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장은 택지에서 성분까지의 절차를 말한다. 장사를 지낼 만한 땅을 고르는 것을 '택지'라 하는데, 상주 중의 한 사람이 내정된 곳에 직접 가서 시신을 편안히 모실 수 있는 곳인가를 잘 살펴 정한다. 햇볕은 잘 드는지, 돌이나 물은 없는지, 봉분을 이룰 만큼 두터운 곳인지 등을 잘 알아본다. 이러한 사항을 잘 검토하여 묘지가 결정되면, 장사 지낼 날짜를 정하여 친척, 친지들에게 알리고 영연에 고사를 올린다.
조객들의 문상을 받는 날 오후에는 다음날 있을 장례 준비도 미리 해두어야 한다. 장례를 준비하는 인원의 일부는 묘터를 잡아둔 곳에 가서 묘자리 주변의 나무를 베고 다음날 산역하기 쉽도록 땅 고르는 작업까지 어느 정도 하는 것이 좋다. 산역꾼들은 땅을 파기 전에 토지신에게 사토제를 지낸다.
상주는 친척이나 친지 중에서 선정된 사토제를 지낼 사람과 집사와 같이 묘지로 정한 자리에 가서, 네 모서리를 파고 말뚝을 세운다. 그 말뚝 중간에 신위를 남향으로 설치하고, 주과포혜를 진설하고 사토제를 지낸다. 이때 상주는 참례하지 않는다. 묘를 쓸 주산 봉우리를 향해 제물을 차려 두고 간단히 절하고 축문을 읽는다.
별도로 개토제를 지내는 경우에는 연장으로 땅을 파기 전에 묘를 쓸 곳에다 제사를 올린다. 관을 넣을 네모난 구덩이를 광중이라 하는데 먼저 광중에 해당하는 네 귀퉁이의 흙을 한 삽씩 떠낸 뒤에 그 앞에 간단한 제물을 차려 놓고 절을 올린다. 이들 제의는 모두 산을 신성시 여겨 함부로 산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사토제가 끝나면 드디어 땅을 파기 시작하여 광중을 만든다. 광중을 팔 때는 금정기를 땅 위에 놓고 역사를 시작한다. 금정기는 나무 막대기 네 개를 가지고 정(井) 자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관의 크기를 짐작하여 반듯하게 놓고서 네 모퉁이에 말뚝을 박아 표시한 뒤 그 모양대로 파들어간다. 드디어 땅을 파기 시작하여 광중을 파고, 관이 들어갈 만큼 외곽을 만든다. 한편 집안에서는 운구를 위한 상여 준비를 한다. 곳집에서 상여를 꺼내 와서 부품들을 맞추어 보고 손볼 곳을 찾아 정비를 해둔다.
묘터에서 하는 산역은 상가의 일가 어른들이 맡아서 하지만 상여를 정비하는 일은 상두계(향두계)원들이 담당한다. 장례일에는 이들 계원들이 상여꾼, 영여꾼, 잡역꾼 등으로 적절히 작업을 분담하므로 별도로 품을 살 필요 없이 상가에서는 음식만 제공하면 되었지만 현대에는 많이 달라졌다. 상두계는 상여를 운반하고 무덤 터를 다지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노동 집단이지만, 장례 의식을 수행하고 집행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는 의례 집단이며, 상여가 나가기 전날 빈 상여를 메고 놀이판을 벌여 '빈 상여 놀이'를 즐긴다는 점에서는 놀이 집단이기도 하다.
천구는 '널을 옮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시신을 장지에 모시기 위해 상여에 모셔서 싣는 일을 말한다. 발인하기 하루 전날 아침에 오복의 친척들이 모두 모여 각각 자기의 복을 입고 참례한다. 이때 조전을 올리고, 영구를 사당에 옮긴다. 사당에 이르면 중문 안에 놓고 영좌를 차리고 곡을 한다.
다음날 아침 영구를 마루로 옮기고 대곡을 한다. 복을 입을 사람들은 모두 모여서 자기가 입을 상복을 입고 제자리에서 곡을 한다. 조전을 올릴 때는 축관이 술을 따르고 북쪽을 향하여 무릎 꿇고 엎드려 고사를 읽고 일어나면, 상주 이하 모두 슬피 곡하고 두 번 절한다.
