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월25일 오늘의 역사
2023년 미국 플로리다주 남부 해수 온도가 섭씨 38도를 넘어 사상 최고 기록
2021년 인도 최악의 홍수로 최소 136명 사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42만 명 넘게 숨진 인도에서 이번에는 40년 만에 최악의 홍수가 일어나 최소 136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실종됐다. 산사태로 주요 도시는 흙탕물에 뒤덮였고 주택과 도로, 수도관 등 기반시설이 파괴됐다. 인도 최대 도시 뭄바이가 속한 서부 마하라슈트라주(州) 일대에는 22일부터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산사태가 발생하고 저지대가 물에 잠겼다. 25일 현재까지 최소 136명이 숨졌고 실종자는 수백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뭄바이 슬럼가에서는 폭우로 건물이 무너져 4명이 숨졌다. 뭄바이에서 180km 떨어진 탈리예 마을은 산사태로 가옥 수십 채가 붕괴되면서 최소 49명이 사망했고 실종자도 40명을 넘겼다. 뭄바이 남쪽 금융도시 치플룬은 땅에서 6m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며 도로와 집이 잠겼다. 마하라슈트라 남쪽 카르나타카주에서도 폭우로 9명이 숨지고 9000여 명이 대피했다. 해안지대 일부에서는 24시간 동안 600mm 폭우가 쏟아졌다. 고속도로가 물에 잠기면서 트럭 수천 대가 발이 묶인 곳도 있었다.
2019년 유럽 폭염 파리 42.6℃ 링켄(독일 니더작센주) 42.6℃ 벨기에 40.6℃ 네덜란드 40.4℃ 사상최고기온 기록
2019년 북한 원산 호도반도 인근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 발사
2019년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구회근) 국정원 특활비 36억5천여만원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손실 등 혐의로 징역 5년 추징금 27억원 선고
2017년 불가촉천민(최하층 카스트인 달리트) 출신 람 나트 코빈드(71세) 제14대 인도 대통령 취임
2015년 이슬람국가(IS) 라마단기간 동시다발 테러(-7.26까지) 200여명 사망
2014년 65세 이상 노인에 기초연금 첫 지급
2011년 1세대 무용학자 정병호 선생 별세
한국에서 무용학을 개척했고 최승희 사진 수집가로도 유명한 무용학자 정병호(鄭昞浩·84)씨가 별세했다.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정씨는 광복 직후 함귀봉 조선교육무용연구소에서 현대무용과 교육무용을 배웠다. 이후 중앙대 교수로서 무용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1세대 학자다. 무용평론가 성기숙씨는 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한 그에 대해 “20여 종목에 이르는 민속예능 현장을 살펴 무형문화재 지정에서 산파 역할을 했고, 무용가 최승희 연구로도 큰 업적을 남겼다”고 했다.
그는 ‘전통 재발견’을 화두로 1976년 전통무용연구회를 발족시켜 이매방(살풀이춤·승무), 한영숙(승무), 강선영(태평무), 하보경(밀양백중놀이), 박병천(진도씻김굿), 김금화(황해도배연신굿), 김석출(동해안별신굿) 등 지방에 묻혀 있던 전통 예인을 발굴해 서울에 소개했다.
저서로는 ‘민속춤’ ‘농악’ ‘한국의 전통춤’ ‘춤추는 최승희, 세계를 휘어잡은 조선여자’ 등이 있다. 전통문화유산을 발굴하고 한국 무용학의 기초를 다진 공로로 1997년 옥관문화훈장, 2008년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9년 의정부 경전철 구조물 붕괴 사고
2009년 7월 25일 오후 의정부 경전철 제2공구 공사현장에서 대형 철골구조물이 무너져 김모씨 등 한국인 인부 3명과 베트남 출신 외국인노동자 2명이 숨지고, 한국인 5명, 중국동포 1명, 베트남인 2명 등 인부 8명이 부상했다.
이날 오후 7시20분쯤 의정부시 신곡동 드림밸리아파트와 부용천 사이에 건설 중이던 12m 높이의 교각에서 대형 철골구조물이 내려앉았다.
