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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습니다
마태복음 5:3-8 2025/1/5 성탄 후 제2주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고난 받는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새해 인사를 많이 나누셨는지요?
어떤 덕담으로 새해 인사를 나누셨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덕담으로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행복하십시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청결한 복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반복되는 단어 하나가 나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복이 있나니’
매 구절마다 반복되는 이 말은
그리스어 '마카리오스‘를 번역한 말입니다.
'마카리오스‘
이것을 우리 성경은 ‘복이 있다’는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를 위해 새롭게 번역된 새한글 성경도
한국교회가 선택한 번역의 전통에 따라 ‘복 있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예배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 성경과 차이가 있다면, 그리스어 원문 순서 그대로 번역을 시도 했다는 점입니다.
(새한글) 마5:3 “복 있습니다, 영이 가난한 사람들은!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까요.
4 복 있습니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위로를 받을 테니까요.
5 복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들은!
그들이 땅을 물려받을 테니까요.
6 복 있습니다, 정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그들이 배부르게 될 테니까요.
7 복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은!
그들이 불쌍히 여김을 받을 테니까요.
8 복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뵙게 될 테니까요.
‘복 있습니다.’
마치 선포하듯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 단어에 오늘 우리가 꼭 주목해야할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복 있습니다.’라는 이 반복되는 단어가 우리 주님이 이 땅에서 행하셨던 설교의 첫 번째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는 말씀, 마태복음 4장입니다.
마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말씀의 복음) 천국 복음(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치유복음)
4: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4: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5: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있는 모든 유대인의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그리고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들을 고치는 것을 본 무리들이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모여들었을 때, 그 때 산에 올라가 입을 열어 가르쳐 주셨던 첫 번째 말씀이
'마카리오스’ 바로 ‘복 있습니다.’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 있습니다.’라는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에 주목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마카리오스’ ‘복이 있다’고 선포하신 사람들의 실체가 매우 낯설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을 ‘복이 있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팔복의 사람을 소망했던 청년 윤동주는 세상이 이해 할 수 없는 팔복의 실체를 역설적으로 이렇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시인 윤동주의 ‘팔복’입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시인이 이렇게 영원한 슬픔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이들에게 주시는 하늘의 영원한 위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선언이었습니다.
마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그래서 ‘복이 있다’라는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선언을 성서조선을 창간 한 김교신이 이렇게 풀어 설명했습니다.
환경이 지배할 수 없는
영혼 속에서 용출하는
내적 환희의 샘
이해가 좀 되시나요?
찬송가 487장 가사로 설명을 드리자면 이런 복을 말합니다.
1.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 바람 분 후에 잔잔하고
*어두움 후에 빛이 오는 복이며, 바람 분 후에 잔잔해 지는 복입니다.
소나기 후에 햇빛 나며 / 수고한 후에 쉼이 있네
*소나기 후에 햇빛 나는 복이며, 수고한 후에 쉼이 있는 복입니다.
2. 연약함 후에 강건하며 / 애통한 후에 위로받고
*연약함 후에 강건해 지는 복이며, 애통한 후에 위로받는 복입니다.
눈물 난 후에 웃음 있고 / 씨 뿌린 후에 추수하네
*눈물 난 후에 웃음 있는 복이며, 씨 뿌린 후에 추수하는 복입니다.
3. 괴로움 후에 평안 있고 / 슬퍼한 후에 기쁨 있고
*괴로움 후에 평안 있는 복이며, 슬퍼한 후에 기쁨 있는 복입니다.
멀어진 후에 가까우며 / 고독함 후에 친구 있네
*세상과 멀어진 후에 하나님과 가까워진 복이며, 자발적 고독함 후에 주 예수가 친구가 되는 복입니다.
4. 고생한 후에 기쁨 있고 / 십자가 후에 영광 있고
*고생한 후에 기쁨이 있는 복이며, 십자가 후에 영광이 있는 복입니다.
죽음 온 후에 영생하니 / 이러한 도가 진리로다
*죽음 온 후에 영생이 있는 복입니다.
딱 한 줄로 정의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단언컨대 여기에 기록된 말씀으로 ‘표어’ 다시 말해 우리가 추구해야할 신앙의 가치를 삼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을 환영하고 존중하는 교회는 거의 존재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교회 표어는 좀 다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환영받고, 존중받는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 우리가 이런 표어들로 달려왔습니다.
2020년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아
2021년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아
2022년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아
2023년 행복하여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아
2024년 행복하여라 자비한 사람아
2025년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아
제가 이렇게 표어를 정한 이유는
‘실업인 선교회’도 있어야 하겠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선교회’가 있었으면 더 좋겠다는 꿈 때문입니다.
‘의료인 선교회’도 있어야 하겠지만 ’슬퍼하는 사람의 선교회‘가 있었으면 더 멋지겠다는 이상 때문입니다.
‘법조인 선교회’도 있어야 하겠지만 ‘온유한 사람의 선교회’가 있었으면 세상이 더 맑아질 것이라는 신념 때문입니다.
그래서 2020년 우리가 묵상했던 첫째 주제가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이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 한분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바로 이런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롬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런 이들에게 주어진 하늘의 복은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바로 천국이었습니다.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의 것임이요
21년에 묵상한 둘째 주제는 애통하는 사람입니다.
애통하는 사람?
죄와 악에 지배당하는 자신을 애통할 뿐만 아니라
죄와 악에 지배당하는 세상을 보면서 애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이들에게 용서하시는 하나님이 자신의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22년에 묵상한 셋째 주제는 온유한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
죄의 성품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을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새: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 공:하나님의 말씀을 송구스럽게 받는 사람)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그런 사람에게 주어진 복은
먹고살(육신의) 걱정이 필요 없는 하나님의 돌보심입니다.
마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23년에 묵상한 넷째 신앙의 주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선하다 여기는 일(미슈팟)
하나님이 옳다 여기는 일(쩨다카)
여기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남강 이승훈 선생님은 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 사상을
‘의(미슈팟과 쩨다카)’로 보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도둑질은 의가 아니다.
간음은 의가 아니다.
이웃을 괴롭힘은 의가 아니다.
자기를 높이고 자기만 잘살려는 것은 의가 못 된다.
의속에 살리라.
의속에 살리라.
24년 작년에 묵상한 다섯째 신앙의 주제는 긍휼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중 가장 으뜸 성품인 하나님의 자비로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마련된 하나님의 축복은 바로 이것입니다.
마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그리고 올해 우리 앞에 놓여 진 여섯째 신앙의 주제는 마음이 청결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 이런 사람을 말합니다.
그 마음 씀이 너무 맑아서, 그 마음을 들어다 보면,
하나님이 비칠 정도로 그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시인 마종기는 마음이 청결한 사람의 깨끗한 마음 씀을
‘겨울 기도’에서 이렇게 그립니다.
하나님,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비칠 정도로 그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볼 수 있는 복을 주신 것입니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은 팔복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한 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계심’이 복중에 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행복을 누리시는 주의 해 2025년도가 되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