영구를 옮길 때는 부인들은 피하고, 상주 이하 모두 서서 지켜 본다. 축관이 혼백을 받들고 앞서 사당에 가서 뵈면, 집사가 제물을 가져다 진설한다. 다음에 명정이 따르고 일꾼들이 영구를 모신다. 이때 상주 이하 모두 곡을 하면서 그 뒤를 따른다. 조전을 올릴 때 집이 좁아서 영구를 모시고 출입하기가 어려우면 혼백으로 영구를 대신해도 된다. 이 경우에는 제물이 앞에 가고, 명정이 그 다음, 그리고 혼백이 그 뒤를 따른다. 사당 앞에 이르면 북쪽을 향해 혼백을 제자리에 놓는다.
이어서 다시 영구를 마루에 옮기는데, 이때 집사가 마루에 포장을 친다. 왼쪽으로 돌아서 영구를 자리에 모실 때 머리를 남쪽으로 두게 한다. 축관은 영좌를 마련하여 영구 앞에 제물 올릴 상을 준비하고, 상주 이하 모두 제자리에 앉아 곡을 한다. 그리고 모든 제물을 진설했다가, 해가 진 뒤에 祖전을 올리는데, 朝전처럼 지낸다. 저녁 상식을 지낸 후에 이 제사를 지내는데, 저녁 상식과 함께 겸해서 지내기도 한다. 이튿날 날이 밝으면 영구를 상여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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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은 상여가 장지로 떠나는 절차를 말한다. 장례일이 닥치면 새벽부터 부산하다. 산역꾼들은 묘터 닦을 일을 의논하고 연장을 챙겨 일찍 산으로 출발하는가 하면, 상두꾼들은 상여 멜 준비를 하고 상가에 모여들어 전날 준비해 둔 상여를 다시 점검하고 상여틀을 다시 한번 단단하게 조인다. 상가에서는 '발인' 준비를 하랴 상두꾼 아침 식사를 접대하랴 어느 때보다 일손이 바빠진다.
일꾼들은 영구를 옮겨 상여에 싣고, 새끼줄로 튼튼히 맨다. 상주는 영구를 따라 곡하면서 내려가 영구 싣는 것을 지켜보고, 부인들은 장막 안에서 곡한다. 관을 내어오면 상여 위에 안치하고 상여 앞에 제상을 차려 두고 견전(혹은 발인제)을 올린다. 견전은 주검이 집에서 나갈 때 지내는 제사로, 마지막으로 올리는 전을 말한다.
* 관이 방에서 나갈 때의 관습 상주들은 관을 들고 방의 네 구석을 향해 관을 세 번씩 올렸다 내렸다 하며 인사를 한 뒤에 문을 나선다. 관을 방에서 옮길 때, 도끼나 톱으로 문지방을 살짝 찍거나 자른 뒤에 관을 들고 문지방을 넘는 풍속이 있다. 또한 문밖의 댓돌 앞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관의 앞부분으로 눌러서 깨뜨리기도 한다. 이처럼 문지방을 자르거나 바가지를 깨는 것은 죽은 이가 다시는 문지방을 넘어 집 안으로 되돌아 오지 않는다는 일종의 '양밥'이다. 양밥은 민속신앙이나 속신에 근거를 두고 하는 주술적, 종교적 처방을 일컫는 말이다.
만장은 고인을 애도하는 뜻에서 지은 글로서 '만사'라고도 한다. 이것을 비단이나 종이에 싸서 기를 만들어 상여를 따르도록 한다. 만장의 첫머리에는 '근조'라 쓰고,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나 영혼을 위로하는 내용 등 만장의 본문을 쓴 다음, 맨 끝에는 쓴 사람의 성명을 쓰되 '00(본관) 後人 000(姓名) 哭 再拜'라고 쓴다.
선조의 부마로 영안위에 봉해진 홍주원은 영창대군(선조의 왕자)을 묻으면서 만장을 지었는데, 그 글이 매우 슬프다. '왕자를 부탁한다는 말씀은 받들지 못하니 / 깊은 원한을 누가 슬퍼하지 않으리 / 겨우 여덟 살을 살았지만 / 하늘의 뜻은 십 년 만에 돌아오네 / 밝은 날 해는 중천인데 / 저 푸른 산에 영원히 살 집을 장만하였네 / 천추의 장락전이 되리니 / 아마 망사대도 있으리.'