무너진 구조물은 폭 6m, 길이 30m의 ‘런칭거더(Launching Girder)’라는 공사 장비로, 교각과 교각 사이를 옮겨 다니며 콘크리트 구조물을 끌어올려 교량 상판을 조립하는 데 사용된다.
사고 당시 현장 인부들은 당일 작업을 마무리한 뒤 이튿날 작업을 위한 가설준비 작업의 하나로 런칭거더 위에 설치된 고가이동 기중기(gantry crane)를 옆쪽으로 수평이동시키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런칭거더 지지대에 충격이 가해졌고, 이 때문에 런칭거더 전체가 붕괴한 것으로 보인다고 공사 관계자들은 전했다.
2007년 7월 착공된 의정부경전철 건설공사는 장암지구~ 송산동 11.1㎞ 구간을 연결하는 사업이다. 10개 회사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공사를 맡아 2011년 8월 완료, 2012년 7월 개통했다.
2004년 중국 산시성 타이위안 발사지구서 ‘탄처(探測) 2호’ 발사
2004년 재미교포 16세 김시환 US주니어골프 우승
재미교포 김시환(16)이 US주니어골프선수권에서 타이거 우즈에 이어 사상 두 번째 어린 나이에 우승컵을 차지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25일(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더올림픽클럽(파70·6790야드)에서 18홀 매치플레이(홀별로 승부를 가리는 방식)로 열린 US주니어골프선수권 결승에서 김시환은 대만계 데이비드 청(15)을 1홀차로 꺾고 우승컵을 안았다.
만 15세7개월20일의 김시환은 지난 91년 15세6개월28일의 나이로 이 대회 최연소 우승을 기록했던 타이거 우즈에 22일 뒤진 ‘소년 챔프’가 됐다.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한 것은 지난 94년 테리 노, 지난 98년 제임스 오에 이어 세 번째다.
첫 홀에서 버디를 잡은 청에 기선을 빼앗긴 김시환은 2번홀에서 균형을 곧바로 맞춘 뒤 6번홀 이후 단 한 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승리를 지켰다.
2004년 ‘스타우트 인펀트 피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물고기로 호주박물관에 기록
몸길이 0.7㎝의 ‘스타우트 인펀트 피시’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물고기로 호주박물관 기록에 올랐다. 지금까지 가장 작은 척추동물은 몸길이 1㎝의 ‘난쟁이 고비’ 물고기였으나, ‘스타우트 인펀트 피시’가 이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호주의 대보초(Great Barrier Reef) 지역에서 서식하는 이 물고기는 지난 1979년 처음 발견됐다. 그러나 그동안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재 스크리프스 해양연구소의 HJ 워커 박사팀은 최근 본격적인 연구를 통해 이 물고기가 현재까지 발견된 척추동물 중 가장 작은 새로운 어종이라고 확인했다. 이 물고기의 수컷은 완전히 성장한 상태의 길이가 0.7㎝에 불과하며, 암컷은 0.84㎝로 수컷보다 약간 크다. 수명은 평균 2개월 정도로 매우 짧다.
2001년 프랑스 소장 외규장각 도서 297권을 국내 고문서와 맞교환하기로 합의
프랑스 소장 외규장각 도서 297권을 그에 상응하는 국내 고문서와 맞바꾸는 방식의 외규장각 도서반환 합의가 국내 여론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프랑스 대표간에 체결됐다.
