개의 흰 무지개가 남북(南北)에 걸쳐서 대일륜(大日輪)의 광명(光明)이 없어지고 암야(闇夜)와 같이 되었느니라.
니치렌(日蓮)은 이 도리(道理)를 안 지가 이미 이십일년(二十一年)이니라.
행복(幸福)하도다, 이 일생(一生)동안에 무시(無始)의 방법(謗法)을 소멸(消滅)하리니.
기쁘도다, 아직 견문(見聞)하지 못한 교주석존(敎主釋尊)을 시중듦이여,
원(願)컨대 나를 해(害)치는 국주(國主) 등(等)을 최초(最初)로 이를 인도(引導)하리라.
나를 돕는 제자(弟者) 등(等)을 석존(釋尊)께 이를 고하리라,
나를 낳아주신 부모(父母) 등(等)에게는 아직 죽기 전에 이 대선(大善)을 바치리라,
단(但) 이제 꿈과 같이 보탑품(寶塔品)의 뜻을 알았노라,
이 경(經)에 가로되 「만약 수미산(須彌山)을 들어서 타방(他方)의 무수(無數)한 불토(佛土)에 던져놓을지라도 또한 아직 이는 어렵다 하지 않느니라, 내지(乃至) 만약(萬若) 부처의 멸후(滅後)에 악(惡)한 세상(世上)에서 능(能)히 이 경(經)을 설(說)하는 것을 곧 어렵다 함이라」 등(等) 운운(云云).
니치렌(日蓮)은 아마도 삼사(三師)에게 상승(相承)해서 법화종(法華宗)을 도와 말법(末法)에 유통(流通)함이니, 삼(三)에다 일(一)을 가(加)하여 삼국사사(三國四師)라 부름이라. 부처는 성인(聖人)의 근본(根本)이로다. 여러 경문(經文)을 보건대 부처의 탄생시(誕生時)에는 오색(五色)의 광기(光氣)가 사방(四方)에 가득 차서 밤이 낮과 같았으며, 부처가 입멸(入滅)하실 때에는 十二개의 흰 무지개가 남북(南北)에 걸쳐서 대일륜(大日輪)의 광명(光明)이 없어지고 암야(闇夜)와 같이 되었느니라. 그 후(後) 정상이천년간(正像二千年間)에 내외(內外)의 성인(聖人)이 나고 멸(滅)하였지만 이와 같은 대서(大瑞)는 없었느니라. 그런데 지난 정가연중(正嘉年中)으로부터 금년(今年)에 이르기까지 혹(或)은 대지진(大地震)이 있고 혹(或)은 대천변(大天變)이 마치 불타(佛陀)의 생멸(生滅)의 때와 같으니라. 마땅히 알지어다. 부처와 같은 성인(聖人)이 태어났느니라. 허공(虛空)에 걸쳐 대혜성(大彗星)이 나타났으니 어느 왕신(王臣)을 이에 비(比)하리요. 당서(當瑞)는 대지(大地)가 경동(傾動)하고 세번 진열(振裂)하였으니, 어느 성현(聖賢)이 이에 해당(該當)하리요, 마땅히 알지니라, 보통(普通) 세간(世間)의 길흉(吉凶)의 대서(大瑞)는 아니로다. 이것은 오로지 이 대법흥폐(大法興廢)의 대서(大瑞)로다.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弟子)는 제난(諸難)이 있을지라도 의심(疑心)이 없으면 자연(自然)히 불계(佛界)에 이르리라. 천(天)의 가호(加護)가 없음을 의심(疑心)하지 말 것이며 현세(現世)가 안온(安穩)하지 않음을 한탄(恨歎)하지 말지어다. 나의 제자(弟子)에게 조석(朝夕)으로 가르쳐 왔건만 의심(疑心)을 일으켜서 모두 버렸으리라. 어리석은 자(者)의 버릇이란 약속(約束)한 일을 필요한 때에는 잊어버리느니라.
개목초開目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234쪽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들은 겁쟁이로서는 할 수 없느니라.