* 방상씨탈 더러는 상여행렬 맨앞에 방상씨 탈이 서기도 한다. 방상씨는 황금색의 눈을 네개나 가진 귀신 쫓는 탈로서, 두 사람이 이 탈을 쓰고 긴 칼이나 창과 방패를 들고 앞장을 서서 칼을 휘둘러 잡귀를 몰아내는 구실을 하는데 이것은 죽은 이의 저승길을 깨끗이 닦아주는 의식이다. 진도 지방에서는 이와 같은 행위를 일러 '희광이 춤'이라고 부른다. 희광이는 사형 집행인인 망나니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행세하는 집안의 어른이 죽으면 죽은 이가 매장 되기 전에 평소에 원한을 사서 죽은 귀신들이 공격할 것에 대비하여 이들을 얼씬 못하도록 희광이 춤을 추게 했던 것이다.
상여 주위를 돌아다니며 칼을 휘둘러 무엇을 베거나 찌르는 시늉을 하며 위협적인 춤을 췄다. 묘지에 도착하면 미리 파 놓은 광중 속에 들어가 칼춤으로 잡귀를 몰아내고 하관할 때가 되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오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달아나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잡귀들의 등살에 죽을 수도 있다고 여겨 상가에서는 희광이 노릇을 한 사람에게는 그 위험성을 고려하여 특별히 보수를 챙겨 주기도 했었다고 한다.
상여는 한국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또 하나의 집이다. 죽어서 저승을 산다는 것은 이승의 집에서 저승의 집으로 바꾸어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상여는 양택인 이승의 집에서 음택인 묘지로 가는 동안에 임시로 거처하는 음양의 중간적인 집인 셈이다.
상여는 규모가 크고 무거운 만큼 모양과 꾸밈도 복잡하다. 단순히 주검을 나르는 운반구가 아니라 이승과 저승을 이어 주는 세계관적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상여의 얼개는 아주 복잡하고 그 부품의 수도 엄청나게 많으므로 대표적인 상징물만 살펴본다.
죽은 이의 관을 덮고 있는 장방형의 운각을 중심으로 보면 운각 앞뒤에는 귀면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는 용 두 마리가 앞뒤를 향해 서로 몸을 꼬고 있는데 이를 용마루라 한다. 앞뒷면의 귀면 그림은 눈을 크게 부릅뜨고 수염이 거칠게 뻗어 있어 무서운 형상을 하고 있다. 상여 앞장을 서는 방상씨가 무서운 형상과 몸짓으로 잡귀를 쫓듯 귀면 역시 잡귀의 접근을 막기 위한 장치이다.
청룡과 황룡이 앞뒤를 향해 꼬여 있는 용마루 위에는 염라대왕과 저승사자, 강림 도령이 차례로 타고 있다. 특히 염라대왕은 호랑이를 타고 있어 별도의 의미를 지닌다. 용은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신격이며, 이를 타고 있는 세 인물 역시 죽음을 관장하는 저승의 신격이자 이승과 저승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초월적 존재이다. 용과 호랑이는 묘지 좌우에서 주검을 보호하는 이른바 '좌청룡 우백호' 구실을 상여에서부터 하는 셈이다. 죽은 이를 저승으로 순조롭게 인도하려는 기대와 이승과 저승 사이의 공간적 관계에 대한 인식이 용호의 형상과 저승의 신격을 통해 구체화된 것이다.
상여 몸체의 위쪽 귀퉁이 사면에 봉황이 화려한 색상으로 조각되어 있다. 봉황도 역시 용처럼 자유로이 하늘을 날 수 있는 신성시되는 새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새가 되어 저승인 천상으로 비상하여 영원의 세계에 이른다는 영혼관이 상여의 봉황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새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인도하기도 하며 저승으로 가는 도중에 과도기적 재생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봉황의 부리에 주홍색의 굵은 줄을 늘어뜨려 중간에 매듭을 세 개 만들고 그 끝에 요령(종)을 달아 두어, 상여가 크게 움직일 때마다 요령이 울린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상여가 기울거나 흔들리는 것을 알려주는 구실을 한다.
상여를 메는 이는 상두꾼이고, 이 상두꾼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상엿소리이다. 상엿소리를 우리 민속에서는 만가라고 한다. 상엿소리는 민요화하여 지방마다 그 가락과 가사가 조금씩 다르다.