한상진 대통령 정책자문 기획위원장은 2001년 7월 25일 "자크 살루아 프랑스 감사원 최고위원과 사흘 동안 협상을 한 끝에 프랑스 소장의 어람용 의궤(궁중의 주요행사를 그림으로 기록한 책)는 국내에 복본이 여러 권 있는 비어람용 의궤를 대여하고, 프랑스에만 있는 유일본에 대해서는 같은 시기(1630년~1857년)에 만들어진 비어람용 의궤 중에서 한국에 복본이 여럿 있는 것을 상호 대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297권의 의궤에 대해선 한국 전문가들이 파리에 와서 편리하고 필요한 시간만큼 실사를 하도록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 소장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9월부터 한·불 양국 전문가들에 의해 시작됐다. 그러나 맞교환 방식의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약탈당한 물건을 왜 우리 물건과 바꿔야 하느냐"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2000년 야구선수 김기태, 국내최초로 6타수 6안타 기록
삼성 김기태 선수가 2000년 7월 25일 1경기 최다 안타 신기록을 세웠다. 발이 느려 ‘거북이’란 별명을 얻었지만 스윙스피드 하나만큼은 국내 최고를 자부하는 김기태가 후반기 첫날 프로야구 19년 사상 처음으로 1경기 6안타를 때리는 대기록을 세웠다.
김기태는 이날 대구 구장에서 벌어진 두산과의 경기에서 2회말 첫번째 타석에서 좌전안타를 시작으로 3회말 중전안타, 4회말 우월홈런, 6회말 중월홈런, 7회말 좌중월 2루타를 연속으로 쏟아냈다.
연장전을 포함, 국내 프로야구에서 6안타를 때린 선수는 김기태가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69명이 1경기에서 5안타를 친 적이 있었다. 미국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 9이닝 기준 1경기 최다 안타는 7개. 김기태는 2회와 3회 안타를 친 뒤 4회와 6회 연타석 솔로 홈런, 7~8회 2루타를 각각 때려내는 절정의 타격감각을 과시했다. 타점은 4타점이었다.
2000년 프랑스 콩코드기 추락, 승객 등 112명 사망
세계최초로 초음속 항공여행의 장을 열었던 콩코드기가 2000년 7월 25일 이륙 직후 추락, 승객 승무원 109명과 추락현장에 있던 주민 3명 등 112명이 사망했다.
이날 오후 4시45분쯤 파리발 뉴욕행 에어프랑스가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 이륙 2분만에 왼쪽날개에 불이 붙은 뒤 화염에 휩싸였으며, 공항 부근 호텔로 추락했다고 전했다.
참사는 조사 결과 활주로에 떨어져 있던 길이 40㎝가량의 쇳조각이 원인이었는데,. 콩코드기에 앞서 공항을 떠난 미국 콘티넨털항공 여객기의 엔진 덮개에서 떨어져 나온 부품이었다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달리던 콩코드기가 문제의 쇳조각을 밟으면서 타이어가 터졌고, 그 파편이 연료탱크를 강하게 가격해 화재가 발생했다.
엔진에까지 이상이 생기면서 콩코드기는 결국 추락하고 말았다.
1995년 정부 연변에서 선교활동하던 안승운 목사(여의도 순복음교회) 납북 발표
1994년 이스라엘-요르단, 46년간 적대관계 청산 선언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1994년 7월 25일 워싱턴에서 양국 정상간 사상 첫 공식회담을 갖고 지난 46년간 지속된 해묵은 적대관계의 청산을 선언하는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함께 서명한 공동선언은 수 세대 동안의 반목 투쟁을 뒤로 하고 후세인 국왕과 라빈 총리는 “두 국가 사이의 전투상태를 끝낼 것을 전 세계에 엄숙히 선언한다”면서 양국간은 물론 역내의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아울러 천명했다.
양국 정상은 선언문에서 이 문서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거나 평화협상을 위한 결의에서 벗어난 여하한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것과 아랍국가 및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간의 공정하고 지속적이며 폭넓은 평화를 위해 매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두 사람을 선견지명을 가진 정치인들이라고 치켜세우며 정상회담 성사에 기쁨과 만족을 표시했다.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올림픽 개막
제25회 바르셀로나 하계올림픽이 1992년 7월 25일 몬주익 메인스타디움에서 그 막을 올렸다. `영원한 친구`를 슬로건으로 내건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답게 개막식도 화려하고 장엄했다.