이 법화경(法華經)의 본문(本門)의 간심(肝心)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는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의 공덕(功德)을 모아서 오자(五字)로 하였으니, 이 오자(五字) 내(內)에 어찌 만계(萬戒)의 공덕(功德)을 포함하지 않았겠느뇨.
이 구족(具足)의 묘계(妙戒)는 한번 가진 후(後)·행자(行者)가 파(破)하려고 해도 파(破)해지지 않으니, 이를 금강보기계(金剛寶器戒)라고 말한다
이 법화경(法華經)의 본문(本門)의 간심(肝心)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는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의 공덕(功德)을 모아서 오자(五字)로 하였으니, 이 오자(五字) 내(內)에 어찌 만계(萬戒)의 공덕(功德)을 포함하지 않았겠느뇨. 그러나 이 구족(具足)의 묘계(妙戒)는 한번 가진 후(後)·행자(行者)가 파(破)하려고 해도 파(破)해지지 않으니, 이를 금강보기계(金剛寶器戒)라고 말한다는 등으로 주장을 하여라.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은 이 계(戒)를 갖고 법신(法身)·보신(報身)·응신(應身) 등(等) 어느 것이나 무시무종(無始無終)의 부처가 되셨느니라
교행증어서(敎行證御書)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 1282쪽이금당(已今當)의 경문(經文)을 깊게 지키고·일경(一經)의 간심(肝心)인 제목(題目)을 나도 부르고 남에게도 권(勸)하니, 삼 밭 속의 쑥 먹줄친 나무가 자체(自體)는 곧지 않더라도, 자연(自然)히 곧아지는것과 같다. 경(經)과 여(如)히 부르므로 구부러진 마음이 없으니, 마땅히 알지니라, 부처의 마음이 우리들의 몸에 들어오시지 않으면 부르기 어려우니라, 또 타인(他人)이 넓히시는 불법(佛法)은 모두 스승에게서 배워 전(傳)한 것이라.
묘미쓰상인어소식(妙密上人御消息)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 1239~1240쪽부처가 귀자모신(鬼子母神) 십나찰녀(十羅刹女)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겠다고 맹세함을 칭찬하여 그대들이 법화(法華)의 수제(首題)를 갖는 사람을 수호(守護)하겠다고 맹세하는 그 공덕(功德)은 삼세요달(三世了達)의 부처의 지혜(智慧)도 역시 미치기 어렵다고 설(說)하셨느니라. 불지(佛智)가 미치지 않는 일이 무엇이 있으리요마는 법화(法華)의 제명(題名)을 수지(受持)하는 공덕(功德)만은 이를 모른다고 말했느니라. 법화일부(法華一部)의 공덕(功德)은 오직 묘법(妙法) 등(等)의 오자(五字)속에 들어 있느니라. 일부팔권(一部八卷)·문문(文文)마다 이십팔품(二十八品)이 생기(生起)는 다를지라도 수제(首題)의 오자(五字)는 동등(同等)하니라.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가마쿠라에서 44세에 술작 498쪽"부처의 마음이 우리들의 몸에 들어오시지 않으면 부르기 어려우니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의 마음이 우리들의 몸에 들어오시듯이 경지명합 함개상응 감응도교로 하나될 때 환희 중의 대환희의 남묘호렌게쿄 제목을 제대로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의 마음이 우리들의 몸에 들어오시지 않은 상태 즉 대어본존님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하나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환희 중의 대환희의 남묘호렌게쿄 제목을 제대로 정확하게 부를 수 없게된다는 것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안타까운 모습들은 근본적인 일념의 문제이기에 승려나 신도를 가리지않고 이상한 발음을 하거나 잠시도 집중을 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24시간 환희 중의 대환희의 위대한 불계의 생명상태를 유지하면서 어유명대로의 입정안국의 세계광선유포를 실현가기 위해서는 대어본존님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하나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이 어서말씀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되네요.