상여 앞소리꾼이 상여 위에 올라타고 풍물이나 북 또는 요령 장단에 맞추어 앞소리를 매겨야 비로소 상여가 움직인다. 상여를 멘 상두꾼의 우두머리는 요령을 들고 그 소리를 리듬에 맞춰 올리며 앞에서 상엿줄을 잡고 이끈다. 요령이란, 솔발이라고도 하는 자루 달린 방울종을 말한다. 대여(큰 상여)의 경우에는 이 솔발수가 상여 앞쪽의 장강틀에 올라 서서 타고 가며 요령 소리와 함께 상엿소리를 내기도 했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북망산천 나는 간다"하는 앞소리꾼의 노래 사설에 따라 상여가 움직이면서 상두꾼들은 "너호 너호 에이넘차 너호"하고 뒷소리를 받는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친구나 보고 떠나가자"하고 앞소리꾼이 친구들을 찾아보고자 하면, 상두꾼들은 죽은 이의 친구 집과 경로당을 찾아가서 상여 앞쪽을 낮게 세 차례 숙여서 하직 인사하는 시늉을 한다. 더러는 종가 사당이나 일가 어른들의 빈소에 가서 인사하는 경우도 있다. 마을 어귀에 와서는 상주와 며느리, 딸네들을 두루 불러들여서 절을 받기도 한다. "사위 사위 우리사위 만나보고야 떠나갈까"하고 앞소리를 하면 사위들까지 돈봉투를 들이밀고 절을 해야 한다.
마을 어귀를 벗어나 산기슭에 이르러 다시 상여가 멈취 선다. 다시 상주가 곡을 하며 봉투를 주고 절을 해야 한다. 그러면 "황천가는 이 길에야 노자 한 푼 보태주니 / 간다 간다 나는 간다 황천길로 나는 간대이"하는 앞소리 사설이 매겨진다. 그러면 다시 상여가 앞으로 나간다. 이처럼 상여는 앞소리의 사설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고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상두꾼들은 메김 소리에 따라 뒷소리를 받으며 흥을 돋움으로써, 상여를 운반하는 달갑지 않은 작업을 기분 좋게 신명을 내어 일을 하게 된다.
또한 상엿소리는 상여의 운행만 지시하는 게 아니라 산 자들과의 만남도 주선한다. 상주와 딸, 며느리, 사위, 일가 친척들을 불러들이는 구실을 한다. 이들과 마지막으로 만나서 이별의 뜻을 전하고 당부의 말을 남기는 것이다. 상엿소리를 통해서 죽은 이의 유언을 새삼스레 듣는 듯 하다. 이별의 절차가 끝나면 상여는 마을을 떠나 산으로 간다.
영구가 떠나는데 장지가 멀거나, 병으로 갈 수 없을 때에는 상주와 일동은 검소한 수레를 타고 가다가 묘소 300보쯤 앞에서 내린다.
* 하관 상여가 장지에 도착하면 영구를 광중의 남쪽에 모시고 상주들은 광중의 양열에 서서 곡을 한다. 다음에 상주들은 곡을 멈추고 영구를 광중에 내리는데 이를 하관이라 한다. 하관할 때는 집안에 따라 관째로 광중에 안치하는 경우도 있고, 관에서 주검을 꺼내어 안치하는 경우도 있다. 하관이 시작되면 상주들은 곡을 그치고 하관을 지켜보도록 되어 있으나, 이때 죽은 이와의 사별을 새삼스레 실감하는 탓으로 곡소리가 더욱 높아지기도 한다.
* 성분 '성분'이란 흙과 회로 광중을 채우고 흙으로 봉분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 반곡 평토제가 끝나면 상주는 영좌의 신주와 혼백 상자를 영여(혹은 요여)에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를 '반곡' 또는 '반우'라고도 한다. 장지에서 신주와 혼백을 영여에 모시고 축관이 분향한 다음에 반혼을 한다. 상주일행은 영여를 모시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곡을 한다. 반혼을 할 때에는 영여에 다시 혼백을 모시고 영여가 앞장을 서며 상주가 그 뒤를 곡하며 따르되 반드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한다.
다른 길로 가면 혼이 길을 잃게 되어 온전하게 반혼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라기보다 잡귀가 범접할 우려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혼시에는 뒤돌아보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주검에 미련을 두면 온전한 반혼이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반혼은 사람이 죽으면 곧 바로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저승에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일정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즉 혼은 시신이나 생활 공간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저승으로 간다고 여기는 것이다.
혼백이 영여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집을 지키던 여성들이 나와 맞이하여 곡을 한다. 이를 특히 반곡이라 한다. 반곡하는 가운데 혼백을 빈소의 영좌에 모신다. 빈소는 지역에 따라 빈실 또는 상청, 제청, 영실이라고도 한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집사가 영좌를 차려 놓고, 축관이 신주를 모셔다가 영좌에 놓고 혼백은 그 뒤에 놓는다. 집에 도착하면 상주와 일행은 영좌 앞에서 다시 슬프게 곡을 하고 조상 온 사람이 있으면 처음에 하던 것과 같이 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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