한국 등 세계 172개국 1만5천여 명의 선수단이 한데 어울린 개막식은 음악과 춤, 화려한 색과 다양한 몸짓으로 3시간동안 펼쳐져 장관을 이뤘다. 식전 공개행사에 이어 열린 개회식은 근대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 선수단을 선두로 알파벳순에 따라 입장했으며 지난대회 개최국인 한국은 김태우 기수(레슬링)를 앞세워 41번째, 12년 만에 올림픽에 복귀한 북한은 1백30번째 각각 모습을 나타냈다.
한국의 마라톤 선수 황영조는 8월10일 폐막식에 앞서 열린 마라톤 경기에서 2시간 13분23초의 기록으로 우승, 한국선수단에 12번째의 금메달을 안겨줬다. 8월10일까지 거행된 대회는 시범 3개종목 포함 28개 종목이 치러졌으며 배드민턴과 야구가 처음 정식종목으로 승격됐다.
1989년 서문여고교장 요청으로 고교 첫 경찰투입 전교조 가입교사 18명 연행
1989년 영호남 지방 큰 비 사망 110명 이재민 5만2천명
1984년 미국-중국, 항공우주기술협정 체결
1984년 패킷교환 공중데이터 통신망 개통
1983년 고리원자력발전 2호기 상업운전
1983년 스리랑카 인종폭동
1983년 시베리아 가스관 완공
1983년 미국, 레이저무기 미사일격추실험 처음으로 성공
1981년 기획원, 외국기업의 대한투자 문호를 확대 427개 업종에 외국인 투자 허용
1980년 미국, 군정 볼리비아에 전면 원조중단. 외교관-군요원도 철수
1978년 시험관 아기 탄생
1978년 7월 25일, 영국 올드햄 병원에서 2.6kg의 건강한 여아가 태어났다. 영국의 데일리 메일지와 이브닝 뉴스지는 1면에 각각 `IT’S A GIRL(그것은 여자다)` `SUPER BEBE`라는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달아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인류 최초의 체외수정아(시험관 아기)가 탄생한 것이다. 아이의 이름은 루이스 브라운.
1년 전, 나팔관이 막혀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아기 엄마 레슬리 브라운이 상담차 찾은 사람은 올드햄 병원 산부인과 의사 패트릭 스텝토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생리학자 로버트 에드워즈였다. 두 사람은 12년 동안 시험관 아기 실험에 매달려 최소한 100번 이상의 실패를 맛봤지만 이 분야에서만은 베테랑이었다. 연구팀이 레슬리의 난자와 남편 존 브라운의 정자를 시험관에서 수정시킨 수정란을 48시간 후 레슬리 자궁에 착상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루이스는 예정보다 3주 빨리 제왕절개수술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인륜을 거스른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바티칸은 `자연의 섭리에 반한 근원적 악`이라며 강력한 어조로 비판했다. 일부 과학자들도 위험성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실험을 멈춰야 한다는 의견이었지만 `시험관 아기`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1985년 10월 12일 서울대병원 장윤석 교수팀에 의해 이뤄진 쌍둥이가 첫 시험관 아기였다.
1975년 민방위 기본법 공포
1974년 이종대와 문도석 총기난동 끝에 자살
1974년 우리나라 추상화의 선구자 김환기 사망
우리나라 추상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서양화가 김환기 선생이 1974년 7월 25일 뉴욕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달, 조선백자 등과 같은 민족적 소재를 이용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발표하다가, 1963년 도미(度美) 이후에는 화면에 무수한 점과 선을 배열하는 독특한 회화세계를 개척한 화가이다.
1913년 전남 신안군 기좌도(現 안좌도)에서 태어난 그는 1936년 일본 행 유학길에 올랐고 광복 후 국내 화단이 활기를 되찾자 1948년부터 ‘신(新)사실파’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국내 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했다.
그의 작품은 도쿄시대와 서울시대, 파리시대, 뉴욕시대로 나누어 지는데 도쿄시대는 주로 습작 시기에 해당한다. ‘종달새 노래할 때’라는 작품이 그 대표작으로 자연을 서정적으로 표현, 이후의 김환기 작품과도 일맥상통한다. 파리시대(1956∼1959)의 김환기 작품에는 여전히 달과 구름, 산과 나무, 새와 항아리가 등장하지만 색채는 푸른색이 바탕을 이루고, 구도는 이전보다 더 단순화되었으며, 서정적 느낌이 많이 억제된 특징을 나타낸다.