우리들이 어서말씀들을 항상 최우선해서 제대로 읽고 심간에 새겨야 하는 이유가 일체중생을 근본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세계광선유포를 제대로 실천해가기 위해서는 "타인(他人)이 넓히시는 불법(佛法)은 모두 스승에게서 배워 전(傳)한 것이라." 말씀대로 입정안국의 남묘호렌게쿄 제목을 타인들에게 넓히기 위해 스승에게서 제대로 배워 전(傳)해가야 하는 것입니다.제목 : "불지(佛智)가 미치지 않는 일이 무엇이 있으리요마는 법화(法華)의 제명(題名)을 수지(受持)하는 공덕(功德)만은 이를 모른다고 말했느니라."
법화(法華)의 제명(題名) : 묘호렌게쿄 남묘호렌게쿄
"법화일부(法華一部)의 공덕(功德)은 오직 묘법(妙法) 등(等)의 오자(五字)속에 들어 있느니라."
묘법(妙法) 등(等)의 오자(五字) : 묘호렌게쿄
"일부팔권(一部八卷)·문문(文文)마다 이십팔품(二十八品)이 생기(生起)는 다를지라도 수제(首題)의 오자(五字)는 동등(同等)하니라."
법화경 28품 각 품 마다 각각 수제(首題)의 오자(五字) 즉 묘호렌게쿄를 수제(首題)즉 제일 앞의 제목으로 함은 동등(同等)함.
우리들이 오직 어서말씀대로 대어본존님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하나되어 남묘호렌게쿄 제목의 행자답게 창제근본으로 실천하게되면 불지(佛智)가 미치지 않는 일이 무엇이 있으리요마는 법화(法華)의 제명(題名)을 수지(受持)하는 공덕(功德)만은 이를 모른다고 할 정도로 감히 부처의 지혜로써도 상상을 초월하는 우주대의 엄청난 크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 본문(本門)의 계(戒)를 넓히시면 반드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서(大瑞)가 있느니라. 소위(所謂) 정가(正嘉)의 지동(地動)·문영(文永)의 장성(長星)이 바로 이것이로다. 대저 당세(當世)의 사람들은 어느 종(宗)들에 본문(本門)의 본존계단(本尊戒壇) 등(等)을 홍통(弘通)하였느뇨. 불멸후(佛滅後) 이천이백이십여년(二千二百二十餘年)에 일인(一人)도 없다. 일본(日本)의 인왕(人王)·삼십대(三十代)·긴메이천황(欽明天皇)의 어우(御宇)에 불법(佛法)이 건너와서 지금에 칠백여년(七百餘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법(大法)이 이 나라에 유포(流布)하여 월지(月氏)·한토(漢土)·일염부제(一閻浮提) 내(內)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이 부처가 된다는 일이야말로 존귀(尊貴)하고 존귀(尊貴)하도다. 이전(已前)의 중(重) 말법(末法)에는 교행증(敎行證)의 세 가지 다같이 갖추어졌으니, 예(例)컨대 정법(正法)과 같다 등(等) 운운(云云). 이미 지용(地涌)의 대보살(大菩薩)·상행(上行)이 나오셨으니 결요(訣要)의 대법(大法) 또한 홍통(弘通)되시리라. 일본(日本)·한토(漢土)·만국(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은 금륜성왕(金輪聖王)이 출현(出現)할 선조(先兆)인 우담화(優曇華)를 만난 것이니라. 재세사십이년(在世四十二年) 및 법화경(法華經)의 적문(迹門) 십사품(十四品)에 이를 숨기고 설(說)하지 않으신 대법(大法)을 본문(本門) 정종(正宗)에 이르러 설(說)하여 나타내셨느니라.
교행증어서(敎行證御書)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 1282~3쪽이 법화경(法華經)의 본문(本門)의 간심(肝心)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는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의 공덕(功德)을 모아서 오자(五字)로 하였으니, 이 오자(五字) 내(內)에 어찌 만계(萬戒)의 공덕(功德)을 포함하지 않았겠느뇨.
