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 (유년의 뜰 1)
엄니가 날 낳으실 적 꿈에 난초 밭에 가서 난초를 한아름 따셨다데. 엄니는 난초 같은 딸을 데리고 살며 정원에 하나 가득 난초를 심으셨지. 나는 엄니가 심은 난초 밭에서 자랐어. 그러나 엄니는 모를 껄, 난초 밭에는 달팽이가 많다는 걸. 비 개인 후 젖은 입술 같은 난초꽃 앞에서 꽃 고무신 신고 쪼그리고 앉아 숨 죽이며 달팽이를 찼던 내 비밀을 모를 껄. 아이 이뻐, 새끼 달팽이 아이 이뻐, 어미 달팽이 난초 이파리에 끈끈한 흔적 남기며 비 개인 하늘 보러 올라오던 달팽이의 행렬을 엄니는 몰랐을 껄. 그 말랑 말랑하던 살결과 잡으면 부서질 것 같은 달팽이집의 눈물겨움을 봄이 지나면 기껏 엄니는 푸석 거리는 꽃 대궁이를 잘라 줄 뿐이었지. 아마 모를 껄. 내 어릴 적 사랑을 엄니는 모를 껄.
온실 (유년의 뜰 2)
거기, 얼마나 많은 꽃과 얼마나 많은 나무가 있었는지 알아? 제라니움, 시클라멘, 시네라리아 그런 먼 나라의 꽃 이름들을 알기나 해? 난 매일 인사했지. 엄마의 물뿌리개에서 무지개 찬란한 물방울들이 흩어지는 아침이면 안녕, 꽃들, 안녕, 나무들, 달큼한 부엽토의 내음 물기어린 따뜻한 공기 입 새에 얼룩지는 햇빛 그런데 이따금씩 어디선가 맺혔던 물 방울이 툭,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곤 했어. 꽃들은 밤에 추워하거든. 그래서 이불을 덮어야 해, 두터운 지푸라기 이불을, 해질 녁이면 지푸라기 이불들이 두르르 두르르 경사진 온실 유리창 위로 흘러 내리고 밤이면 꽃들은 더 숨을 죽이지. 눈 오는 밤이면 어떻다고. 그런 밤이면 난 몰래 혼자 들어가 어둠 속에 한참 앉아 있곤 했지. 밖에서는 눈이 내리지, 세상은 잠들었지, 그러면 어떻게 되게? 온실 속의 고요함은? 꽃들의 숨소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