1963년 미국에 건너간 그는 1970년대에 들어와 점묘 그림에 몰두했고 말년에 이르러는 동양적 수묵화에 가까운 추상화에 도달한다. 김환기가 평생을 동양적(한국적)인 서정을 표현해 온 화가라는 것을 볼 때, 말년의 점과 선으로 된 그림도 이전의 그의 작품과 동일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점묘 시리즈 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작품은 1970년 ‘제1회 한국미술 대상전’에서 대상을 탔다. 이 작품은 김광섭의 시를 읽고 그린 것으로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김환기의 변모된 작품세계에 대해 놀라움과 찬사를 보냈다.
1973년 천마총에서 금관 나옴
1970년 남산 어린이회관 개관
1970년 남아공화국 버나드 박사 처음으로 심장과 폐의 동시이식수술에 성공
1969년 `닉슨독트린` 발표
아시아-유럽 7개국 순방을 위해 괌에 도착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전 이후의 아시아와 미국의 역할`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1969년 7월 25일 발표했다.`자국의 방위는 자국이 맡아야 한다`는 이른바 `닉슨독트린`을 발표한 것이다.
닉슨이 이날 발표한 `아시아 외교 기본전략`은 `▲조약상의 책무을 지키고 ▲동맹국의 자유 또는 미국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면 핵우산을 제공하며 ▲기타의 침략에는 각국의 자유노력에 의거한다` 는 내용이 주요 골자였다.
닉슨의 이날 발표는 베트남전에서 입은 심각한 피해를 반영한 것으로 아시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닉슨은 1970년 2월18일 `1970년대 미국의 외교정책`을 나타내는 외교특별교서를 발표함으로써 닉슨독트린을 확정했다. 닉슨독트린은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영향을 미쳐 `자주국방` 의지를 다지게 하여 국군현대화계획(율곡사업)에 박차를 가하게 했다.
1968년 문화공보부 발족(초대장관 홍종철)
1968년 KAL, 서울~동경간 취항
1965년 밥 딜런, 전기기타 연주
밥 딜런은 미국 미네소타주 시골 마을에서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고교 시절 그의 꿈은 로큰롤러였다. 그러나 1959년 입학한 미네소타대에서 학생들 사이에 조용히 퍼지고 있는 포크송을 접하고부터는 포크송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딜런은 대학을 중퇴한 뒤 1961년 1월 기타 하나만 달랑 들고 무작정 뉴욕으로 가 ‘미국 보헤미안들의 성지’인 그리니치 빌리지의 한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 무렵 본명인 로버트 앨런 짐머만을 웨일스의 방랑시인 딜런 토마스의 이름에서 따 밥 딜런으로 바꾸었다. 1962년 발표한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the Wind)’은 반전운동과 흑인민권운동의 상징곡이 되었다.
1964년 무렵 밥 딜런은 음악적으로 방황했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노래에 심각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행 중에 자동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비틀즈의 노래를 듣고 새로운 음악의 출현에 충격을 받았다.
딜런은 1965년 7월 25일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참가해 어쿠스틱 기타 대신 전기기타로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 등 3곡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포크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록의 상업성과 타협했다”, “포크 음악의 배신자” 등의 야유가 터져나왔다.
당시 포크 가수들이 전기기타로 연주한다는 것은 곧 세속적 상업주의를 의미했다.
정확한 이유가 무엇이든 딜런은 비틀즈를 지켜보며 통기타와 하모니카만으로는 포크 음악을 발전시키기는커녕 명맥마저 지킬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전기기타를 들었으나 세상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은 그의 편이었고 그날 이후 ‘포크 록’은 만개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다소 이단적인 기독교 원리주의에 심취해 몇 년 동안 복음성가만을 부르다가 1981년 속세로 귀환, ‘작곡가 명예의 전당’(1982)과 ‘로큰롤 명예의 전당’(1988)에 입성했다. 그 후 다시 긴 슬럼프에 빠졌다가 1994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을 통해 복귀했다. 2004년에는 미국의 음악잡지 ‘롤링 스톤’에 의해 ‘역대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2위(1위는 비틀즈)로, 노래 ‘Like a Rolling Stone’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로 선정되었다.
