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와 좌뇌
지금은 모든 초등학교에 환경미화원(시도마다 이름은 다름)을 두어 현관이나 화장실 등 학생이 청소하기 어려운 곳은 이들에게 맡긴다. 하지만 예전에는 교무실과 행정실을 쓸고 닦는 일은 물론 쓰레기통 비우는 일까지 학생에게 맡겼다. 아이들이 교실과 복도의 유리창까지 닦아야 했으며, 고학년에게는 화단 관리도 맡겼다. 청소 시간은 늘 시끌벅적 어수선했다. 운동회나 소풍 등 크고 작은 행사에도 청소 계획은 빠짐없이 들어 있었다. 교육 경력이 많은지라 청소와 관련한 추억도 많다.
첫 부임지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의 중심학교인데, 학년마다 4학급이었으며 한 반의 학생 수도 50명이 넘었다. 3월 초에 나이 지긋한 교사가 교직원회의에서 교실과 복도, 특별실, 현관은 물론 운동장, 교문, 화단 등 학교 곳곳을 몇 학년 몇 반이 맡아야 할지 발표하고, 청소에 필요한 도구를 요구하라고 하였다. 고학년은 저학년 교실과 이들이 사용하는 화장실까지 담당해야 했다. 그 당시에는 새마을 주임(옛 부장교사 명칭중 하나)에게 주어진 큰 임무 중의 하나가 청소다.
회의가 끝나면 교실에서 아이들과 의논하여 청소구역을 맡을 사람과 기간을 정한다. 쉽게 할 수 있는 장소도 있지만 그렇지 않는 곳도 있기에 공평해야 한다. 5학년 담임이었는데 교실 앞 화단도 관리해야 해서 신경 써야 할 곳도 많았다. 화단은 휴지만 줍는 것이 아니라 풀을 뽑는 일까지 해야 해서 괭이를 사주라고 했다. 호미로 잡초를 뽑는 것은 한계가 있어서다. 며칠이 지나 요구했던 청소용구를 받았다. 화단을 맡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집게로 휴지를 줍고 괭이로 땅 파는 시범도 보였기에 잘할 것으로 믿었다.
다음날이었다. 교실에서 청소지도를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헐레벌떡 뛰어와 큰 일 났다고 한다. 사고를 직감하고 서둘러 화단으로 갔더니 한 녀석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피는 많이 나지 않았으나 머리위쪽이 밤송이처럼 하얗게 벌어져 있어 징그러웠다. 응급조치할 생각도 못하고 재빨리 가까운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다행히 뇌는 다치지 않아서 몇 바늘 꿰매서 약을 바르고 거즈로 덮은 다음 반창고를 붙이는 것으로 치료는 끝났다.
부모한테 전화를 한 기억은 없다. 당황스럽기도 했고, 경험이 적어서다. 어쨌든 항의는 받지 않았으나 얼마나 가슴 철렁했는지 모른다. 지금 같아서는 부모가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책임을 추궁했더라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터이다. 사고가 난 것은 시범을 보이기는 했으나 주의사항을 단단히 이르지 않아서다. 아이들은 힘도 세지 않고 괭이 사용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에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어른처럼 땅을 제대로 파려다 사고가 났으면 어쩔 뻔 했는가?’ 생각할 때마다 아찔하다.
교장으로 발령받은 부임지에서도 좋지 않은 추억이 있다. 특별실을 돌아보는데 방송실에 잡다한 물건이 쌓여 있었다. 오래된 관보 묶음 철, 폐기 처분해도 될 백과사전과 장학자료, 철지난 비디오 테이프, 고장 난 기자재, 버려도 좋을 생활용품 등 온갖 것들이 가득했다. 도서실과 교무실 사이에 있어 마치 창고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그대로 둘 수 없어 시설관리 주무관과 함께 여러 날 동안 해묵은 것들은 버리고 가치 있는 것은 말끔하게 정리했다.
며칠이 지나서 같이 청소했던 분이 허리가 아프단다. 그는 학교에서 시설관리직으로 퇴직했는데, 다시 기간제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동안 허리 수술하고 온전히 낫지 않았는데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책임감이 강한데다 교장이 팔 걷고 하자는데 차마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그만 두었다. 말없이 잘 따라주어 고마웠는데, 나 때문에 물러나는 것 같아 미안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두어 달이 지나 교육청 주차장에서 그를 만났다.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더니 취직해서 근무하는 중이란다. 행사가 있어 주차 관리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팠던 허리도 많이 좋아졌고, 크게 힘쓸 일도 없을 것 같아 지원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교사시절에 학급을 맡으면 먼저 교실 자료함 뒤와 밑에 쌓여있는 묵은 먼지를 깨끗이 청소하는 일부터 했다. 그런 후 자료함 바구니에 들어 있는 학습 자료를 보기 좋게 정리한다. 과학이나 체육 업무를 맡으면 과학실과 체육 창고의 교구를 분리하여 못쓰는 것은 버리고, 사용할 만한 것은 깨끗이 정리한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관리자가 되어서도 그런다. 우뇌가 발달한 사람은 감각적이고 예술적인 반면에 좌뇌가 발달하면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어서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정리정돈을 잘한다고 한다. 나는 후자 쪽에 가깝다. 그런 성향이어서 가는 곳마다 일을 벌이는 편이다.
한동안은 집 정리가 안 되어 있으면 못마땅했다. 물건을 사용하고 제자리에 놓아야 하는데 여기저기 늘어놓기 때문이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면 깨끗이 청소하고 정리한다. 하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어 아내에게 쏘아붙이면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며칠이 지나면 또 마찬가지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성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귀만 순해지는 것이 아니라 눈도 그런가 보다.
첫댓글 저는 전자 쪽이라서 청소를 잘하지 못합니다.
글 속에 등장하는 학교에서 근무했기에 교장 선생님의 수고를 잘 알고 있었지요.
그때 함께 도와드리지 못해 많이 죄송했었습니다.
뒤늦은 사과를 드립니다. 꾸벅!
전혀 마음에 두지않고 있는 데 사과라니요?
힘쓰는 일인데다 최고관리자가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구요.
선생님은 마냥 좋은 직업이라 생각했는데 어려움이 참 많구나
생각해봅니다.
글쓰기 공부를 하면서 다른 분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교직은 만능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초등교사는 그렇습니다. 그래도 열정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된다고 봅니다. 칭찬 고맙습니다.
하하하!
교장선생님이 글 속에서 서운했던 마음을 고백 하니 양교장은 그 말에 뜨끔하고.
눈이 순해진다는 말이 맞는가 봅니다. 지저분한 걸 보면 날카로워 졌었는데 지금은 눈을 감고 그러려니 합니다.
마음도 세월에 풍화작용이 일어나 둥글둥글해지더라구요.
도끼로 인한 사고 대목에선
덩달아 오싹해집니다.
그런 얘기를 듣고나면
하루하루가 무탈함에
고마워하며 살아야지 싶어요.
뜻하지 않는 사고가 나면 한동안은 기운이 쏙 빠집니다.
예방주사려니 하는 생각도 있구요.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선생님 글 잘읽었습니다.
표준학교가꾸기를 했던 지난날 선생님께서는
훌륭한 표준학교가꾸기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