그러나 이 구족(具足)의 묘계(妙戒)는 한번 가진 후(後)·행자(行者)가 파(破)하려고 해도 파(破)해지지 않으니, 이를 금강보기계(金剛寶器戒)라고 말한다는 등으로 주장을 하여라.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은 이 계(戒)를 갖고 법신(法身)·보신(報身)·응신(應身) 등(等) 어느 것이나 무시무종(無始無終)의 부처가 되셨느니라, 경문(經文)에 가로되 「어말법중(於末法中)·어후말세법욕멸시(於後末世法欲滅時)·수지독송(受持讀誦)·악세말법시(惡世末法時)·능지시경자(能持是經者)·후오백세중광선유포(後五百歲中廣宣流布)」라고, 이같은 문(文)의 뜻은 당시말법(當時末法)의 시대(時代)에는 법화경(法華經)을 갖고 믿어야 한다는 뜻을 설(說)하였다. 이러한 명문(明文)을 잘못 배워서 일본(日本)·한토(漢土)·천축(天竺)의 방법(謗法)의 학장(學匠)들이 모두 염불자(念佛者)·진언(眞言)·선(禪)·율(律)의 소승(小乘)·권교(權敎)에는 따라 행(行)하면서 법화경(法華經)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불법(佛法)에 미혹되어 있음을·알지 못하고·모습이 진실인듯 하니까 말하는 것도 틀림이 없으리라고만 믿고 있었으므로 생각지 않게 법화경(法華經)의 적(敵)·석가불(釋迦佛)의 적(敵)이 되시어 금생(今生)에는 기도(祈禱)하는 소원(所願)도 헛되고 수명(壽命)도 짧아지며 후생(後生)에는 무간대성(無間大城)을 주처로 하리라고 틀림없이 경문(經文)에 쓰여 있나이다.사람들의 의심을 개운하게 해 줄 만한 승려(僧侶)도 있기 어려우리라고, 법화경(法華經)의 사(四)의 권(卷)·보탑품(寶塔品)이라고 하는 곳에 육난구이(六難九易)라고 하는 중요(重要)한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지금 이 의심은 여섯가지의 난사내(難事內)이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만약 수지(受持)한다면 즉신성불(卽身成佛)의 사람이 되느니라, 이 법화경(法華經)에는 우리들의 신(身)은 법신여래(法身如來)·우리들의 마음은 보신여래(報身如來)·우리들의 행동은 응신여래(應身如來)라고 설(說)해 있으므로 이 경(經)의 일구일게(一句一偈)를 갖고 믿는 사람은 모두 이 공덕(功德)을 갖추나이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함은 이는 일구일게(一句一偈)이지만, 그러나 같은 일구(一句) 중(中)에서도 간심(肝心)입니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것만으로 부처가 되겠느뇨 라고, 이 의심은 가장 근본(根本)이며, 일부(一部)의 간요(肝要)이고 팔축(八軸)의 골수(骨髓)입니다.이 경(經)의 제목(題目)은 이해하지 않고 읽는다해도 큰 선근(善根)이 되어, 악인(惡人)도 여인(女人)도 축생(畜生)도 지옥(地獄)의 중생(衆生)도 십계(十界) 모두 즉신성불(卽身成佛)한다고 설(說)해져 있음은, 마치 물바닥에 있는 돌에 불이 있는 것과 같고 백천만년(百千萬年) 동안 어두운 곳에도 등(燈)불을 넣으면 밝아지듯이, 세간(世間)의 하찮은 일 조차 역시 이와 같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이 있는데, 하물며 불법(佛法)의 묘(妙)한 법(法)의 힘에 있어서랴, 우리들 중생(衆生) 악업(惡業)·번뇌(煩惱)·생사과박(生死果縛)의 몸이 정(正)·요(了)·연(緣)의 삼불성(三佛性)의 인(因)에 의(依)해서 즉(卽) 법(法)·보(報)·응(應)의 삼신(三身)으로 나타날 것은 의심(疑心)할 바 없느니라. 묘법경력(妙法經力)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고 전교대사(傳敎大師)도 석(釋)하셨느니라. 뜻은 법화경(法華經)의 힘으로는 뱀인 용녀(龍女)도 즉신성불(卽身成佛)했다고 하는 것이니라, 의심(疑心)하지 마시라. 상세(詳細)하게는 대면(對面)하였을 때 말하겠노라고 전(傳)하시라.