1964년 최초의 국악관현악단 창립
1963년 부분핵실험금지 조약(PTBT) 조인
1957년 튀니지, 공화제 선언 (초대 대통령 하비브부르기바)
1956년 여객선 안드레아 도리아호 침몰
1956년 7월 25일 스웨덴의 대양 정기선 스톡홀름호가 난터키트 앞바다 안개속을 항해하던 중 이탈리아 여객선 안드레아 도리아호와 충돌했다. 충돌당한 2천9백만 달러의 이탈리아 호화선 도리아호는 충돌 12시간 후 수심 2백25피트의 대서양에 침몰했다. 침몰하기 전 부근을 항해중이던 다른 선박들에 의해 1천6백35명의 승객 및 승무원들이 구조되어 인명피해는 줄일수 있었다.
충돌 당시 안드레아 도리아호의 선객들은 선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위해 파티를 열고 있었다. 도리아호는 26일 뉴욕에 입항할 예정이었다. 스톡홀름호는 선수가 찌그러진 채로 해안경비정의 인도를 받아서 항구로 이동했다. 조사 관계자들은 사고가 난 두 선박 모두 레이다를 장착하고 있었음에도 52명에 달하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낳은 사고원인에 대해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1955년 미국, 극동지상군사령부 및 8군사령부를 서울로 이전 결정
1954년 이승만 대통령 방미
1953년 베트남에 태풍, 주민 천명 사망
1950년 영국, 터키, 필리핀 등 한국전에 지상군 파견 결정
1949년 네덜란드, 대한민국을 정식 승인
1946년 좌우합작회담 시작
1946년 7월 25일 오후 2시 반 서울 덕수궁 석조전 2층 대형홀에서 민주의원 부의장 김규식과 국민당 당수 안재홍, 한민당 총무 원세훈 등 우익측의 유력인사 5명과 인민당 당수 여운형, 민족주의민족전선 사무국장 이강국 등 좌익 측 4명이 참석한 가운데 좌우합작위원회 제1차 회의가 열렸다. 좌우합작은 신탁통치 문제로 좌우대립이 심화되고 단독정부 수립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가운데 시작됐다.
1945년 말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반도에 임시정부를 수립한 뒤 신탁통치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이 발표되자 우익은 민주의원을 중심으로 반탁운동을 벌였고, 좌익은 민족주의민족전선을 만들어 찬탁운동을 전개했다. 게다가 1946년 5월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정국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이승만을 중심으로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첨예하게 대립하던 좌익과 우익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같은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여론 또한 그 같은 방향으로 형성됐다.
1947년 5월 21일 미-소공동위원회 재개에 맞춰 활기를 띠는 듯 하던 좌우합작위원회는 1개월 후 미-소공동위원회가 사실상 결렬되면서 미국이 남한 단독정부 수립으로 방침을 전환하자 큰 타격을 받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47년 7월 19일 여운형 마저 암살되자 12월 들어 위원회는 해체를 결의했다.
좌우합작위원회는 민족의 단결을 통해 정치적 난관을 넘어서려 했다는 점에서 일제치하 독립운동을 할 때부터 진행되어 온 민족연합전선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중간파가 존재할 수 없는 첨예한 좌우대립 속에서 민족의 일부 단결에 그쳐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1943년 이탈리아 무솔리니 전투에서의 패전으로 실각, 체포
1939년 경춘선(성동-춘천) 개통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세계대회 모스크바서 개최
1934년 오스트리아 돌푸스 총리 비엔나에서 나치에게 피살
1925년 해태그룹의 창업자 박병규 출생
1922년 전국기자연맹 결성
1920년 오상순 등 `폐허` 창간
1919년 소련, 중국과 제정러시아의 불평등조약 폐기 선언(카라한 선언)
1909년 프랑스 항공기 기술자 루이 블레리오, 자신이 만든 `블레리오11`로 도버 해협 횡단 성공
1905년 불가리아의 소설가 카네티 출생 - 1981년 노벨문학상 수상
1903년 한글학자 정태진 출생
1894년 청일 전쟁 발발
1894년(고종31) 7월부터 1895년 4월까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청(淸)과 일본(日本)이 벌인 전쟁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래 국력이 급속히 신장하여 정한론(征韓論)이 대두되는 등, 조선에 대한 세력을 넓히려는 움직임이 고조되고 있었다.
