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카야 타제우오야 / 곽주현
너를 만난 건 우연이었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어느 해 연말이었을 거야. 한 해가 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아. 그날은 몇 년 만에 찾아온 한파로 몹시 추운 날씨였다고 기억한다. 거리가 꽁꽁 얼어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 있었거든. 일 년 내내 더운 나라에 사는 너는 이런 혹한의 날씨를 이해하지 못할 거야. 답답해서 커튼을 젖히고 우드거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은 종일 잔뜩 흐리기만 하더니 늦은 오후에야 해가 갑자기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빠르게 서쪽 산 너머로 사라졌다. 낮에 제 몫을 다 하지 못해서 그랬는지 저녁노을은 어떤 날보다 더 아름답게 물들었어. 너도 가끔 노을을 바라보기도 하겠구나. 네가 사는 나라의 대평원으로 지는 노을은 여기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들었다. 날씨가 어둑해지자 텔레비전을 켜고 즐겨보는 <동물의 왕국>에 채널을 고정했다. 아프리카의 케냐의 대평원에서 펼쳐지는 동물들의 쫓고 쫓기는 모습을 긴장하면서 봤다. 한국에는 사자나 호랑이 등 맹수가 살지 않아서 그런 광경이 매우 흥미진진하단다. 가끔 소 떼를 몰고 가는 그곳 아이들의 모습도 비치곤 했다.
그 방송이 끝나고 곧 광고가 시작되었다.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한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꼭 참여해 주세요. 굶주림 없는 세상을 만드는 <굿네이버스(Goodneighbors>”라고 말하고 전화번호와 함께 뼈만 앙상한 아이의 사진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너무 몸이 말라서 바람만 불어도 곧 쓰러질 것 같았어.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서 망설임 없이 손전화기로 번호를 꾹꾹 눌렀다. 진즉부터 그런 광고를 볼 때마다 ‘도와야지, 도와야지’ 하면서 실천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꼭 그렇게 해봐야지’라고 마음에 두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마는 때가 많잖아. 내가 그랬던 거야.
<굿네이버스> 담당자와 통화를 했는데 “어느 나라 어린이를 돕고 싶습니까?”라고 묻기에 주저하지 않고 케냐에 사는 아이면 좋겠다고 했어. 방금 텔레비전에서 그 나라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한 달쯤 지나 네 사진과 소개서를 함께 받았어. 뒤쪽으로 마을이 보이고 숲속에서 넌 양손을 각각 옆구리에 붙이고 서서 찍는 사진이 들어 있었다. 마른 몸매이긴 했지만, 까만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었다. 자그마한 키에 웃옷은 어른 양복을 입었는지 헐렁헐렁하고 아랫도리는 빨간 바지를 입고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너에 대한 소개서도 들어있었다.
아동 이름 : 카야 타제우오, 생년월일 :2004/04/23. 국적 : 케냐, 학교 : 초등학교 3학년, 성별 : 남, 키 : 119cm, 몸무게 : 20kg, 장래 희망 ; 경찰관, 가족사항 : 어머니, 형 4, 여동생 1.
아동은 초등학생입니다. 특별한 질병이나 장애가 없고 건강한 편입니다. 아동은 흙, 나무, 고철로 지어진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형 넷에 여동생이 한 명이고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행상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지만, 수입이 적어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여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해서 서로 지구 반대편에 사는 너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처음에는 경찰관이 되고 싶다더니 의사로 바뀌고 요즈음에는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하면서 공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보내왔더구나. 키도 많이 자랐고 몸집도 커서 이제 제법 청년 티가 났다. 내가 너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 잘 모를 거다. 처음 받은 사진과 소개서를 종이 액자에 넣어 책상에 세워 놓고 볼 때마다 ‘건강하게 자라고 있냐?’고 물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마치 네가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내 손자처럼 가깝게 느껴지더라.
우리는 일 년에 한두 번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럽게 네 나라 케냐에 관해 관심을 두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케냐산이 있어 그 산 이름을 따서 ‘케냐’라고 했다는 것과 동부의 적도에 자리 잡고 있지만, 수도 라이로비는 우리나라 여름보다 훨씬 시원한 날씨라는 것도 알았다. 교육열이 높고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경제성장률이 아프리카에서 제일 높다고 하더라. 그러나 지금 그곳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수년째 비가 오지 않아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어 무척 안타깝다.
엊그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네가 이제 성년(만 18세)이 되었으므로 다음 달 12월을 마지막으로 더는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하는구나. 벌써 그렇게 되었나 하고 손가락을 꼽아 보니 너를 알게 된 후 꼭 10년이 되었다. 처음 소개받은 날이 2013년 12월 4일이었거든. 달마다 네게 보내는 도움(매월 3만 원)을 잊어버릴까 봐 계좌이체를 해 놓아서 한 번도 실수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타제 우오야, 우리는 얼굴 한 번 못 보고 헤어져야 하는구나. 지난번의 편지에서 ‘고맙고 미안하다.’라고 썼는데 조금도 그런 마음 갖지 말았으면 한다. 그동안 함께해서 내가 더 즐거웠다. 가족과 이웃에게 네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렴. 그런 선한 영향력이 넓고 길게 자라면 지구촌은 좀 더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 믿는다. 너를 보내고 나면 또 누군가를 소개받아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 그럼 안녕, 카야 타제우오야.
첫댓글 제목을 보고 뭔 말인가 했어요. 케냐 아이 이름이었군요. 저는 몇 년 하다가 그만 두었는데 오래도 하셨네요.
그 아이가 선생님의 따뜻함을 받아 세상에 나가서도 꿈을 잘 펼쳐가길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제 아이는 가나에 있습니다.
곽주현, 백현 선생님, 두 분 다 훌륭하시네요.
그토록 오래 후원을 이어오셨군요.
마음 한 자락 내어 주면 될 일인데, 저는 아직 아이는 키우지 않고 있습니다.
와! 정말 훌륭한 일 하십니다. 그 아이도 선생님을 잊지 못할겁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한비야의 책을 읽으며 월드비전에 가입하고 싶었는데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멋진 글입니다. 늘 머리 속에만 있었는데 선생님 글을 읽고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