묘호니부인답서 妙法尼夫人答書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1402~3쪽무슨 까닭에 제목(題目)에 만법(萬法)을 포함(包含)하느뇨. 답(答)하되, 장안(章安)이 가로되 「대저 서왕(序王)이란 경(經)의 현의(玄意)를 서설(叙說)하고, 현의(玄意)는 문심(文心)을 서설(叙說)하며, 문심(文心)은 적본(迹本)보다 더함은 없느니라」 묘락(妙樂)이 가로되 「법화(法華)의 문심(文心)을 내놓고, 제교(諸敎)의 소이(所以)를 변(辯)하느니라」 운운(云云). 탁수(濁水)는 마음이 없어도 달빛을 받아서 스스로 맑아지고, 초목(草木)은 비를 만나 어찌 지각(知覺)이 있어서 꽃을 피우는고,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는 경문(經文)이 아니고 그 의(義)가 아니며, 오직 일부(一部)의 의(意)일 뿐이라, 초심(初心)의 행자(行者)는 그 뜻을 모를지라도 그러나 이를 행(行)하면 자연(自然)히 그 의(意)에 부합(符合)되느니라.
사신오품초 四信五品抄 미노부에서 56세에 술작 341~2쪽 별칭 : 本代法華行者 位並操心事제목 : 법화경일부(法華經一部)의 간심(肝心)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제목(題目)이외다. 조석(朝夕)으로 부르시면 틀림없이 법화경일부(法華經一部)를 진독(眞讀)하시는 것으로 되며, 두번 부르면 이부(二部) 내지 백(百) 번은 백부(百部)·천(千) 번은 천부(千部)·이렇게 불퇴(不退)로 부르신다면 불퇴(不退)로 법화경(法華經)을 읽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며칠전에 공부한 "법화경(法華經)의 간심(肝心)인 제목(題目)의 오자(五字)만을 홍통(弘通)하는 자(者)가 출래(出來)하리라(어서 910쪽)" 말씀이 생각나네요.
그런데 이 경(經)의 제목(題目)은 이해하지 않고 읽는다해도 큰 선근(善根)이 되어, 악인(惡人)도 여인(女人)도 축생(畜生)도 지옥(地獄)의 중생(衆生)도 십계(十界) 모두 즉신성불(卽身成佛)한다고 설(說)해져 있음은, 마치 물바닥에 있는 돌에 불이 있는 것과 같고 백천만년(百千萬年) 동안 어두운 곳에도 등(燈)불을 넣으면 밝아지듯이, 세간(世間)의 하찮은 일 조차 역시 이와 같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이 있는데, 하물며 불법(佛法)의 묘(妙)한 법(法)의 힘에 있어서랴,
우리들 중생(衆生) 악업(惡業)·번뇌(煩惱)·생사과박(生死果縛)의 몸이 정(正)·요(了)·연(緣)의 삼불성(三佛性)의 인(因)에 의(依)해서 즉(卽) 법(法)·보(報)·응(應)의 삼신(三身)으로 나타날 것은 의심(疑心)할 바 없느니라.
묘법경력(妙法經力)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고 전교대사(傳敎大師)도 석(釋)하셨느니라. 뜻은 법화경(法華經)의 힘으로는 뱀인 용녀(龍女)도 즉신성불(卽身成佛)했다고 하는 것이니라, 의심(疑心)하지 마시라."불지(佛智)가 미치지 않는 일이 무엇이 있으리요마는 법화(法華)의 제명(題名)을 수지(受持)하는 공덕(功德)만은 이를 모른다고 말했느니라."
법화(法華)의 제명(題名) : 묘호렌게쿄 남묘호렌게쿄
"법화일부(法華一部)의 공덕(功德)은 오직 묘법(妙法) 등(等)의 오자(五字)속에 들어 있느니라."
묘법(妙法) 등(等)의 오자(五字) : 묘호렌게쿄
"일부팔권(一部八卷)·문문(文文)마다 이십팔품(二十八品)이 생기(生起)는 다를지라도 수제(首題)의 오자(五字)는 동등(同等)하니라."