한편, 청나라는 종래로부터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여 왔고 조선 조종도 사대(事大)의 예를 취해 왔는데 1876년 일본이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으로 조선이 자주국임을 명시하고 조선 침략을 꾀하다, 청일 사이에는 대립 상황이 조성되었다.
그 뒤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등의 사태에 양국이 관여하면서 알력이 심화되자. 양국은 1885년 텐진조약(天津條約)을 맺어 조선에 변란이 일어나 군대를 파병할 경우 쌍방에게 미리 통보하고 사후 즉시 출병하기로 합의함으로써 긴장을 완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던 중 1894년 5월 조선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조선 조정의 요청으로 3000여명의 청의 군대가 들어왔고, 일본은 이에 항의하여 공사관과 거류민 보호 명목으로 군대를 보냄으로써 청나라와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동학농민운동의 기세가 약화되자 조선은 곧 일본의 철병을 요구하였으나 일본의 오토리(大鳥圭介)공사는 본국의 훈령대로 이를 거부하였다.
일본의 목적은 동학농민운동의 진압보다는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군대에 압력을 가하고 조선 조정에서 친청(親淸)의 세력을 몰아내어 친일정권을 세우는데 있었다.
이리하여 한국에 친일개화정권이 들어서고 갑오개혁이 단행되던 즈음, 1894년 7월 25일 일본군이 아산(牙山)풍도(豊島) 앞 바다에서 청나라 해군에 공격하고 7월 29일 성환(成歡)을 점령한 뒤 1894년 8월 1일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청일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 전쟁에서 열강들은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였고, 근대적인 군비를 갖춘 일본은 일방적인 승전을 거듭하였다.
일본 육군은 9월 평양에서 전승하고 10월 중국 랴오둥(遙東半島)반도로 진격하였으며, 해군은 황해(黃海)해전에서 승리한 뒤 육군과 함께 뤼순(旅順), 다롄(大蓮), 웨이하이웨이등을 공격, 점령하고 청나라 북양함대(北洋艦隊)를 섬멸하였다.
전쟁 결과, 청나라는 1895년 4월 17일 일본과 시모노세끼조약(下關條約)을 성립시켰다.
이로 인하여 청나라는 조선이 완전 자주 독립국임을 인정하여 조선에서의 일본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었다.
청나라는 배상금 2억냥을 일본에 지불하였으며 랴오둥, 타이완, 펑후제도를 할양함과 동시에 통상의 특권을 일본에 제공하였다.
뒤에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3국 간섭으로 랴오둥은 반환하였으나 이 전쟁으로 청나라의 무력함이 확인되어 열강들의 중국 침략이 가속화되었다.
일본은 전쟁후 동아시아의 새로운 제국주의 국가로 등장하여 조선 침략을 본격화하고 남하정책을 펴던 러시아와 충돌하여 후일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1867년 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을 런던서 완성
1861(조선 철종 12) 을사늑약 맺어지자 시종무관장으로 자결한 계정 민영환 태어남
1814년 스티븐슨 증기기관차 시운전 성공
1803년 독일 작곡가 페르디난트 바이어 출생
1455(조선 세조 1) 세조 단종 쫓아내고 임금에 오름(음력 윤 6월 11일)
1415(조선 태종 15) 조지소 설치
조선 시대, 종이 뜨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1415(태종 15)년에 만들어서 1466(세조 12)년에 조지서로 이름을 바꿨다.
918(고려 태조 1) 왕건 새 나라 고려 세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