법화경 28품 각 품 마다 각각 수제(首題)의 오자(五字) 즉 묘호렌게쿄를 수제(首題)즉 제일 앞의 제목으로 함은 동등(同等)함.의(意)는 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신앙(信仰)하는 일행(一行)에 공덕(功德)으로서 오지 않음이 없고 선근(善根)으로서 움직이지 않는 일이 없다. 비유컨대, 망목(網目)은 무량(無量)일지라도 하나의 대강(大綱)을 당기면 움직이지 않는 그물코도 없고 옷의 실낱이 많을지라도 일각(一角)을 당기면 실낱으로서 오직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는 의(義)이니라. 그런데 문구(文句)에는 여시아문(如是我聞)에서 작례이거(作禮而去)까지 문문(文文)·구구(句句)에 인연(因緣)·약교(約敎)·본적(本迹)·관심(觀心)의 사종(四種)의 석(釋)을 만들었느니라. 다음에 지관(止觀)에는 묘해(妙解)의 위에 세우는 바의 관불사의경(觀不思議境)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이는 본각(本覺)의 입행(立行)이며·본구(本具)의 이심(理心)이니라, 지금 여기에 상설(詳說)하지 않겠노라, 기쁘도다, 생(生)을 오탁악세(五濁惡世)에 받았다 할지라도 일승(一乘)의 진문(眞文)은 견문(見聞)하게 되었느니라. 희련항사(熙連恒沙)의 선근(善根)을 쌓은 자(者)가 이 경(境)을 만나서 신심(信心)을 일으킨다고 설해졌느니라. 그대가 지금 일념수희(一念隨喜)의 신(信)을 다하니 함개상응(凾蓋相應) 감응도교(感應道交)는 의심할 바 없느니라.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가마쿠라에서 44세에 술작 500쪽제목 : 그 의(義)를 모르는 사람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면 해의(解義)의 공덕(功德)을 갖추느뇨 어떠뇨.
답(答)하되, 소아(小兒)가 젖을 빠는데 그 맛을 몰라도 자연(自然)히 몸을 이익(利益)케 하며, 기바(耆婆)의 묘약(妙藥)을 누가 변별(辯別)하고 이를 복용(服用)하리요, 물은 마음이 없지만 불을 끄고, 불은 물질(物質)을 태우는데 어찌 지각(知覺)이 있으리요.
묻건대, 무슨 까닭에 제목(題目)에 만법(萬法)을 포함(包含)하느뇨.
탁수(濁水)는 마음이 없어도 달빛을 받아서 스스로 맑아지고, 초목(草木)은 비를 만나 어찌 지각(知覺)이 있어서 꽃을 피우는고,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는 경문(經文)이 아니고 그 의(義)가 아니며, 오직 일부(一部)의 의(意)일 뿐이라, 초심(初心)의 행자(行者)는 그 뜻을 모를지라도 그러나 이를 행(行)하면 자연(自然)히 그 의(意)에 부합(符合)되느니라.기쁘도다, 생(生)을 오탁악세(五濁惡世)에 받았다 할지라도 일승(一乘)의 진문(眞文)은 견문(見聞)하게 되었느니라.
희련항사(熙連恒沙)의 선근(善根)을 쌓은 자(者)가 이 경(境)을 만나서 신심(信心)을 일으킨다고 설해졌느니라.
그대가 지금 일념수희(一念隨喜)의 신(信)을 다하니 함개상응(凾蓋相應) 감응도교(感應道交)는 의심할 바 없느니라.
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신앙(信仰)하는 일행(一行)에 공덕(功德)으로서 오지 않음이 없고 선근(善根)으로서 움직이지 않는 일이 없다.
비유컨대, 망목(網目)은 무량(無量)일지라도 하나의 대강(大綱)을 당기면 움직이지 않는 그물코도 없고 옷의 실낱이 많을지라도 일각(一角)을 당기면 실낱으로서 오직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는 의(義)이니라. "그대가 지금 일념수희(一念隨喜)의 신(信)을 다하니 함개상응(凾蓋相應) 감응도교(感應道交)는 의심할 바 없느니라."
함개상응(凾蓋相應) 감응도교(感應道交) : 함과 덮개가 빈틈없이 잘 맞듯이 또 구극의 불도인 환희 중의 대환희에 감응해서 즉시로 교류하듯 대어본존님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하나되는 것
"목숨은 실(實)로 일념(一念)에 지나지 않으므로 부처는 일념수희(一念隨喜)의 공덕(功德)이라고 설(說)하셨느니라."(어서 466쪽) 말씀처럼 우리들이 지금 일념수희(一念隨喜)의 신(信)을 다하니.. 즉 일념에 억겁의 신로를 다해 감사한 마음을 가득담고서 환희 중의 대환희의 일념으로 대어본존님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하나인 남묘호렌게쿄 제목을 제대로 정확하게 온정성을 다해서 불러가는 믿음을 다하니 "함개상응(凾蓋相應) 감응도교(感應道交)는 의심할 바 없느니라."로 되는 것입니다."그대가 지금 일념수희(一念隨喜)의 신(信)을 다하니 함개상응(凾蓋相應) 감응도교(感應道交)는 의심할 바 없느니라."
함개상응(凾蓋相應) 감응도교(感應道交) : 함과 덮개가 빈틈없이 잘 맞듯이 또 구극의 불도인 환희 중의 대환희에 감응해서 즉시로 교류하듯 대어본존님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하나되는 것
"목숨은 실(實)로 일념(一念)에 지나지 않으므로 부처는 일념수희(一念隨喜)의 공덕(功德)이라고 설(說)하셨느니라."(어서 466쪽) 말씀처럼 우리들이 지금 일념수희(一念隨喜)의 신(信)을 다하니.. 즉 일념에 억겁의 신로를 다해 감사한 마음을 가득담고서 환희 중의 대환희의 일념으로 대어본존님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하나인 남묘호렌게쿄 제목을 제대로 정확하게 온정성을 다해서 불러가는 믿음을 다하니 "함개상응(凾蓋相應) 감응도교(感應道交)는 의심할 바 없느니라."로 되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망목(網目)은 무량(無量)일지라도 하나의 대강(大綱)을 당기면 움직이지 않는 그물코도 없고 옷의 실낱이 많을지라도 일각(一角)을 당기면 실낱으로서 오직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는 의(義)이니라."
망목(網目) : 그물코, 그물망
일각(一角) : 한 귀퉁이 또는 한 부분
법화경 28품의 제목인 묘호렌게쿄 즉 남묘호렌게쿄 제목의 행자답게 창제근본으로 실천하게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면 멸(滅)하지 않는 죄(罪)가 있겠는가, 오지 않는 복(福)이 있겠는가. 진실(眞實)이고 심심(甚深)하니 이를 신수(信受)할지어다."(어서 497쪽) 처럼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결국(結局)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천진독랑(天眞獨朗)의 법문(法門)은 무익(無益)하니라. 조행(助行)으로는 사용(使用)할 것이로되, 정행(正行)에는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은 탑중상승(塔中相承)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칠자(七字)를 말법(末法)의 시(時)에 일본국(日本國)에 홍통(弘通)하니 이 어찌 시국상응(時國相應)의 불법(佛法)이 아니겠느뇨.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천진독랑(天眞獨朗)의 법(法)을 홍통(弘通)하여 정행(正行)으로 하려는 자(者)는 반드시 무간대성(無間大城)에 떨어질 것은 의심(疑心)이 없도다"비유컨대, 망목(網目)은 무량(無量)일지라도 하나의 대강(大綱)을 당기면 움직이지 않는 그물코도 없고 옷의 실낱이 많을지라도 일각(一角)을 당기면 실낱으로서 오직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는 의(義)이니라."
망목(網目) : 그물코, 그물망
일각(一角) : 한 귀퉁이 또는 한 부분
법화경 28품의 제목인 묘호렌게쿄 즉 남묘호렌게쿄 제목의 행자답게 창제근본으로 실천하게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면 멸(滅)하지 않는 죄(罪)가 있겠는가, 오지 않는 복(福)이 있겠는가. 진실(眞實)이고 심심(甚深)하니 이를 신수(信受)할지어다."(어서 497쪽) 처럼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천진독랑(天眞獨朗)의 법(法)을 홍통(弘通)하여 정행(正行)으로 하려는 자(者)는 반드시 무간대성(無間大城)에 떨어질 것은 의심(疑心)이 없도다. 귀하(貴下)는 연래(年來)의 권종(權宗)을 버리고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가 되셨으니 진실(眞實)로 시국상응(時國相應)의 지인(智人)이니라, 통틀어 나의 제자(弟子)들은 나와 같이 정리(正理)를 수행(修行)하시라, 지자(智者)·학장(學匠)의 몸이 되었어도 지옥(地獄)에 떨어지면 무슨 보람이 있을손가, 결국(結局) 시시염념(時時念念)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할지어다.
십팔원만초 十八圓滿抄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367쪽칭찬(稱讚)하는 자(者)는 복(福)을 안명(安明) 같이 쌓고, 비방(誹謗)하는 자(者)는 죄(罪)를 무간(無間)으로 열리라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는 비천(卑賤)하지만 수호(守護)하는 천(天)은 강(强)하니라.
예(例)를 들자면, 수라(修羅)가 일월(日月)을 삼키면 머리가 칠분(七分)으로 깨어지고 개는 사자(師子)를 보고 짖으면 창자가 썩으니, 지금 내가 보건대 일본국(日本國)이 이와 같도다.
또한 이를 공양(供養)하는 사람들은 법화경(法華經) 공양(供養)의 공덕(功德)이 있으리라.
설령 공덕(功德)을 쌓았다 해도, 진실(眞實)하지 않은 것을 공양(供養)하면 대악(大惡)으로는 되지만 선(善)으로 되지 않으며, 설령 마음이 어리석고 조그마한 것이라도 진실(眞實)한 사람에게 공양(供養)하면 공덕(功德)이 크니라.
하물며 깊은 뜻이 있어서 진실(眞實)한 법(法)을 공양(供養)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랴.전교대사(傳敎大師)가 석(釋)하여 가로되 「칭찬(稱讚)하는 자(者)는 복(福)을 안명(安明) 같이 쌓고, 비방(誹謗)하는 자(者)는 죄(罪)를 무간(無間)으로 열리라」 등(等) 운운(云云). 패반(稗飯)을 벽지불(辟支佛)에게 공양(供養)한 사람은 보명여래(寶明如來)가 되었고 흙떡을 부처에게 공양(供養)했기 때문에 후(後)에 염부제(閻浮提)의 왕(王)이 되었느니라. 설령 공덕(功德)을 쌓았다 해도, 진실(眞實)하지 않은 것을 공양(供養)하면 대악(大惡)으로는 되지만 선(善)으로 되지 않으며, 설령 마음이 어리석고 조그마한 것이라도 진실(眞實)한 사람에게 공양(供養)하면 공덕(功德)이 크니라. 하물며 깊은 뜻이 있어서 진실(眞實)한 법(法)을 공양(供養)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랴.
게다가 당세(當世)는 세상이 어지럽고 백성(百姓)의 힘이 약(弱)하니라. 여가(餘暇)가 없는 때이지만, 마음이 향(向)하는 바 산중(山中)의 법화경(法華經)에게 맹종(孟宗)의 죽순(竹筍)을 보내주신 것은, 복전(福田)에 선종(善種)을 내리신 것이 아닐까. 눈물도 멎지 않노라.
중생신심어서(衆生身心御書) 미노부에서 50대 중후반에 술작 1595쪽삼세(三世)의 제불(諸佛)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子)로써 부처가 되셨으니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출세(出世)의 본회(本懷)이고 일체중생(一切衆生)·개성불도(皆成佛道)의 묘법(妙法)이라 함은 이것이로다.
이러한 취지(趣旨)를 깊이 깊이 알아서 부처가 되는 도(道)로는 아만편집(我慢偏執)의 마음 없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여야 하는 것이니라.
그대들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수지(受持)하는 사람을 수호(守護)하는 공덕(功德)은 얼마인지 헤아리기 어렵고·뛰어난 공덕(功德)이며 신묘(神妙)하니라고 말씀하신 문(文)이로다. 이는 우리들 중생(衆生)이 행주좌와(行住坐臥)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를지어다 라는 문(文)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